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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태
변영태 선생님은 일제강점 하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다 해방 후 대학교수, 외무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일제강점기 말에 중앙에서 선생님으로 우리나라(조선어) 말로 강의를 하다가 일본인 장학사가 오면 영어로 강의를 하셨다는 일화가 있다.
변영로(卞榮魯, 1898-1961, 수주 樹州)
◦ 서울생. 중앙학교 (6회) 졸업 후 이화여전에서 교편생활 후 도미(渡美)
◦ 13세부터 한시 창작, 16세에 영시를 지어 [청춘]지에 발표.
◦ 우리 나라 신시에서 기교파의 선구 시인(기교에 중점을 두고 어귀의 선택과 연마에 시인적 재능을 보였으며, 민족의식을 세련된 기법으로 시화시킴)
◦ 캘리포니아 산호세 대학 졸,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 [신동아] 편집국장
-<논개>는 민족주의적 정신을 논개의 붉은 애국심과, 민족사의 흐름으로 상징되는 푸른 남강에 대비해 형상화한 그의 대표작.
◦ 초기작으로 <운상소요(雲上逍遙)>, <저녁놀빛>, <사벽송(四壁頌)>
작품경향 - [한국문학지도] (상)
- '생시에 못뵈올 임'에서 볼 수 있는 서정성
- '논개'에서 배어나오는 민족주의 정신
◦ 작품집 : [수주 시문선], 변영로 유일 시집 [조선의 마음], 수필집 [명정 40년(酩酊40年)]
◦ -명정(酩酊) :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함 (intoxication) * 酩(술 취할 명; 酉-총13획), 酊(술취할 정; 酉-총9획)
◦ 1) 묘(경기 부천시 고강동 산63번지 일대) : 변씨 일가 3대의 묘(변영로, 변영태, 변 영만 3형제, 그의 부모, 조부모)가 계단식으로 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