자본시장제도 개편 방향을 놓고 국내외 간에 경제국수주의 논쟁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어렵게 하기 위해 '5% 룰'을 개정하는 등 제도 정비에 나서자 외국인들이 의혹의 시선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한국인들은 한 발로 (시장 개방)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다른 발로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의 공격이 그것이다.
하지만 국내 관계자들은 외국인이 한국 자본주의 길들이기에 나섰다며 못마땅해하는 반응이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주 콜금리 동결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국내 자본이 역차별당할 정도로 외국에 개방돼 있다"고 반론을 폈다.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등 금융감독기관들은 물론 국내 기업들도 역차별론에 상당한 무게를 싣고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시각차는 왜 발생한 것인가.
이는 국내 시장이 외환위기 이후 실력 이상으로 빠르게 개방된 데 따른 후유증임에 틀림없다.
외국 자본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는 '글로벌 스탠더드'란 이름으로 사실상 1백% 수용돼왔다.
국내 일부 지식인들도 주주이익 보호란 거창한 논리를 내세우며 외국 펀드들의 불법 관행보다는 국내 기업을 감시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자연히 한국 금융시장은 언젠가부터 외국 투자자들의 즐거운 놀이터가 됐다.
돈 될만한 기업과 땅이 매물로 나오면 외국인 간의 돈잔치가 벌어졌고,뉴브릿지 론스타 골드만삭스 등은 기업사냥꾼 명단의 첫줄에 이름을 올려 놓았다.
실제 연초 미국계 사모펀드인 뉴브릿지는 제일은행 지분을 매각해 세금 한푼 안내고 1조원이 넘는 차익을 얻었다.
진로 매각이 실현되면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채권자들은 1조원 이상을 벌어들이게 된다.
외국 자본의 머니게임이 금융 종속을 넘어 중남미식 산업 종속으로 비화되는 현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5% 룰' 등 제도 정비에 나선 것은 어찌보면 때늦은 조치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한국 때리기를 비판만 하기에는 꺼림칙한 측면도 없지 않다.
외국인의 국내증시 비중은 42%로 세계 4위,주요 증시 중 단연 1위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인 글로벌 시대에 싫든 좋든 그들과 잘 지낼 수밖에 없다.
놀이터가 갑자기 경기장으로 변하는 데서 오는 외국인들의 경계심리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보다 큰 문제는 글로벌 환경에 대응하는 금융당국의 일 처리방식이 매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5% 룰' 은행의 외국인 이사 제한 등은 이미 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이를 충분히 납득시키는 과정을 간과해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특히 새 '5% 룰'의 경우 금융감독원과 재경부가 대주주의 지분 재보고 시한을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아 국내 기업들조차 뒤늦게 주총 일정을 앞당기는 혼선을 빚었다.
은행 외국인 이사수 제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그 가능성을 내비쳤다가,즉각 부인하는 우를 범했다.
외국인들에게는 허둥지둥하는 모습으로 비쳐졌고,그만큼 반격의 여지를 준 셈이다.
박승 총재는 "외국인들이 우리의 개방 수준을 잘 몰라주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들의 한국 길들이기에 대한 불만과 함께 우리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 '내 탓이오'가 담겨 있는 듯 하다.
이제 국가 IR는 글로벌시대의 필요충분 조건이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대응보다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정책 알리기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배 아파서 외국인을 규제한다는 인상에서 벗어나 정당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김영규 편집국 부국장 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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