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국제화는 또다시 시작되고 있다. 1970년대 종합상사의 힘을 빌려 본격적으로 시작된 국제화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기업의 구조조정과 맞물 려 2002년까지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됐다. 그러나 2003년 접어들면서 사업 구 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 다음 다시 한번 국제화를 통한 성장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국제화를 평가해 보면 외환위기 이전까지의 국제화는 '양적인 국 제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해외시장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나 접근보다는 새로운 시장에 대한 개척이라는 미명 아래 '해외로 해외로'를 외쳐대는 국제화 였다. 외환위기로 인해 이러한 양적인 국제화가 멈추게 된 것이 지금와서 생각하면 천만다행인 것 같다. 외환위기부터 2002년까지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한 대기업들은 그 성장 동 력을 해외시장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국제화의 기회가 다시 한번 온 것이다. 국내 경기가 계속 어려워 해외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는 시기에 국제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실있는 국제화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계정세나 현지시장 환경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시장 환경에 대한 분석은 국제 화의 기본이다. 시장 환경에 대한 분석을 그르치게 되면 제 아무리 좋은 전략 이라도 백전백패하게 된다. 세계시장 환경을 읽을 수 있는 기본적인 지표가 유 가ㆍ환율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유가와 계속되고 있는 원 화 절상에 국내 기업 대부분은 힘겨워하고 있다. 세계시장 환경을 철저히 분석하고 있는 몇몇 대기업은 이러한 세계시장 환경 변화에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으리라 생각되고, 다만 국내에서 기업하기가 하도 힘들어서 유가와 환율을 핑계 삼아 어렵다고 엄살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또한 세계ㆍ현지시장 환경 분석이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세련된 국제화를 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전까지의 국제화는 세계지도에 나타난 모든 국가를 시장으로 생각하고 손닿는 대로 움켜쥐는 모습을 견지하였 다. 해외시장에서 사업을 어떻게 세련되게 전개할 것인가 보다는 어떤 시장에 진입할 것인가가 중요 관심사였다. 좋은 예가 중국시장인 것 같다. 중국시장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중 국시장이 국내 기업에 주는 혜택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중국 현지기업이 경쟁력을 갖기 시작하면서 중국시장 내에서의 경쟁도 만만치 않다. 아직까지 중국 경제성장이 이러한 경쟁보다 더 매력적이기에 중 국시장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10년 후 중국시장은 국내 기업에 그렇게 매력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중국 경제성장 둔화 때문만이 아니라 중국 현지기업의 경쟁력과 중국 사람들의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적 시각 때문이다. 지금 외국 다국적기업이 한국시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같다. 10년 후 중국 에 투자한 한국 기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중국에서 계속 사업을 해야 하는지, 지금이라도 철수를 해야 하는지. 비단 중국 시장뿐만 아니라 전세계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대기 업은 해외시장에서 세련된 국제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세련 된 국제화란 '나만의 국제화가 아니라 나눔의 국제화'이다. 어떻게 하면 현지 시장 고객들이 사랑하는, 현지 정부가 신뢰하는 외국기업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 다국적기업이 우리나라에서 기업하기가 힘든 이유 중 하나 는 한국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우리 정부로부터 신뢰받지 못했기 때 문인 것 같다. 즉 세련된 국제화를 원하는 국내 대기업이나 외국 다국적기업은 모두 현지시장에서 '좋은 기업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 기업들은 국제화를 본격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원화절 상은 이러한 한국 기업의 국제화를 한동안 부추길 것이다. 그러나 기본에 충실 하면서 세련된 국제화를 해야 한다. 비단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국민도 이제는 국제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 져야 한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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