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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 위기' 개그맨, 노인들에 웃음 선사> | 2004/10/27 05:10 송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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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상돈 기자 = 앞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의 실명 위기에 처한 50대 개그맨이 수년간 봉사활동을 통해 소외된 노인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동양방송(TBC) 공채 개그맨 2기 출신으로 시각 장애를 갖고 있는 김민(51)씨.
김씨는 1980년 TBC 공채 개그맨으로 선발되면서 꿈을 키워갔다. 당시의 동기생 중에는 나중에 유명 개그맨이 된 이하원과 장두석, 이성미 등이 있다.
그러나 같은해 11월 언론통폐합으로 동양방송이 한국방송(KBS)에 흡수되면서 새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김씨는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이후 생계를 위해 야간업소에 나갔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은 식지않아 지금도 전직 대통령 성대모사 등을 통해 특유의 만담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3년 전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왔다. 당뇨 합병증으로 백내장에 녹내장까지 겹치면서 시력까지 잃게 될 위기에 처한 것.
수술을 하더라도 고치기 힘들다는 의사의 진단은 김씨에게는 너무나 힘든 고통이었다. 김씨는 지금도 눈에 하루 3가지 안약을 아침, 점심, 저녁 세차례 넣고 있다.
김씨는 그러나 힘든 형편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각자 나름대로 봉사 활동을 해온 지인들과 봉사단체를 결성했다.
`늘푸른샘'이란 이 봉사단체에는 24년지기인 악단장 강길성(48)씨와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인 김호평(45)씨가 동참했다.
김씨는 주어진 환경에 맞게 봉사활동 대상을 노인들에게 맞췄다. 특히 `팀원'인 김호평씨는 치매에 걸린 노부모의 병수발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한달에 한번씩 서울과 경기도 일대 양로원, 장애인 시설 등을 찾아 두시간씩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노인들이 20일간 즐거워하는 것 같다고 김씨는 전한다.
김씨는 "외로운 노인들을 위해 자선무대에 서는 것이야말로 인기 연예인이 한번 무대에 서서 고액의 개런티를 받는 것보다 더 큰 보람과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씨 등은 이번 달에는 27일 오후 2시부터 장충체육관에서 효도 공연을 할 예정이다. 이 행사에는 가수 남일해씨와 김부자씨, 국악 명창 박계향씨 등도 흔쾌히 동참키로 했다. <사진있음> kaka@yna.co.kr
화제의 주인공은 동양방송(TBC) 공채 개그맨 2기 출신으로 시각 장애를 갖고 있는 김민(51)씨.
김씨는 1980년 TBC 공채 개그맨으로 선발되면서 꿈을 키워갔다. 당시의 동기생 중에는 나중에 유명 개그맨이 된 이하원과 장두석, 이성미 등이 있다.
그러나 같은해 11월 언론통폐합으로 동양방송이 한국방송(KBS)에 흡수되면서 새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김씨는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이후 생계를 위해 야간업소에 나갔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은 식지않아 지금도 전직 대통령 성대모사 등을 통해 특유의 만담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3년 전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왔다. 당뇨 합병증으로 백내장에 녹내장까지 겹치면서 시력까지 잃게 될 위기에 처한 것.
수술을 하더라도 고치기 힘들다는 의사의 진단은 김씨에게는 너무나 힘든 고통이었다. 김씨는 지금도 눈에 하루 3가지 안약을 아침, 점심, 저녁 세차례 넣고 있다.
김씨는 그러나 힘든 형편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각자 나름대로 봉사 활동을 해온 지인들과 봉사단체를 결성했다.
`늘푸른샘'이란 이 봉사단체에는 24년지기인 악단장 강길성(48)씨와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인 김호평(45)씨가 동참했다.
김씨는 주어진 환경에 맞게 봉사활동 대상을 노인들에게 맞췄다. 특히 `팀원'인 김호평씨는 치매에 걸린 노부모의 병수발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한달에 한번씩 서울과 경기도 일대 양로원, 장애인 시설 등을 찾아 두시간씩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노인들이 20일간 즐거워하는 것 같다고 김씨는 전한다.
김씨는 "외로운 노인들을 위해 자선무대에 서는 것이야말로 인기 연예인이 한번 무대에 서서 고액의 개런티를 받는 것보다 더 큰 보람과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씨 등은 이번 달에는 27일 오후 2시부터 장충체육관에서 효도 공연을 할 예정이다. 이 행사에는 가수 남일해씨와 김부자씨, 국악 명창 박계향씨 등도 흔쾌히 동참키로 했다. <사진있음> kaka@yna.co.kr
2004.10.22 (금) 14:25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기사보기 |
무명 개그맨 김민 내 마음의 개그 멈출수 없습니다 | ||||||||||||
[일간스포츠 송영신 기자 박동준 기자] 그는 요즘 들어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사물도 분간하기 힘들어졌다. 담당 의사는 그가 내년이면 더 이상 세상을 볼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실명(失明). 이 무슨 천형(天刑)인가. 짙푸른 가을 하늘, 분주히 오가는 거리의 시민들, 녹음 우거진 남산…. 낯익었던 세상의 모습들이지만 벌써 머리 속에서 오래된 일기장처럼 바래지고 있다. 그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 가족이 잠든 사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낀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앞이 안 보이게 되더라도. 그들이 즐거워만 한다면 불우한 이웃들을 위한 코미디를 계속할 작정이다. 지팡이를 잡고 무대에 올라가 이웃들을 코미디로 웃기고, 배꼽 잡고 깔깔대는 웃음 소리를 들으며 파안대소하는 모습들을 머리 속에 그려나갈 생각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 열심히 대본을 확인하는 김민 씨. 희미해져가는 시력 때문에 대본의 글씨는 더욱 커졌고 대본과눈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진다. 김형곤 장두석과 개그맨 공채 동기 개그맨 김 민 씨(51). 1980년 6월 김형곤 장두석 이성미와 TBC 공채 개그맨 2기로 출발한 코미디언이다. 많은 사람들은 라디오 프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 <노래하는 곳에> 진행자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20여년이 지난 오늘 그는 실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2년 전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백내장과 녹내장으로 오른 쪽 눈을 잃었고 왼 쪽의 시력도 날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내년이면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될 처지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정신적으로 감내하기 힘들만큼 기막힌 운명을 껴안고 있는 그는 그러나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이 고통을 삭이면서 매월 초 서울 구기동에 있는 청운양로원을 찾고 있다. 노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다. 그가 하는 개그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웃는다. 수없이 들었던 레퍼토리도, 시절 지난 썰렁한(?) 농담도 그가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웃는다. 미련스럽고 어리숙하게 보이는 그의 행동 뒤에 훈훈한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위문공연에 나설 때마다 두 '동생'들도 함께하곤 한다. 할머니들은 이들을 '세 아들'이라고 부른다. 둘째 아들 강길성 씨(48)와 막내 아들 김호평 씨(45)다. 이들은 양로원을 찾을 때면 과일이며, 빵을 사 갖고 간다. 김 씨는 "한달에 150만원이나(?) 버는데 7만~8만원 좋은 일에 못 쓰겠느냐"고 말한다. 그는 자신도 어려운 형편에 남들을 돕는 것을 의무라고 말해 기자를 부끄럽게 했다. 할머니들에게 김 씨는 정말 기특한 아들이다. 자식들의 따뜻한 체온이 그리운 할머니들에게 스스럼 없이 손을 잡고 얼굴을 부비는 김 씨는 친자식 이상으로 고마운 존재이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그의 살가움 뒤에 있는 가슴 아픈 현실을 모른다. 완전한 실명을 앞 둔 그는 "두렵다"고 했다. 빛도 안보이는 캄캄한 어둠에 갇히는 꿈에 몸서리치며 잠에서 깨는 일도 잦아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마음을 다잡고 있다. 한 줄기 빛이라도 볼 수 있는 그날까지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하나씩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마다 '삶의 경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어머니와 함께 춤을~?' 시력을 잃어 가는 개그맨 김민 씨가 양로원의 할머니들과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두 동생들과 위문 공연 가슴 뿌듯 그는 데뷔 직후부터 개그맨이자 방송 진행자로 맹활약했다. 그러나 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 정책으로 인해 라디오 진행에서 손을 떼게 된 다음부터 그의 삶은 시련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후 20여년 동안 그는 밤무대를 전전하며 웃음을 팔았다. 재미없다고 술을 끼얹거나 다짜고짜 손찌검을 하는 손님도 많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참았다. 자신이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해서였다. 2001년 뜻을 같이하는 동생들을 만나고부터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보람도 생겼다. 김 씨는 "즐거워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무대 위에 서 있다. "현대인은 너무 스트레스에 지쳐 있어요. 가장 좋은 치유책은 웃음이지요. 많이 웃을수록 개인이 건강해지고,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그가 펼치는 코미디 예찬론이다. 10월 27일 오후 2시에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2004 동방예의지국 경로효 잔치' 행사를 벌인다. 60세 이상의 할아버지 할머니면 누구나 무료로 참석이 가능하다. 3시간에 걸쳐 사회를 봐야하는 힘든 무대지만 눈이 보일 때의 마지막 공연이라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라며 웃는 개그맨 김 민. 이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개그를 한다는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한편 김 민은 오는 27일 오후 2시에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2004 동방예의지국 경로효 잔치' 행사를 벌인다. 60세 이상의 할아버지 할머니면 누구나 무료로 참석이 가능하다. 3시간에 걸쳐 사회를 봐야 하는 힘든 무대지만 눈이 보일 때의 마지막 공연이라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려도 “공연 잘했어요”한마디에 활짝 웃는 우리 형님… - 의형제 김호평 "형님 죄송합니다." 2001년 김 민 씨와 만난 이후 친형제와 다름 없이 지내고 있는 김호평 씨(45)는 깊은 후회의 말부터 끄냈다. "제가 형님이 투정처럼 이야기하던 '눈 아프다'란 소리에 병원 한 번만 모시고 갔어도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텐데…." 말 끝을 흐리는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김호평 씨는 요즘 김 민 씨 앞에서 항상 "형님 저 여기 있습니다"고 크게 외쳐야 한다. 김 민 씨가 잘 안보이는 눈으로 여기 저기 자신를 찾는 모습이 싫고 미안해서다. 김민 씨도 무대에서 내려올 때면 "김 장군 나 잘했어?"라며 항상 그를 찾는다. 동생을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장군이라 부르는 김 민 씨는 "예, 형님 잘하셨어요"란 대답을 듣고서야 표정이 밝아진다. 그가 보는 김 민 씨는 어쩔 수 없이 밝은 사람이다. 때로는 멀어가는 자신의 눈 때문에, 때로는 힘든 일과 사랑하는 가족 때문에 힘들지만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김 민 씨가 때로는 답답하다고 했다. "항상 손해보고 사는 타입입니다. 사리사욕이 너무 없는 것도 문제예요". 김호평 씨는 "형님, 제가 앞으로 두 눈이 되어 드리겠습니다"고 다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글=박동준 기자 송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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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세상은 이처럼 착하고 은혜로운 이들이 이끌어 감에, 저희는 내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