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동정] 87회 박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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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터뷰]박건형 “잘때 빼곤 춤만 췄다” |
박건형(28).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의 주인공 ‘토니’. 동물적이면서 남성적인 노래와 춤 솜씨로 보는 이의 심장을 빼앗아 버리는 뮤지컬 스타. 지난해 TV 드라마 ‘파란만장 미스 김 10억 만들기’와 영화 ‘DMZ 비무장지대’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그가 이번엔 제대로 영화를 만난 것 같다. 5월 개봉되는 ‘댄서의 순정’에서 옌볜 소녀(문근영)와 사랑의 교감을 나누는 댄스스포츠 선수 ‘영새’로 출연하는 것이다.
5일 밤 박건형을 만났다. 자신과 영화를 두고 그가 밝힌 내용들을 3개의 키워드로 풀었다.
○몸
나의 최대의 적은 나다. 물만 먹어도 살찌는 나. 원래 63kg이던 몸(키 183cm)이 불어난 건 재수할 때였다. 숭례문 근처 한 24시간 고깃집에서 매일 오후 9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아르바이트(서빙)를 했다. 밤새 고기를 먹었다. 오전 2시, 4시, 6시. 이렇게 보름이 지나니 76kg이 됐다. ‘이래선 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 한다’는 생각에 업종을 바꿨다. 서울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화장품을 팔았다.
테이블 위에 경품과 스킨로션 샘플을 깔아놓은 뒤 지나가는 여성들을 붙잡고 무료 피부 진단을 해 줬다. 양말에 구멍만 나도 창피해서 친구 집에 놀러가지 못할 만큼 내성적이던 내가 배우가 되기 위해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을 골랐던 것이다. 남자다운 일도 경험해야겠다는 생각에 강원 속초시로 갔다. 막노동을 하며 동우대 기숙사를 지었다.
대학(서울예술대 연극과) 졸업 직전 이런저런 뮤지컬에 출연하던 중 또 85kg이 됐다. 그 몸으로 ‘토요일 밤의 열기’ 오디션을 봤다. 1차 합격한 뒤 한 달 만에 15kg을 뺐다. 자는 시간을 빼곤 정말 춤만 췄다. 토할 것 같았다. 결국 주연을 따냈다. 힘들 땐 기타를 퉁기다 내 맘대로 만든 노래를 불러 본다. ‘오늘도 힘들지만 꿈이 있고…오늘 아침 또 해가 뜨듯이….’
○여성
한번은 뮤지컬 무대에서 내려와 팬레터를 읽었다. ‘차창을 열고 강변북로를 신나게 달렸어요. 길가에 낙엽이 굉장히 많이 떨어져 있더군요. 집에 돌아가서 브람스를 들어야겠어요…오늘은 딸기 셰이크를 만들었어요. 우울한 기분이 좀 가시더군요. 남편도 건형 님을 좋아한답니다.’ 처음에 나는 소녀 감성을 가진 미시 팬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어머니 연배 되는 분이었다. 무대란 곳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공간이다. 배우도 특별하게 만들지만 관객도 특별하게 만드는 곳이다.
○춤
근영이(18)는 사랑을 아직 모른다. 촬영 중 줄곧 “사랑의 감정을 잘 모르겠어요” 하며 물어왔다. 나는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읊어 주었다. 이런 느낌이라고.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알고 보니 근영이는 나보다 훨씬 책을 많이 읽는 배우였다. 우린 늘 이랬다. “너 이 책 읽어 봤어?” “네. 오빠는 요 책 읽어 봤어요?” “아니.”
뮤지컬 할 땐 늘 여자 파트너가 연상이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연하를 만났다. 열 살 차이의 연하. 동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맞붙어 춤추다 보면 정말 ‘허걱’ 할 때가 있다. ‘고3 문근영’의 눈빛이 아닌, 극중 ‘채린’의 눈빛으로 날 볼 때다. ‘아, 이래서 댄스 파트너끼리 결혼을 많이 하는구나.’ 순간 당혹스러워 멈칫하게 된다. 남의 속도 모르는 근영이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묻는다. “오빠,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요?” 근영이와 춤추면서 난생 처음 사람들에게서 “정말 느끼하다”란 말을 들었다. 연애해 본 사람은 안다. 마음으론 벌써 뽀뽀까지 다 한 건데, 실제론 손도 못 잡고 꼼지락거리지 않나. 근데 춤은 다른 것 같다. 때론 몸이 딱 마음만큼 움직이니까.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