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교우선후배님...입춘대길하시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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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복수초 꽃망울 ‘입춘’이라는 말이 가리키듯, 오늘은 또 봄의 첫날이기도 합니다. 아직 바람이 차기는 하지만, 동아시아사람들의 세시관(歲時觀)에 따르면 겨울은 어제로 끝난 셈입니다. 지난 시절에는 입춘을 맞으면 대궐의 기둥에 주련(柱聯)을 붙이고 이를 춘첩자(春帖子)라 일컬었습니다. 민간에서도 대문이나 기둥ㆍ대들보 등에 축원의 글을 써 붙였는데, 이를 춘축(春祝)이라 했습니다. 춘축에 쓰는 글귀를 입춘방(立春榜) 또는 입춘서(立春書)라고 하는데, 가장 흔한 입춘방은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따위입니다. 공변됨과 사사로움을 아우르는 이런 상투적 ‘웰빙’의 소망 외에 독서인들은 입춘서를 스스로 짓거나 옛사람의 글귀를 따서 쓰기도 했습니다. 조선의 경우, 입춘을 맞으면 기협 6읍(畿峽六邑: 양평ㆍ포천ㆍ가평 등 경기에서 산이 많은 여섯 고을)에서 움파ㆍ멧갓ㆍ승검초 따위의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 임금에게 진상하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궁중에서는 이 나물들을 겨자에 버무려 오신반(五辛盤)이라는 생채 요리를 만들어 수라상에 올렸습니다. 민간에서도 이것을 본떠 입춘일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 무쳐 먹었습니다. 민간과 궁중에서 입춘일에 먹었던 이 햇나물무침이 이른바 입춘절식(立春節食)입니다. 입춘을 새해 첫날로 여겼던 옛 사람들은 이 날 풍농(豊農)을 기원하는 놀이를 벌이기도 했으니, 제주도의 입춘굿과 함경도의 목우(木牛)놀이가 대표적입니다. 입춘날 보리 뿌리를 관찰해 그 성장 상태로 한 해 농작물의 풍흉을 점치는 경기도 지방의 보리뿌리점도 같은 맥락의 풍습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