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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건 조회 440회 작성일 2005-01-17 00:00
[<font color=blue>백화종(59회)</font> 칼럼] 지옥 문지방 위의 사람들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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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지옥 문지방 위의 사람들
 
올챙이 기자 시절,언론계 선배가 자기 얘기라며 들려준 에피소드 하나.

어느 날 저녁 출입처 취재원들과 기자들의 꽤 질펀한 회식이 있었다. 회식 도중 술이 오른 그 선배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뒤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옆 사람들과 술잔 주고받기도 계속했다. 그런데 모르는 얼굴들이 더란다. 20,30명씩의 취재원들과 기자들이 어울리다 보면 모르는 얼굴들도 더러 있으려니 했다. 그래도 이상해서 정신을 가다듬고 빙 둘러보니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더란다. 자기네 방이 아니라 옆방이었던 것이다. 황당하여 슬그머니 빠져 나오려는데 그들 중 눈치를 챈 사람이 이것도 인연이라며 붙잡는 바람에 수인사까지 한 뒤 몇 잔 더 하고 나왔다나 어쨌다나.
 
사실 그 시절 만해도 사회가 기자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너그러웠다. 물론 기자라는 직업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자들의 사소한 실수를 의기 내지 업무의 특성에 따른 것으로 봐줬다.

기자들 스스로도 짜여진 질서로부터 약간씩 일탈하는 것을 멋으로 여기기도 했다. 돈이 없어 외상으로 후배들 술 사주고 회사 숙직실에서 자는 걸 독립운동이나 하는 양 착각하기도 했다. 아들은 기자를 시켜도,사위로는 기자를 얻지 말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기자 자신도 장가들 때 이 말의 위력을 실감한 사람 중 하나였지만.

만일 요즘 기자들이 옛날 선배들처럼 행동한다면 주위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까. 풍류남아라고 할 리는 만무하고 열중 여덟 아홉은 정신감정을 받아보자고 할 것 같다.

옛날처럼 질펀한 회식 자리에 참석했다간 취재원으로부터 고가의 향응을 받았다는 지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엉뚱한 방에 들어가 술을 얻어먹었다간 몰매를 맞거나 파출소에 끌려가기 십상이다. 외상으로 후배에게 술 사준 사실이 발각되면 이혼 사유가 된다는 판정을 받을지도 모른다.

최근 MBC의 보도국장과 미디어 비평 프로 진행자 등이 취재원과 회식을 하고 이른바 명품 가방을 선물로 받았다 해서 물의를 빚었다. 이 프로는 앞서 취재원이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를 몇 차례 도마에 올린 적이 있다.

MBC측 참석자들의 행위를 한국 사회의 정서적 측면에서 이해하자면 그럴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과 취재원은 학교 선후배 관계로 얽혀 있다고 한다. 취재원의 회사에 관한 비판은 이미 모두 방송됐으니,그 문제는 접고 선후배끼리 식사나 한번 하자는 제의가 오면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서 이를 박절하게 뿌리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헤어질 때 별 것 아니라며 포장된 선물을 쥐어주면 식사까지 한 마당에 이를 내던지고 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이 보통 사람들의 경우라면 매우 인간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남에 대한 비판을 주업으로 하는,팔자 사나운 언론인들의 경우라면 그 같은 사고나 잠깐의 방심은 치명적이다.

인터넷의 보급 등으로 세상이 투명해지면서 정치 등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언론인들은 지금 청교도적 윤리를 요구받고 있다. 언론인이라고 해서 옛날처럼 예외가 통하기는커녕 오히려 남을 비판하는 너는 얼마나 깨끗한지 검증하자며 현미경을 들이대는 세상인 것이다.

이번 MBC 사태는 식사 한 끼와 100만원 내외의 선물 하나라는,그 대가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찮은 것들이 장래 유망한 사람들의 발 밑 돌부리가 됐다는 점에서 언론인들에게 얼마나 엄격한 윤리가 요구되는지를 재확인하는 사례다. 그런 의미에서 당사자들에겐 정말 안 된 일이지만 한국 언론 발전사에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이번 사태는 또 방송 등 미디어 비평 프로가 있어야 할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확인해주었다. 비평 프로들이 언론끼리의 갈등 야기 등 부작용도 갖고 있지만,그래서 기자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다른 미디어들을 감시 비판함으로써 그들을 항상 긴장케 할 뿐 아니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스로도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나카소네 전 총리는 “정치인은 감옥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라고 했다. 언론인은 지옥 문지방 위에 서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기자로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을 바라볼 때 모골이 송연하다.

백화종 주필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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