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7056괘 중 70% 이상이 길운인 까닭은 - 중앙, <font color=blue>김중순(48회)</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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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기획] 총 7056괘 중 70% 이상이 길운인 까닭은 …
◆ 어떻게 만들어졌나
주역의 대가라는 입소문에 토정(土亭) 이지함이 살고 있던 서울 마포 강변의 토막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고객' 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자 주역을 토대로 짧은 시간에 신수를 풀이해 주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토정비결의 집필 동기였다.
◆ 토정은 천재적 수학자?
토정비결을 구성하는 144장의 배열은 현대 수학에서 행렬의 수 위치와 대응한다. 게다가 토정비결이 기본적으로 확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서구 통계학의 확률 이론을 정립한 파스칼보다 100년 앞서 확률 개념을 생각해낸 것이다.
◆ 희대의 사기꾼?
임종을 앞둔 토정에게 부인이 "당신이 돌아가시면 신수를 봐줄 사람이 없겠구려"라고 말하자 토정은 "내가 하늘의 뜻을 알아서 신수를 봤나. 사람들이 하도 졸라서 그랬지"라고 털어놓았다. 부인이 놀라 "그럼 사람들을 속였단 말인가요"라고 되묻자 토정은 "속이긴… 사람들이야 내가 안 봐주면 어디 가서라도 기어이 신수를 봐서 속아야만 마음이 편할 것을…"이라 말하고 눈을 감았다고.
◆ 토정비결은 남존사상서?
토정비결을 보는 사람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하지만 토정비결은 남성 본위요, 여성 경시 경향이 강하다. 총 7056괘 중 여자에 해당되는 괘는 "처녀이면 시집갈 괘" 하나밖에 없다. "여색을 가까이 하면 구설이 생긴다"는 식의 여성 경계 표현이 많다. 남성 중심의 조선시대 사회상을 비춰보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 믿을 수 있는가
토정비결은 사주와 달리 생시를 따지지 않고 생년월일로만 작괘를 한다. 가능한 경우의 수가 크게 144개. 따라서 우리나라 인구를 4500만명으로 잡으면 31만명이 한 해 동안 같은 운세를 갖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같은 운세라도 '동풍에 얼음이 풀리니 고목이 봄을 만난다(東風解氷 古木逢春)'식의 모호한 점괘가 폭넓고 자의적인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야말로 '꿈보다 해몽'이다.
◆ 장수 비결은
토정은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에게 실망보다는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배려했다. 7056괘의 70% 이상이 좋은 운세를 예고한다. 악운이 나올 확률은 5명에 1명꼴이다. 설령 사나운 운수가 겹친 최악의 운세에도 '모든 일에 조심하면 마침내 길함이 있다(諸事可愼 終時有吉 )' 등의 '면피성' 구절이 보험처럼 들어있다. 그것이 토정비결이 점복서라기보다는 인생의 지침서인 이유이며 장수비결이기도 하다.
*** 괘에 담긴 가치관
◆ 막연한 행운과 불행
행운과 불행은 토정비결에서 빈도가 가장 높은 두 개의 괘다. 하지만 그 정의와 범위가 막연하고 추상적이어서 구체성이 떨어진다. 행운의 경우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뜨니 천지가 명랑하다'는 식이며 불운의 경우도 '달 아래 삼경에 화촉이 빛을 잃도다'라고 구체적 행운과 불행을 일컫지 않는다.
◆ 우연이나 요행
'귀인이 와서 도우니 때를 만나 성공한다'는 괘가 255개로 전체 길운 괘의 10%에 이른다. 어려운 생활을 영위하는 서민들에게 한 가닥 희망이라도 주려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보인다. 반면 '남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한다'는 괘는 15개로 0.2%에 불과하다.
◆ 금기와 경고
대안 제시보다는 무작정 금지하는 경향이 크다. 모두 954괘로 13.5%에 달한다. '화성(火姓)을 가까이하지 말라'고는 해도 '목성(木姓)이나 토성(土姓)을 가까이하라'는 말은 없다. 사회의 규범을 적용하는데 금지 위주이고 강제적이라는 전통사회의 특성을 말해준다.
◆ 소극성
'분수를 지켜라'는 괘가 279개나 되고 아예 '바깥 활동을 하지 말고 집에 있어라'도 135개나 된다. 이런 범주를 모두 합하면 563괘로 전체의 8%다. 집필 당시에는 나서봐야 득이 될 게 없는 서민 생활상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현대에서는 한국인들의 도전과 참여 정신을 약화시킬 우려도 있다.
◆ 불신
'남을 믿지 말라'는 범주의 괘가 393개(5.7%)나 된다. '육친이나 가까운 친구를 경계하라'는 괘도 64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과 상통한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은둔한 토정의 심사가 반영된 부분이다.
글=이훈범 기자<cielbleu@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도움말 주신 분 : 김중순 한국디지털대학교 총장
고달픈 서민 위한 '희망의 선물'
해마다 정초가 되면 국민의 절반 이상(64%)이 토정비결을 본다. 한 해 운세를 점치기 위해서다. 500년이 넘은 이 세시풍속은 인터넷이라는 신통방통한 도사를 만나 더욱더 기세를 떨치고 있다.
"맞는다, 안 맞는다"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500년 역사 속에서 이미 판가름이나야 했다. 점괘를 믿지도 않는다. 반신반의하는 사람조차 30%를 겨우 넘을 정도다. 그렇다면 우리가 토정비결의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토정비결에 관한 궁금증
◆ 어떻게 만들어졌나
주역의 대가라는 입소문에 토정(土亭) 이지함이 살고 있던 서울 마포 강변의 토막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고객' 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자 주역을 토대로 짧은 시간에 신수를 풀이해 주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토정비결의 집필 동기였다.
◆ 토정은 천재적 수학자?
토정비결을 구성하는 144장의 배열은 현대 수학에서 행렬의 수 위치와 대응한다. 게다가 토정비결이 기본적으로 확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서구 통계학의 확률 이론을 정립한 파스칼보다 100년 앞서 확률 개념을 생각해낸 것이다.
◆ 희대의 사기꾼?
임종을 앞둔 토정에게 부인이 "당신이 돌아가시면 신수를 봐줄 사람이 없겠구려"라고 말하자 토정은 "내가 하늘의 뜻을 알아서 신수를 봤나. 사람들이 하도 졸라서 그랬지"라고 털어놓았다. 부인이 놀라 "그럼 사람들을 속였단 말인가요"라고 되묻자 토정은 "속이긴… 사람들이야 내가 안 봐주면 어디 가서라도 기어이 신수를 봐서 속아야만 마음이 편할 것을…"이라 말하고 눈을 감았다고.
◆ 토정비결은 남존사상서?
토정비결을 보는 사람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하지만 토정비결은 남성 본위요, 여성 경시 경향이 강하다. 총 7056괘 중 여자에 해당되는 괘는 "처녀이면 시집갈 괘" 하나밖에 없다. "여색을 가까이 하면 구설이 생긴다"는 식의 여성 경계 표현이 많다. 남성 중심의 조선시대 사회상을 비춰보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 믿을 수 있는가
토정비결은 사주와 달리 생시를 따지지 않고 생년월일로만 작괘를 한다. 가능한 경우의 수가 크게 144개. 따라서 우리나라 인구를 4500만명으로 잡으면 31만명이 한 해 동안 같은 운세를 갖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같은 운세라도 '동풍에 얼음이 풀리니 고목이 봄을 만난다(東風解氷 古木逢春)'식의 모호한 점괘가 폭넓고 자의적인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야말로 '꿈보다 해몽'이다.
◆ 장수 비결은
토정은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에게 실망보다는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배려했다. 7056괘의 70% 이상이 좋은 운세를 예고한다. 악운이 나올 확률은 5명에 1명꼴이다. 설령 사나운 운수가 겹친 최악의 운세에도 '모든 일에 조심하면 마침내 길함이 있다(諸事可愼 終時有吉 )' 등의 '면피성' 구절이 보험처럼 들어있다. 그것이 토정비결이 점복서라기보다는 인생의 지침서인 이유이며 장수비결이기도 하다.
*** 괘에 담긴 가치관
◆ 막연한 행운과 불행
행운과 불행은 토정비결에서 빈도가 가장 높은 두 개의 괘다. 하지만 그 정의와 범위가 막연하고 추상적이어서 구체성이 떨어진다. 행운의 경우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뜨니 천지가 명랑하다'는 식이며 불운의 경우도 '달 아래 삼경에 화촉이 빛을 잃도다'라고 구체적 행운과 불행을 일컫지 않는다.
◆ 우연이나 요행
'귀인이 와서 도우니 때를 만나 성공한다'는 괘가 255개로 전체 길운 괘의 10%에 이른다. 어려운 생활을 영위하는 서민들에게 한 가닥 희망이라도 주려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보인다. 반면 '남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한다'는 괘는 15개로 0.2%에 불과하다.
◆ 금기와 경고
대안 제시보다는 무작정 금지하는 경향이 크다. 모두 954괘로 13.5%에 달한다. '화성(火姓)을 가까이하지 말라'고는 해도 '목성(木姓)이나 토성(土姓)을 가까이하라'는 말은 없다. 사회의 규범을 적용하는데 금지 위주이고 강제적이라는 전통사회의 특성을 말해준다.
◆ 소극성
'분수를 지켜라'는 괘가 279개나 되고 아예 '바깥 활동을 하지 말고 집에 있어라'도 135개나 된다. 이런 범주를 모두 합하면 563괘로 전체의 8%다. 집필 당시에는 나서봐야 득이 될 게 없는 서민 생활상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현대에서는 한국인들의 도전과 참여 정신을 약화시킬 우려도 있다.
◆ 불신
'남을 믿지 말라'는 범주의 괘가 393개(5.7%)나 된다. '육친이나 가까운 친구를 경계하라'는 괘도 64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과 상통한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은둔한 토정의 심사가 반영된 부분이다.
글=이훈범 기자<cielbleu@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도움말 주신 분 : 김중순 한국디지털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