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백화종</font> 칼럼] 정치판에도 사람이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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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정치판에도 사람이… | ||||||
기사입력 : 2005.01.23, 18:38 | ||||||
자유당 정권 말기,전라북도 어느 지역. 쟁기질하던 소가 바로 가지 않고 옆걸음질이라도 할라치면 농부는 “이놈의 소가 ○○○ 닮았나”라는 욕을 하며 고삐를 당기곤 했다. 사연인즉 이렇다. 1958년 제4대 총선은 말기로 치닫던 자유당 정권의 발악이 극에 달한 가운데 치러졌다. 정권은 선생님까지를 포함하여 모든 공무원들에게 담당 지역을 정해주고,그 곳에서 여당 후보의 표가 적게 나오면 담당자의 공무원 생활이 평탄치 못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또 그 지역은 계속해서 밀주 단속과 산림 단속이 실시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산에서 땔나무를 해다가 취사와 난방을 하던 당시로서는 산림 단속 경고는 절대적 위력을 발휘했다. 정권의 공갈에도 불구하고 그곳 사람들은 당시 거물이었던 자유당 후보를 제치고 민주당 후보였던 ○○○를 국회의원으로 뽑았다. 그런데 그가 당선되자 여당인 자유당으로 옮겨가버렸다. 여기서 오락가락하는 모든 일에 ○○○ 닮았다는 저주 섞인 유행어가 생긴 것이다. 그는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함께 몰락하고 말았음은 물론이다. 야당인 민주당의 김효석 의원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교육부총리 자리를 제의했으나 김 의원이 이를 정중히 사양했다는 소식에 옛날 일이 떠올랐다. 김 의원이 모두를 위해 참으로 어렵지만 잘 된 결단을 내렸다. 모처럼 정치권에서 들어보는 청량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의원의 결단이 참으로 잘 된 일임은 김 의원이 제의를 수락했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를 짐작해보면 자명해진다. 먼저 김 의원이 만일 교육부총리가 됐다면,그는 속된 말로 더 큰 출세를 하고,또 능력을 발휘하여 교육 개혁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인격적으로 파탄에 가까운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양지를 찾아 떠난 배신자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고,그렇지 않아도 팽배해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을 더 키웠을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으로부터 부총리감으로 인정을 받은 김 의원이 그 자리를 사양함으로써 그는 정치적 신의와 지조를 지키면서 부총리급 이상의 재목임을 보여주는 망외(望外)의 일거양득을 거뒀다. 그가 특히 노 대통령과는 각별한 사이라니 큰 감투 제의를 거절하기가 인간적으로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결단이 더욱 돋보인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일이 미수상태로 일단락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민주당 등 야당들로부터 민주당 파괴 내지 의원 빼가기 공작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비난과 정부 인사가 왜 이렇게 갈팡질팡하느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러나 만일 김효석 교육부총리 구상이 실천에 옮겨졌다면 그 정도의 비난은 비교가 되지 않을 큰 파문이 야기됐을 것이다. 야당 파괴 등 정권의 도덕성과 관련하여 반대 세력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했을 것이다. 정국은 연초부터 걷잡기 힘든 소용돌이에 휩싸였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 의원은 정치판의 큰 싸움을 말린 셈이다. 정부·여당으로서는 전남 출신인 김 의원을 정부에 기용함으로써 옛날 같지 않은 그곳 민심을 다독인다는 포석도 했던 모양이나 과거의 예에서 보듯 그러한 구상은 열에 아홉 엇나간다. 또 다른 자리도 아닌 2세들의 교육을 맡는 총수 자리에 정치적 변절 시비가 따라 붙을 사람이 앉을 경우,그 역풍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노 대통령으로서는 당초의 구상을 실현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고,일부의 비난이 부담스럽겠지만,열린 마음으로 당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기용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또 당사자의 뜻을 존중하여 대통령이 당초의 구상을 포기함으로써 탈 권위주의적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수적 효과도 거뒀다고 자위해야 한다. 민주당도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서운하겠지만 김 의원의 결단으로 당이 거센 풍랑에 휘말리지 않게 된 데 대해 안도해야 할 것이다. 김 의원이 제의를 수락했다면 민주당은 존폐에 영향을 줄 만큼의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정치적 상황의 필요성에 따라 아예 정치의 판을 바꾸는 정계개편이라면 모르겠으되,여권이 야당 사람 한 둘을 빼가는 식의 작업은 정말 백해무익한 짓이다. 야당과 민심이 사나워져 정국이 경색되고,양지를 찾아간 사람도 결국 1회용 소모품으로 끝난 게 우리 정치사다. 백화종 주필 wjbaek@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