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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2회 작성일 2005-02-04 00:00
<일간스포츠2005.2.4>너무도 독도를 사랑했기에 인생마저 U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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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독도를 사랑했기에 인생마저 U턴

-´독도 지킴이´ 박순종, Korea 독도녹색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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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종 대표가 독도 사진 액자를 들고 독도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독도는 우리땅.´ Korea독도녹색연합 회원들이 주문진항에서 선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독도'란 말이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한국 독도녹색연합 박순종 대표(47)다. 속된 말로 독도 문제를 갖고 3박 4일 토론해도 에너지가 펄펄 넘쳐나는 사람이다. 그는 독도 영토 문제가 발생할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곳이 있다.

강원도 주문진항과 동해 묵호항이다. 그곳에서 독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독도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는 그곳에서 누가 알아주든, 보든 개의치 않고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외쳐댄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다혈질 성격으로 봐서 독도 시위운동이 처음에 요란했다가 나중엔 흐지부지 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2년 동안 변함없이 시위를 벌였다.

이쯤 되니 언론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방신문에선 그의 떠들썩한 독도 시위가 한 구석에 등장했다. 주문진과 동해 사람들은 그를 두고 '독도에 미친사람', '독도지킴이', 혹은 유별난 독도 시위방식을 빗대어 '독키호테'라 불르는 사람들까지 있다.




삼성 15년 근무 후 주문진서 사업,
日 관료 망언에 행동하는 양심 결의
사재 털어 시민단체 활동… 420명
"독도는 우리땅" 역설 2년 동안 시위


그는 바다가 고향이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주문진의 작은 어촌.

그는 걸음마 시작할 때부터 바다에서 뛰어 놀았다. 그의 까무잡잡한 외모, 북한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반반씩 섞인 듯한 그 특유의 강원도 말씨에서도 바다냄새가 물씬 풍긴다. 어릴 때부터 바다를 보고 자란 탓에 그는 바다를 너무나 사랑한다.

그러나 첫 직장은 바다와 인연이 닿은 곳이 아니었다. 그는 '삼성맨'이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 1980년 서울 삼성전자 서비스사업부에 입사한 후 15년간 근무했다. 90년 중반 간경화 판정으로 사표를 냈다. 그래서 요양을 겸해 고향인 주문진으로 내려왔다. 배운 것이 서비스 수리인지라, 고향에서도 주민들의 TV, 전기제품 등을 도맡아 수리해 줬다. 또 불우한 사람들 돕는 일에도 앞장섰다.

주변에선 그에게 시의원 출마해야 한다고 권했지만 사양했다. 그는 서비스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공허했다. 일본 관료들이 "독도는 일본땅"이라 하면, 홧김에 술을 마시며 분을 삼키기도 했다. 그런 일본 관료들의 망언이 늘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는 의식이 배어들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그는 TV를 시청하다가 한 시민단체의 운동에 감명받았다. 당시 일본 관료의 독도 망언에 항의하기 위해 한 시민단체 대표가 선상에서 시위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시위를 했던 시민단체 대표는 활빈단 홍정식 단장이었다.

홍 단장은 바다가 고향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우리의 바다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서울에서 원정 시위를 한 것이다. 그는 그때 그 시위 장면을 본 후 인생의 전환을 다짐했다. "제 고향은 바다입니다. 그 고향인 바다를 지키는 것은 나의 의무요, 그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선 독도를 지키는 것이 운명처럼 받아들여지더군요." 그래서 그는 과감히 동해바다를 수호하고 독도를 지키겠노라 맹세했다.

그는 2001년부터 환경운동연합, 투명사회본부 활동을 시작했다. 또 바다 살리기 국민운동본부에서도 일했다. 지난해 5월 일본 극우단체의 독도 상륙 소식을 접하고 대마도 상륙작전 계획도 세웠다. 당장 사비를 털어 사무실을 내고 독도녹색연합을 조직하고 "우리는 대마도에 상륙하겠다"고 선포했다. 대한해협을 건너 출항하려는 계획까지 다 세웠다.

지난해 '대마도 상륙작전'을 위해 부산으로 향하면서 차량에 내건 '독도는 우리땅' 구호를 보고 주위에서 경적을 울려 주고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면서 환호를 보내 줬다. 주유소에서는 "좋은 일 하신다"면서 기름값도 받지 않았다. 전기공사와 전자제품 수리공으로 일하면서 틈만 나면 독도사랑운동을 펼치자 마침내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가 조직한 독도녹색연합 운동본부에는 유료회원 420명이 가입했다.

40대 중반의 나이. 인생의 유턴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독도를 내가 지키겠다'고 다짐한 결정이 자기 세상을 바꾼 원동력이었다. 그는 오늘도 바다사람들에게 '독도사랑' 운동을 역설하고 다닌다. 또 동해를 항해하는 모든 배에 '독도를 사랑합시다'란 현수막 걸기 캠페인도 벌일 작정이다. 그에게 독도는 무엇인가. "우리들의 고향이요, 산천이다." 그가 있기에 동해바다에 홀로 선 외로운 섬 독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우은식 기자 <eswoo@ilgan.co.kr>

2005.02.04 11: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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