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계의 감각'이 접목된 국정운영을, <font color=blue>장달중(55회)</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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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계의 감각'이 접목된 국정운영을
일본 교토에 가면 반드시 한번 들르게 되는 류간지(龍安寺)라는 절이 있다. 겉에서 보아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절이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절 안에 있는 석정(石庭)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 석정에는 15개의 돌이 있는데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14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15개의 돌이 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3·1절을 전후하여 “나를 공격하는 사람도 존중하겠다”며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고 나선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문득 이 석정의 15개 돌 생각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15개의 돌이 드디어 노 대통령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관찰에 대해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주장처럼 이러한 관찰은 ‘잠시 본모습을 숨긴’ 노 대통령의 시각적 환영(幻影)을 착각한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이제 국정운영의 과제가 확실히 노 대통령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고 반기는 분위기가 널리 퍼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또 노 대통령의 정치가 이념적 공간에서 현실적 지혜의 공간으로 이행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과 기대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한 지인 정치학자는 지난 2년간의 한국 정치를 권투시합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민주국가에서의 개혁이란 대화와 심의의 과정을 통해 서로 밀고 당기는 씨름경기와 같아야 하는데 한국의 개혁정치는 서로에게 KO 펀치를 날리려는 권투시합과 같았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대로 사실 지난 2년간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권투시합을 방불케 했다.
물론 이러한 권투시합과 같은 국정운영의 중심에는 말할 필요도 없이 노 대통령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지나치게 ‘때려부수는 리더십‘에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지도자에게 필수불가결하게 요구되는 ‘한계(限界)의 감각’을 상실하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 대통령이 ‘포용과 상생의 정치’를 강조하고 나온 것이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이런 변화를 “국정운영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이것은 노 대통령이 잃어버렸던 ‘한계의 감각’을 찾아 가는 데서 생긴 변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노 대통령이 KO 펀치를 날리는 권투시합으로는 아무리 개혁과 자주를 외쳐도 그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지난 2년간의 국정운영을 통해, 취임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자주적’인 행동의 폭이 훨씬 제한되어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행정수도 이전이나 대통령 탄핵, 이라크 파병과 북핵 사태 등을 통해 권투시합과 같은 국정운영으로는 국론분열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 대통령의 이런 변화가 앞으로 대외정책 면에서도 보다 의미 있게 나타나길 기대하고 있다.
지난 2년간 노 대통령의 자주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 외교적 사건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북핵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으며, 한·미·일 공조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소외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뚜렷한 외교적 대안이 제시된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는 여러 가지 시련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시련들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시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만일 대통령이 한계의 감각이 접목된 국정운영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 모두의 눈에도 석정의 15개 돌이 보이게 될 것이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입력 : 2005.03.06 18:1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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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을 전후하여 “나를 공격하는 사람도 존중하겠다”며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고 나선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문득 이 석정의 15개 돌 생각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15개의 돌이 드디어 노 대통령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관찰에 대해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주장처럼 이러한 관찰은 ‘잠시 본모습을 숨긴’ 노 대통령의 시각적 환영(幻影)을 착각한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이제 국정운영의 과제가 확실히 노 대통령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고 반기는 분위기가 널리 퍼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또 노 대통령의 정치가 이념적 공간에서 현실적 지혜의 공간으로 이행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과 기대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한 지인 정치학자는 지난 2년간의 한국 정치를 권투시합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민주국가에서의 개혁이란 대화와 심의의 과정을 통해 서로 밀고 당기는 씨름경기와 같아야 하는데 한국의 개혁정치는 서로에게 KO 펀치를 날리려는 권투시합과 같았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대로 사실 지난 2년간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권투시합을 방불케 했다.
물론 이러한 권투시합과 같은 국정운영의 중심에는 말할 필요도 없이 노 대통령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지나치게 ‘때려부수는 리더십‘에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지도자에게 필수불가결하게 요구되는 ‘한계(限界)의 감각’을 상실하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 대통령이 ‘포용과 상생의 정치’를 강조하고 나온 것이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이런 변화를 “국정운영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이것은 노 대통령이 잃어버렸던 ‘한계의 감각’을 찾아 가는 데서 생긴 변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노 대통령이 KO 펀치를 날리는 권투시합으로는 아무리 개혁과 자주를 외쳐도 그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지난 2년간의 국정운영을 통해, 취임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자주적’인 행동의 폭이 훨씬 제한되어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행정수도 이전이나 대통령 탄핵, 이라크 파병과 북핵 사태 등을 통해 권투시합과 같은 국정운영으로는 국론분열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 대통령의 이런 변화가 앞으로 대외정책 면에서도 보다 의미 있게 나타나길 기대하고 있다.
지난 2년간 노 대통령의 자주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 외교적 사건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북핵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으며, 한·미·일 공조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소외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뚜렷한 외교적 대안이 제시된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는 여러 가지 시련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시련들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시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만일 대통령이 한계의 감각이 접목된 국정운영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 모두의 눈에도 석정의 15개 돌이 보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