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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81회 작성일 2004-10-17 00:00
영화 글래디에이터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본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이 이야기는  영화 "글래디에이터 Gladiator"로 시작하려 한다. 30 년 전 거의 동일한 내용의 영화가 "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었었다. 물론 두 영화 모두 세 번째 소개한 책인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기본 줄거리로 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이 영화의 감동이나 가치, 그리고 웅장한 기법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편의 영화나 그림, 음악, 책에서 받는 감동은 개인적인 것이어서 남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단지 여기서는 다른 기록과 비교하여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창조력[?]을 발휘하였는지를 검토해 볼 뿐이다. 또한 영화의 스토리와 역사적인 사실을 혼동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시작되는 기원후 180 년은 기번이 아래와 같이 말한 시대이다.
 "만일 세계사에서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또 번영했던 시기는 어느 시기였는가를 질문받는다면, 사람들은 아무런 주저 없이 아마 도미티아누수 황제의 사망(96 년)부터 코모두스 황제 즉위(180 년)까지의 시기를 들 것이다(네르바 황제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 이르는 이른바 5 현제(賢帝) 시대이다). 이때는 광대한 로마제국의 전 영토가 덕과 지혜로써 지도된 절대권력 밑에 통치되고 있었다."[로마제국의 쇠망, 1 권, p 123]


 처음으로, 영화와 역사가의 견해가 다른 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주제 중의 하나인 아우렐리우스 황제(121 - 180; 참고로 삼국지의 유비는 161 - 223 이다)와 코모두스의 관계이다. 기번은 코모두스를 망친 것은 아루렐리우스의 편애, 과중한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영화에서는 코모두스가 폭군이 되는 이유가 아버지 아우렐리우스의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이제 겨우 14 - 15 살밖에 되지 않은 그(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을 황제 권력의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시켰던 것이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가장 사랑을 받았던 아들이 원로원과 군의 환호속에서 즉위하였다. 그가 행복한 젊은이를 왕위에 오르게 했을 때 그 주위에는 단 한 사람의 배제해야 할 경쟁자도 없었거니와 벌줄 적대자도 없었다."[P 131]


 이 아들 코모두스는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이었다.


 또한 백과사전 브리태니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77년 마르쿠스는 16세의 아들 코모두스를 공동 황제로 선포했다. 그들은 협력하여 도나우 강 전쟁을 다시 시작했다. 마르쿠스는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하여 제국의 북쪽 국경선을 확장·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180년 마르쿠스가 아들 코모두스를 국정의 최고 조언자로 임명하고 난 직후 군대 사령부에서 숨을 거두었을 무렵 거의 결실을 맺고 있었다."


 영화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코모두스는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계속 전쟁을 하고 있었으며, 그를 완전한 후임자로 임명한 후에 아우렐리우스가 죽은 것이다.


 기번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부황인 마르쿠스의 사후까지 코모두스는 대병단의 지휘와 콰디족 및 마르코반족을 상대로 어려운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P 132]


 또한 기번은 영화의 주인공의 하나인 황제의 딸 루실라(Lucilla)에 대해서 영화와 전혀 다른 진술을 하고 있다.
 "183 년 어느날 밤, 코모두스가 자기의 숙소인 내전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어둠에 잠긴 콜로세움의 좁은 주랑(柱廊)을 막 벗어나고 있을 때, 잠복하고 있던 한 자객이 검을 빼어 들고 습격하였다. ...



 코모두스 황제의 누님이며 루키우스 벨루스의 미망인인 루실라가 제국의 서열 3 위의 지위에 있는 것이 미흡하여 참지 못한데다가 황후인 파우스티나에 대한 질투심까지 결부되어 이처럼 자객을 무장시켜 동생 [코모두스]의 생명을 노리게 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녀라 해도 이 무서운 음모에 대하여 현재의 남편이며, 유능한 원로원 의원이자 충성스러운 인물이기도 한 클로리우스 폼페이아누스[이 사람은 영화에 나오지 않으나 여기 언급되는 모든 인물 중 가장 오래 살아 남은 사람이다]에게 이 행동을 상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그녀의 정부들 중에는 무모하기 그지없는 야심가들도 있었는데 이런 자들은 그녀의 바람기뿐만 아니라 보다 광기어린 집념에까지 기꺼이 봉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런 음모자들은 물론 엄벌을 받았다. 그리고 파렴치한 루실라도 처음에는 유형에 처해졌으나 뒤이어 사형을 받았다."[p 133]
 즉 루실라가 먼저 코모두스를 암살하려 하였으며, 영화와 달리 코모두스보다 먼저 죽었다.


 물론 코모두스가 좋은 황제였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 중 막시무스[Maximus]가 있다. 이 사람과 영화의 막시무스는 동일 인물이 아닐 수 있다.
 "이와 같은 폭정에 쓰러진 무고한 희생자 중에서도 가장 애처롭게 여겨지는 것은 퀸틸리아누스가의 형제들인 막시무스와 콘디아누스 두 사람이다. 이 두사람의 형제애는 그 이름이 오랫동안 망각되었다가 빛을 보게 되어, 후세에까지 향기로운 회상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 막대한 재산을 이어 받았는데도 두 사람에게는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생각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었고, 이 형제가 협력해서 쓴 한 논문('농업론'이라 하는 것)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지만, 일생동안 무엇을 해도 두 사람은 완전히 일심동체였다. 이들의 덕행을 존중하고 그들의 화목한 우애심을 기뻐한 두 안토니우스 황제[임주(任註); 아우렐리우스의 전임황제와 아우렐리우스]들은 한날 한시에 두 사람을 모두 집정관으로 임명하였었다. 그후 마르쿠스 황제는 다시 그리스 속주의 민정과 군사권을 이들 두 사람의 공동관리로 위임했는데, 여기서도 이들은 게르만인과의 전쟁에서 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동정심이 많았던' 코모두스 황제의 잔인성은 마지막 죽음에 있어서까지 이 두 사람을 '일심동체'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p 134]
 막시무스가 게르만과의 전쟁에서 대 승리를 거둔 것이 이 영화의 몇 안되는 진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는 코모두스에 의해 사형당했다.


 영화에서 막시무스의 자식과 부인이 십자가에서 화형을 당했다는 것은 사실이기 어렵다. 로마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것은 노예나 로마 시민이 아닌 경우에 한하였다. 그러므로 로마의 체제에서 아무리 폭군 코모두스라 하여도 장군의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재판 없이 십자가형에 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지 친위대를 시켜 원로원 의원에게 자살을 명한 것은 역사책에 나온다. 로마인이 법 체계를 존중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도 바울도 로마 시민이라는 이유로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다.


 코모두스가 결정적으로 로마 시민들의 인심을 잃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투기장의 우리에서 100 마리의 사자가 단번에 내몰려 나온 일도 있었다. 그러나 황제의 손에서 던져진 100 자루의 투창은 그 사자 무리가 투기장 안을 날뛰며 돌아 다니는 사이에 단 한 자루의 빗나감도 없이 모두를 맞혀서 한 마리 남김없이 사체로 만들고 말았다. 거대한 덩치의 코끼리 몸뚱이도, 코뿔소의 가죽도 그가 던지는 창끝을 막아낼 수 없었다. ...
 그러나 하층계급의 일반민중들조차 이것을 너무 지나친 행위라하여 분노와 치욕감을 느낀 것은, 자기 황제가 하필이면 일개 검투사로 분장하고 등장해서 국법이나 습관도 천한 직업으로 낙인찍어 놓은 그런 직업인의 흉내를 마치 자랑스러운 듯이 연출했을 때였다.
 ... 황제는 투기사 역을 담당하여 실로 735 회나 싸웠다."[p 142]
 실제로 코모두스는 상당히 훌륭한 검투사였다. 영화의 막시무스가 앞에서 설명한 그 막시무스라면 코모두스에게 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30 년 전의 영화에서는 위의 사실을 위해 마지막의 황제의 싸움을 투창으로 하는 것으로 꾸몄다. 물론 그 영화에서도 코모두스가 죽지만 비겁한 승부는 아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악인을 더 비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세상에 날이 갈수록 비겁한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일까?


 코모두스는 여러 사람들을 죽이더니 드디어는 자기 측근에게 죄를 씌워 죽이기 시작하였다. 코모두스의 죽음에 대해서 기번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윽고 그의 가족들조차 공포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운명도 끝장이 났다. 동료나 선임자의 죽음을 보고 깜짝 놀란 애첩(愛妾) 마르키아, 시종무관장 에클렉투스, 근위대 장관 레투스, 이 세 사람이 포악한 군주의 바보같은 변덕으로 혹은 갑작스런 국민의 분노로 언제 [자기들의] 머리위에 떨어질 지 모를 죽음의 운명을 저지하기로 결의하였다."[p 144]
 시종무관장과 근위대장과 더욱이 애첩까지 황제의 반대편에 가담했다는 것은 실제로 황제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이반(離叛)한 것이다.



 "때는 마침 황제가 동물사냥으로 기진맥진하였을 때였다. 포도주 한 잔 권하는 기회를 마르키아가 이용하였다. [독약을 먹였다] 황제는 침실로 물러났으나 점차 독과 취기가 온몸에 퍼져서 신음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역기(力技)를 직업으로 하는 건장한 젊은이 한 사람이 침실로 들어와서 아무런 저항도 받지않고 황제를 목졸라 죽이고 말았다. 시내는 물론 궁중에서도 황제가 죽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 사이에 사체가 비밀리에 황궁으로부터 밖으로 운반되어 나왔다. 바로 이것이 현명한 군주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외아들 코모두스 황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온갖 권력을 휘둘렀고, 재위 13 년간에 몇 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생활을 폭력으로 억눌러 온 대상이던 이 폭군을 쓰러뜨리는 일은 이처럼 매우 간단했던 것이다.(디오-카시우스, '로마사' 제 73 권 22 절, 헤로디아누스, '로마사' 제 1 권, '황제열전' 제 7 권 제 17 절)[p 144]
 적어도 코모두스는 경기장에서 죽지 않았다.


 여하튼 코모두스는 자기 아버지에 비해 논의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영화 제작자는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이제 명상록으로 돌아가자. 나는 여러분이 이 사람을 황제가 아니라 홀로 선 한 사람의, 고독한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이 고백록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기원 후 백년 경에는 두 사람의 대(大) 스토아 철학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노예로 에픽테토스이고, 또 한 사람은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다.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은 로마인의 위엄을 간직하고 견실한 생활을 이끌어 나가는 데 크게 힘이 되었다.


 백과사전 브리태니커에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가 있다. "철인왕(哲人王)의 사상이 담겨 있는 〈명상록〉은 오랜 세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왔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에 관한 백과사전의 내용이 매우 많아 본문 다음에서 소개하였고, 여기서는 스토아 철학에 대한 간단한 내용만을 소개한다.



스토아 철학   Stoicism  COPYRIGHT (C)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9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철학.


 모든 탐구의 목표는 평온한 마음과 확실한 도덕을 낳는 행동양식을 인간에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토아 철학의 특성과 영역
 
초기 스토아 철학은 이전 철학과 달리 지식의 추구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헬레니즘 철학을 대표한 스토아 철학은 보편적이고 평온하며, 질서있는 존재와는 거리가 먼 생활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삶의 방편(ars vitae)을 내놓았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보기에 영원한 우주질서와 불변적인 가치의 근원을 드러내는 일은 이성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성은 곧 인간 존재가 따라야 할 모범이었다. 그들에 따르면 이성의 빛이란 세계 전체에 경이로운 질서를 부여하며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여 질서있게 살아가는 기준이다. 스토아 도덕철학도 세계가 통일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도시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은 이 도시의 충성스런 시민으로서 덕과 올바른 행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 일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가 있다. 스토아 도덕철학은 도덕 가치, 의무, 정의, 굳센 정신 등과 같은 덕목에 중심을 두고 보편적인 우애와 신처럼 넓은 자비심을 강조함으로써 가장 호소력 있는 학설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스토아 학파는 처음 형성된 후 2세기까지 그 영향력이 가장 컸으며, 이후 사상의 발전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후기 로마 시대와 중세에 이르는 동안 스토아 도덕철학의 일부는 그리스도교·유대교·이슬람교 등이 인간과 자연, 국가와 사회, 법과 제재에 관한 이론을 형성하는 데 적용되었다. 현대에 와서도 스토아 철학의 개인중시 사상 및 갈등과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설은 실존주의와 비정통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다시 주목받았다.







책 내용



<1>


1. 나는 조부 베루스에게서 선량한 행실과 격정의 절제를 배웠다.


2. 아버지의 명성과 회상에서 겸손과 남성적인 기질을 배웠다.


3. 어머니에게서는 경건과 인덕(人德), 그리고 나쁜 행위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도 버려야 할 것을 배웠으며, 부자들의 습성에서 멀리 떠나 소박하게 사는 방법을 배웠다.


[임성삼의 주(註); 이 것 이상의 배움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의 배움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4. 증조부로부터는 공립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고, 가정에서 훌륭한 스승을 모셔 배우되, 이런 일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함을 배웠다.


[임성삼의 주(註); 동양에서는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 배웠으나 서양에서는 집에 모셔서 배웠다. 결국 현재 문화가 깊은 나라들에서 말썽인 과외공부가 그 시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5. 나의 스승에게서는 경기장의 경주에서 청(靑), 백(白)의 어느 편을 들어서도 안되며, 또 검투사(劍鬪士)의 격투에서는 둥근 방패를 든 편을 들어서도 안 되고 모난 방패를 든 편을 들어서도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노역(勞役)을 견디고, 욕망을 줄이며, 자기 손으로 일을 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며 남의 비방에 귀를 귀울여서는 안된다는 것도 가르쳐 주셨다.
[임성삼의 주(註); 스승에게서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하며, 참된 인간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6. '디오그네투스'에게서는 번거로운 일에 열중하지 말 것,


[임성삼의 주(註); 번거로운 일에 열중하면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없다.]



주문(呪文)인 악귀를 쫓는 마술사나 요술가의 말을 믿지 말 것,


[임성삼의 주(註); 이것을 믿게 되면 자신의 이성을 믿지 않게 된다. 자기의 판단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싸움을 시키기 위한 [독]수리 등속을 기르거나 이러한 일에 열중하지 말 것,


[임성삼의 주(註); 지금으로 말하면 사냥, 낚시 등의 취미생활을 말한다.]



언론의 자유를 용인하고 철학을 숭상할 것, 특히 우선 '바키우스'를 비롯하여 점차로 [여러 좋은 선생의 가르침을 받을 것] 등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 결과 어릴 적부터 대화하는 것을 배우고, 널판 침대와 가죽 옷, 그 밖의 그리스식 단련에 속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7. 루스티쿠스에게서는
[임성삼의 주(註);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물론 그 당시에는 중요한 사람들이었겠으나 우리에게는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말한 내용이 더 중요하다.]


나 자신의 성격을 바로잡고 또한 수양
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배운 것은 궤변의 시합이나 공리공론(空理空論)의 붓을 들거나, 번거로운 권고의 변설을 휘두르거나, 또는 많은 수양을 쌓은 것처럼 자기를 과시하거나, 허식적인 자선(慈善)행위를 하는 이러한 그릇된 길에 빠지지 말고, 또한 수사학이나 시와 노래나 화려한 문자를 배격하는 것 등이었다.
[임성삼의 주(註); 친구에게서 좋은 것을 배웠다.]


 또한 외출복의 정장을 한 채로 방안을 걸어다니거나 이와 유사한 일을 하지 말며,
[임성삼의 주(註); 예절은 집에서도 지켜야 한다. 집에서는 집의 옷을 입는 것도 중요한 예절이다.]


편지
를 쓰되 "시누에사"라는 곳에서 어머니에게 써 보낸 것처럼 소박하게 쓸 것,


나를 모욕하고 또 무례한 짓을 하는 자들에 대하여 그들이 화해의 뜻을 표하면 곧 마음을 풀고 융화할 수 있는 기풍을 기를 것,
[임성삼의 주(註); 단지 무례한 자가 화해의 뜻을 표하기 전에 그들에게 내가 아첨으로 화해의 뜻을 전해서는 안된다.]


무릇 책은 정독하여 표면적인 이해에 만족하지 말 것
,
[임성삼의 주(註); 이를 위해 나는 현재 거의 모든 책의 중요한 구절을 적어 여러분에게 보내고, 이런 주석을 붙이는 것이다.]


말이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는 경솔하게 맞장구를 치지 말 것
등등을 가르쳐 주었다.  .....


8. 아폴로니우스에게서는
의지의 자유와
끝까지 목적을 관철하는 것
을 배우고
또한 한동안이라도 이성(理性) 이외에는 아무 것도 의지하지 말며,



심한 고난을 당하거나 ...
오랫동안 질병으로 고생하더라도 언제나 태연자약(泰然自若)한 태도를 취할 것
,


[임성삼의 주(註); 참 어려운 것을 배우셨다.]


그리고 용감무쌍한 동시에 매우 유순하며


자제(子弟)를 가르칠 때는 성급해서는 안 된다는 산 실례(實例)를 분명히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철학상의 여러 가지 큰 원리를 해설하는 것과 같은 자기의 경험 또는 숙련 등은 조그만 재능에 불과하다고 분명히 자각하고 있는 것을 그에게서 발견하였다.


 뿐더러 친구의 신세를 지면서도 결코 비굴해지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무관심하게 관과하지 않는 태도를 역시 그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9. 세크스투스[플루타르크의 손자, 혹은 조카]에게서는
인자스러운 성격과 자부(慈父)의 미덕에 의해 가꾸어진 가정의 본보기와,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또 허식이 없는 엄숙한 태도며,
친구들의 이득을 자상하게 고려하고,
무지한 사람들이나 분별없는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 등을 배웠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나, 유쾌한 얼굴로 대하여, 자기를 융화시키는 재능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와의 교제는 어떠한 아부보다도 즐거웠으며,
그 때문에 그는 교제하는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실생활에 필요한 처세의 강령을 발견하는 동시에,
그것을 총명하고 조직적인 형식으로 질서를 세우는 재능도 갖고 있었다.


그는 분노는 물론이고 어떠한 감정도 절대로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다.


모든 감정에 벗어나 있으면서도, 애정이 매우 깊었었다.
그는 떠들썩하게 과시하지 않고서도 칭찬의 의사를 표시할 수가 있었으며, 허식없는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10. 문법학자 알렉산더에게서는
남의 흠을 잡기를 삼가며,
천한 말이나 그릇된 문법이나, 이상한 발음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비방하지 않고, 오히려 그 경우에 사용해야 할 올바른 표현을 교묘히 가르쳐 주되 직접 그 말로써가 아니라 다만 이에 대한 답변이나, 찬동의 표명이나 또는 질문과 같은 형식을 빌어서 시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11. 프론토우에게서는,
폭군이나 군주에게 어떤 질투와 위선이 존재하는가를 간파할 것과,
[임성삼의 주(註); 폭군과 군주를 동일하게 취급한 것을 인정하자.
어떤 기관이든지 기관장의 성격에는 동일한 면이 있다.]


우리 사이에서 귀족이라고 부르고 있는 자들에게는 대체로 자부(慈父)의 성격이 결핍되어 었음을 간파할 것을 배웠다.
[임성삼의 주(註); 프론토우는 나와 비슷한 성격의 사람이었을지 모르겠다.]


12. 플라톤학파의 알렉산더에게는
자기에게 여가가 없음을 남들에게 때때로, 그리고 부질없이 말하거나, 또는 그것을 편지로 써 보내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급한 일에 몰린 것을 구실로 삼고, 친한 사람들과의 교제에 필요한 의무를 게을리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13. 카테울스에게서는
어떤 친구가 자기의 결함을 발견한 경우에, 비록 그것이 무리한 억지라고 하더라도, 이를 모른 체 방임하지 말고, 그 사람을 본래의 성품으로 돌아가게 하도록 힘써야 함을 배웠다.
그리고 스승들에 대하여는 도미티우스와 아케노도투스의 고사(故事)를 본받아 언제나 옳은 말을 하고,
또 자기의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할 것을 배웠다.


14. 사랑하는 형제[역주(譯註); 저자는 형제가 없었으므로 사촌 정도였을 것이다] 세베루스에게서는
자기의 친족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정의를 사랑할 것을 배우고, 또한 그에게서 트라세야, 헬베디우스, 카토, 디온, 브루터스 등에 대하여 배웠다.
[임성삼의 주(註); 자기의 친족을 사랑하는 것은 '중용'에서도 나오는 중요한 덕목이다.


나중에 나오는 여러사람은 과거 공화정의 인물들이다. 과거의 사람에 대해 배우는 것도 큰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만인을 위해 동일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정치적인 주장, 즉 평등의 권리와 언론상의 평등한 자유를 인정하고 통치하는 사상과 ,피치자(被治者)의 거의 모든 자유를 존중하는 왕자다운 통치의 관념을 배우게 되었다.


[임성삼의 주(註); 그 시대의 이 황제가 지금 민주사회의 대부분의 정치가보다 더 진보적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철학에 대한 자기의 입장은 종시 일관하여 변함이 없어야 하며, 선한 일을 행하고,
기꺼이 남에게 베풀며, 선량한 희망을 품고, 친구들에게서 스스로 사랑을 받고 있음을 믿을 것을 그에게서 배우게 되었다.


그는 자기를 배척하는 사람들에게도 자기의 진의를 감추지 않고 말한다
.


그러므로 친구들은, 그의 의향을 억측할 필요가 없이 분면하게 알게 됨을, 나는 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다.


15. 막시무스에게서는


[임성삼의 주(註); 그 당시 흔한 이름이었으나, 내가 앞에서 소개한 그 막시무스일 가능성이 있다.]


자제를 배우고,
또한 다른 일에 미혹되지 않으며 병들었거나 그밖에 모든 경우에 쾌활하고 상냥하며 무뚝뚝한 어느 덕성이나 적당히 조절하여, 불평을 하지 않고, 자기 일을 처리하는 것을 배웠다
 그는 언행이 일치하고, 그가 하는 일은 모두가 한결같이 악의에서 우러나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아무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결코 놀라는 얼굴을 하지 않았으며, 서두는 법이 없었다.
 그런가하면 무슨 일에나 방치하지 않았으며, 당황하지도 않았다.


 실망하거나 자기의 곤경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일이 없었다.


[임성삼의 주(註); 사회생활에서 자기의 잘못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면 안된다. 그저 묵묵히 인정하는 것이 가장 나은 길이다.]


언제나 인자스러운 행동을 하였고, 남을 용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모든 허위에서 떠나 있었다.


 그는 연단(鍊鍛)을 받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정의에서 떠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아무도 그에게서 멸시를 당했다고 생각하거나, 자기를 그에 비해 뛰어난 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즐겁게 유머를 곧잘 하는 재능도 갖고 있었다.


[임성삼의 주(註); 적어도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주인공 막시무스와는 전혀 다른 성격이다.]


16. 나의 아버지[전왕(前王); 양부, 안토니우스 피우스]에게서는 온유한 기질과 사물에 대하여 충분히 생각하고 나서 굳은 결의를 한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임성삼의 주(註); 바로 전(前) 로마 황제에 대한 언급이 이렇게 16 번째로 나중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이 분도 또한 로마의 5 현제(賢帝)의 한 분이었다. 아래의 사항을 보면 최고의 인간이었던 것 같다.]


 남들이 명예롭게 생각하는 일에 허영을 구하지 않고, 노고와 정진을 사랑하고, 대중의 이익을 위해 건의하는 사람들의 말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각자의 공과 과에 따라 상과 벌을 주어 일을 불공평하게 처리하지 않는 그 견실(堅實)성, 민활한 행동과 사면(赦免)에 있어서 경험이 풍부한 임기응변(臨機應變)의 지려(智慮) - 그러한 것들을 나는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웠다. ...


당신을 일반 시민과 조금도 다름없는 사람으로 간주하였다.


 당신의 신하에 대해서도 함께 식사를 나누거나 출타할 때에 필요한 시종 등 모든 의무를 면제시켰다. ...


 아버지는 모든 중요한 일에 대하여 용의주도하고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 첫눈에 보이는 외관만으로 만족하여 탐구를 그만두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성격상 친구를 오래 사귀며, 곧 싫증을 내거나 또 애정을 마구 표시하는 일이 없고, 언제나 만족하고 쾌활한 얼굴을 하였다.


 또한 모든 사물을 훨씬 이전부터 내다보고, 사소한 일도 허실없이 미리 준비해 두고, 세속의 갈채나 아부를 재빨리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라의 통치에 필요한 일에 대하여는 언제나 주의를 기울이고, 국고금의 훌륭한 관리인이 되고자 애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로 말미암아 당신에게 돌아오는 비난을 참을성 있게 견디곤 하였다.
[임성삼의 주(註); 왕으로 오랜 기간을 견딘 사람이 전 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유럽에서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5 황제 시대의 다섯 번째 황제가 네 번째 황제에 대하여. 그러나 그 훌륭한 황제들의 행동이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행동과 다른 점이 별로 없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아버지께서는 제신(諸神)에 대하여 결코 미신적인 일이 없었다.
[임성삼의 주(註); 이번 책 소개를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강조한 사항이다. 시오노나나미의 말대로 지도자는 어느 시대든 미신에서 자유롭다.]


 또한 선심을 써서 남의 환심을 사거나, 백성들에게 아부하여 민심을 우롱하는 일도 없었다. 모든 일에 근엄하고 견실하며, 결코 비열한 생각을 하거나 행위를 하는 일이 없었다.
[임성삼의 주(註); 이런 능력있는 사람들이 이렇게하여 "로마의 평화"를 마련한 것이다.]


 또한 신기한 기호(嗜好)에 빠지지도 않았다.
[임성삼의 주(註); 언제나 그 시대의 기호에 빠지는 사람이 국가의 수장(首長)이 되면 문제가 생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인 다음 황제 코모두스는 그 당시의 기호인 검투(劍鬪)에 빠져 매일 아침 곰이나 사자를 한 마리씩 죽였다. ]


 그리고 어느 모로나 생활을 즐겁게 하고 행운을 윤택하게 공급하는 것이라면, 자랑하지도 않고 천시하는 일도 없이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


 그를 가리켜 궤변가 또는 교양이 없는 경솔한 사람이나, 현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누구나 그를 보고 원만하고 완벽하며, 특히 아부를 떠나 모든 공사(公私)의 일을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였다.


 또 아버지께서는 진실한 철학자들을 존경하는 한편, 단지 철학자인 체하는 인간에 대하여도 결코 비난하지 않고, 이들에게 쉽사리 속지도 않았다.


 좌담에도 뛰어나, 남에게 불쾌한 태도를 취하는 법이 없고, 좌석의 분위기를 즐겁게 조정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건강에 대하여 상당히 주의하였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삶에 집착하지도 않고, 육신의 외모에 마음을 쓰지도 않았으며, 또 전혀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다. 이와 같이 조심하는 까닭에 내과의사의 진찰을 받고 약을 쓰거나, 외과의사의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았다. ...


 그는 일부러 꾸미는 일이 없이, 국가의 제도와 법률을 지켜 나갔다. 또한 변화와 혼란을 좋아하지 않고, 같은 지위에 머물러 동일한 일을 보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두통이 일어난 후에도 곧 기분을 새롭게 하고, 원기 왕성하여 평소의 사무를 보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비밀이 적었다. 그것은 매우 드문 일이고, 단지 공적인 일에 관한 것뿐이었다.
[임성삼의 주(註); 모든 비밀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다음 황제의 진술이니 믿을 수 있다.]


 그는 민중의 구경거리, 관공서의 건축, 국민에 대한 자신의 시여(施輿)물 등에 대하여는 신중하고 경제적이었다.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할 뿐, 굳이 개인의 행위로 손에 넣을 수 있는 허명(虛名)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정에 없는 시간에 목욕을 하는 법이 없었다. 호화로운 거실을 지으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의 음식물과 옷감이나 색깔 또는 비복(婢僕)의 미모에 관심이 없었다. ...


 그에게서는 잔인성, 앙심, 난폭 또는 이른바 식은땀을 흘리게 하는 점은 전혀 없었다. 뿐더러 무슨 일이나 조사에 착수할 때에는 시간 여유가 많은 것처럼, 침착하고 순서를 따라 재빨리 계속적으로 진상을 캐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에 관한 기록, 즉, "많이 소유하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고, 소유하면 남용하게 마련인 재화를, 그는 소유하지 않고서도 견디고 소유하고도 적절히 즐길 수 있었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적용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17. 나는 선량한 조부, 선량한 양친, 선량한 자매, 선량한 교사, 선량한 교우(交友) 및 선량한 친족과 친구 등등, 거의 모든 선량한 것을 소유할 수 있는 데 대하여, 신들(諸神)에게 감사하고 있다.
[임성삼의 주(註);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있지 않다.]


  또 하나 내가 신들에게 감사하고 싶은 것은, 이들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나 내가 해를 입히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은 점이다.
[임성삼의 주(註); 그러나 황제의 능력이 없는 아들에게 권력을 주고 곧 죽음으로써 로마에 막대한 피해를 미쳤다. 그의 능력 범위 밖이었을까?]
 
 나는 본래 기회만 있었더라면, 이러한 과오를 범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들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시험에 빠지는 우연의 기회는 한 번도 없었다.
...


 내가 통치자로서 혹은 아버지로서 모신 사람은, 내게서 모든 자만심을 제거해 주고, 적어도 남자로서 호위병이라든가, 호화로운 정장이라든가, 혹은 횃불, 석상(石像) 같은 허식을 필요로 하지 않고 궁정에서 생활하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와 같이 생활할 수 있어야만, 자기를 한 사인(私人)이나 다름이 없는 풍습에 젖게 하면서도, 천한 사상을 갖지 않고, 또 행동을 조심하면서 통치자로서의 알맞은 태도로 공익(公益)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임성삼의 주(註); 로마가 가장 융성한 이 때의 황제의 소박한 생활 모습을 증언해주고 있다.]


 또 다시 신들에 감사할 것은 나에게 준 한 사람의 형제[역주(譯註); 의형제 루키루스 베루스]가 그의 도의적인 성격상 언제나 나를 깨우쳐 주고, 그의 존경과 우애가 나를 기쁘게 하여 주며,


또한 내 자식들은 어리석지 않고, 육신적으로 불구자가 아니며,
[임성삼의 주(註); 하지만 황제의 자리를 물려준 아들 코모두스는 뛰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수사학과 시, 그밖에 다른 학문과 예술에 능통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만일 내가 이런 일에 정진할 수 있었던들, 아마도 나는 거기에 철저히 얽매이게 되었을 것이다. .....


[임성삼의 주(註);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능통하지 못한 것도 복이다.]


 나는 아마도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 터이지만, 앞으로는 자연에 순응하여 사는 것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육신은 오랫동안 그러한 생활을 영위해 왔었다.


 내가 매우 유순하고, 애정이 깊고, 그리고 단순한 아내를 갖고 있는 것도,
[임성삼의 주(註); 역사적으로 이 황제의 아내이며 전 황제의 딸에 대하여는 여러 말이 있다. 위의 표현에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통설(通說)이다. 뒤에 백과사전에서는 위와 같은 개념이지만...]


내 자식들을 위해 많은 훌륭한 선생들을 초빙한 것도
,
[임성삼의 주(註);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1 권의 130 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황제의] 도움을 요청 받고 모여든 학덕 높고 유식한 교육고문들은 소년 '코모두스'의 편협한 마음을 열어주어 점차 심화되어가는 악덕을 교정하여 곧 인수받을 제위에 합당한 인물이 되게 하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였다.


 그러나 원래 교육의 힘이란, 처음부터 그런 교육이 거의 불필요할 정도로 본바탕 자체가 훌륭한 인간이라면 또 몰라도, 그렇지가 못한 사람이라면 대체로 거의 효과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 말이 옳은가? 잘 생각해보자. 역사에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인간성이 덜 된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우리 주위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자주 눈에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건실한 체하는 철학자의, 전혀 재미도 없는 강의 따위는 놀기 좋아하는 간신배의 한마다 속삭임에 의해 순식간에 잊혀져 버릴 것은 뻔한 일이었다."


 지성적인 황제와 유능한 학자들이 모든 힘을 다해 교육을 시켜도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이 코모두스만은 아니다.]


 또 내가 철학에 취미를 갖게 되었을 때 궤변학파(詭辯學派)의 손에 떨어지지 않고 역사가와 삼단논법(三段論法)과 추리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혹은 천체 현상의 관측에 몰두하지 않게 된 것도, 신들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다.


 이러한 모든 일에는 신들과 운명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임성삼의 이야기; 명상록의 1 장을 거의 모두 옮겼다.
 이 장의 첫 부분은 이 황제가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배운 내용이다. 사람은 책에서 보다 주위의 다른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도 우리 주위의 분들에게 어떤 좋은 점을 배웠는가를 명상(冥想)해 보는 것이 어떨까?


 상당히 많은 부분을 16 절의 전의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 사용했다. 이상적인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하는가를 잘 알 수 있다.


 17 절 이후는 자기가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이다. 살면서 감사할 줄 모르면 좋은 사람일 수 없다.]



<2>
1. 아침에는 우선 이렇게 생각할 일이다. 즉 자기는 남의 일에 참견하는 자, 은혜를 모르는 자, 교만한 자, 사기꾼, 질투하는 자, 비사교적인 자와 만나게 될 것이라고.
[임성삼의 주(註); 이런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 로마 황제였다.]


 이 모든 일은 사물의 선악에 대한 무지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한 것이 아름답고, 악한 것이 추한 데 대하여, 그 본성을 통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의 성질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비단 같은 혈통이나 종족에 속할뿐더러 동일한 신의 예지를 동등하게 나눠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손상되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추악한 것을 나에게 떠맡길 수 없고, 나는 자기의 동포들에게 화를 내거나 증오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2. 내가 어떠한 존재이건 간에, 단지 한 고깃덩이와 호흡과 지배적인 부분[정신]에 불과한 것이다.


 그대의 책을 버리라. 이제 그대 자신을 현혹시키지 말라. 그것은 허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한 사람의 늙은이다. 더 이상 [스스로를] 노예로 삼지 말라. 꼭두각시처럼 비사회적인 행동의 끄나풀에 조정되어서는 안된다.


 현재의 처지에 불만을 품어도 안 되고, 미래에서 물러나서도 안된다.


3. ... 우주는 많은 원소(元素)의 여러 가지 변화에 의해 유지되는 동시에 많은 원소가 복합된 여러 가지 사물의 변화에 의하여 유지된다. 그대는 이 원리로 만족하고, 이 원리를 언제나 그대의 견해로 삼으라.
[임성삼의 주(註); 현재의 화학과 별로 다른 개념이 아니다. 단지 화학의 원리를 정신에 끌어들여 철학으로 만들었다.]


 책에 대한 갈망을 버리라. 그것은 고민하는 일이 없이, 쾌활하게 성실하게, 그리고 충심으로 신들에게 감사하면서 죽기 위해서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 말 또한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5. 어떤 순간에도 한 로마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원만하고 순박한 위엄을 지니는 동시에 사랑과 자유와 정의감을 갖고, 당면한 일을 처리하고, 다른 여러 가지 잡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충실히 사고해야 한다.
[임성삼의 주(註); 정말 좋은 말이다.]


 만일 온갖 부주의와 이성의 명령에 대한 감정적인 반항과 모든 위선, 이기심,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한 불만을 버리고, 오직 이것이 마지막 일인 것처럼 실생활에서 하나하나 실천해 간다면, 그대는 스스로 안정을 얻게 될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실 생활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 좋은 방법이다.]


 그대가 아는 바와 같이, 조용한 생활, 신들의 생활과 같은 삶을 보내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실로 근소한 것이다. 신들은 이러한 것을 행하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밖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임성삼의 주(註); 기독교의 개념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6. ... 각자의 생명은 충족되어 있다. 그런데 그대의 영혼이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행복을 남들의 영혼에 맡기고 있는 동안에 그대의 생명은 고갈된다.


8. 인간은 남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살피지 않기 때문에 불행하게 되는 경우는 좀처럼 없지만,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주목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에 빠진다.


10. ... 참으로 철학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도록 그[테오프라스토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즉 쾌락을 위하여 저지르는 비행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저지른 비행보다 더욱 비난을 받아야 한다. ...


12. 만물은 얼마나 신속히 소멸하는 것인가. 육신은 우주 속으로 사라지고, 그 기억은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현상은 무엇인가? 특히 쾌락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또한 고통으로 인간을 두렵게 하며, 물거품 같은 명성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것들은 얼마나 무가치하고, 얼마나 비열하며, 얼마나 사멸하기 쉽고, 또 얼마나 말라 죽기 쉬운가 하는 것에 대하여는 예리한 지능만이 깨닫기 마련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 명상록에서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논리는 대단히 간단하다. 덧없다는 것이다. 허무의 관념으로 실 생활의 건전함을 내세우자는 논리가 '스토아' 철학의 원리인 것 같다.]


14. 인간은 설령 삼천 년을 살든, 또는 일만 년의 몇 배를 살든, 그래도 역시 모든 인간이 잃는 생활은, 현재 그들이 영위하고 있는 생활일 터이며, 또한 그 생활은 현재 그가 시시각각으로 잃고 있는 생명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리하여 가장 긴 생애나 가장 짧은 생애가 동일하게 된다. ...
[임성삼의 주(註); 이런 개념이 이 책의 끝까지 반복하여 나온다. 앞으로는 생략할 것이다.]


17. 인간의 생애는 하나의 점(點)으로, 물질은 유전(流轉) 속에 있고, 지각(知覺)은 우둔하고, 육체의 됨됨은 썩을 운명에 있으며 그리고 영혼은 선풍(旋風) 같고, 행운은 예측할 수 없으며, 명성은 비판이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요컨대 육체에 속하는 것은 하나의 흐름이고, 심령에 속하는 것은 꿈결 같은 운무(雲霧)이며, 생활은 하나의 투쟁이고, 또한 나그네의 행로이며, 그리고 사후의 명예는 망각이다.


[임성삼의 주(註); 황제부터 온 로마 사람이 이러한 허무 속에 있을 때, 기독교가 그들에게 희망과 빛을 주었다. 이 시대에 로마에서는 맹렬하게 기독교가 전파되고 있었다.


  즉 스토아 철학은 로마 사람들의 마음이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메마르고 허무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메마른 마음에 기독교의 복음이 비와 같이 스며 들어갔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하나 철학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 능욕하거나 가해(加害)하지 말고, 쾌락을 초월하여, 목적이 없는 행동을 하지 말며, 또한 허위나 위선에 찬 행위를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행동 여하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모든 일과 모든 운명을 자기 자신이 태어난 원천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감수하며, 끝으로 죽음에 대하여는 모든 생물이 그 구성 분자로 환원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유쾌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


[임성삼의 주(註); 그러나 철학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유쾌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 보다는 기독교의 영생(永生)을 택하게 된다. 그 길이 현세에서는 아주 힘든 순교의 길이라도...]


                           이상은 칼눈툼[다뉴브강 남쪽에 있는 판노니아의 한 고을, 야만족과의 싸움으로 이곳에서 3 년 동안 머물렀다고 함]에서 적었다.



<3>
1. 우리는 자기의 생명이 나날이 소모되고 감퇴되어 간다는 것을 염두에 둘 뿐만 아니라, 또 하나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즉 가령 어떤 사람이 장수를 한다고 해도 과연 그 분별력이 존속되어 사물을 충분히 분간할 수 있으며, 신과 인간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능력을 보유할 수 있을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
 
 우리는 서둘러야 한다. 그것은 비단 우리가 날로 죽음에 접근해 가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물의 개념에 대한 능력과 이해력이 먼저 쇠퇴되기 때문이다.


2. 만일 사람들이 우주에 생성된 사물에 동정과 깊은 통찰력을 갖는다면, 어느 의미에서나 쾌감을 주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맹수의 벌린 턱에서도 화가나 조각가의 작품에 못지않는 쾌감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또한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서도 일종의 원숙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며, 또 젊은 남녀의 매력 있는 사랑스러움도 맑은 안목으로 바라볼 수가 있을 것이다.


3. 히포크라테스(BC 460 - 377 경)는 많은 병을 치료하고 나서, 자기가 병에 걸려 죽었다. 칼데이의 박사들은 많은 사람의 죽음을 예언하였으나, 이윽고 운명은 그들도 앗아갔다. 알렉산더, 폼페우스, 카이우스, 시저 등은 그렇게 번번이 대도시를 완전히 파괴하고, 전장에서는 몇 십만의 기병대나 보병대를 닥치는 대로 살육하였지만, 이윽고 그들 자신도 죽음을 당하였다.


4. ... 우리는 만일 어떤 사람이 갑자기 "지금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하고 물으면, 공명정대하게 곧 "이러저러한 일"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일만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
[임성삼의 주(註); 동양에서는 "혼자 있을 때의 마음을 조심하라."는 말이 여러 책에 있다. 또한 율곡 선생님의 "격몽요결"에 이와 거의 완전히 같은 말이 있다.]


5. 무슨 일이든지 마지못해 하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깊이 생각한 연후에 행하되, 마음에 혹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인위적인 허식으로 자기 사상을 장식하여서도 안 되며, 말이 많은 사람이 되거나 많은 일에 매여 너무 분주하여서도 안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신성(神聖)으로 하여금 자기의 수호신이 되게 하고, 남아답게 생각이 깊으며, 정치에 관여하고, 로마인으로서, 지배자로서, 자기의 직분을 지켜나갈 때에는 언제나 생명을 내던질 각오를 한 사람처럼 진퇴(進退)를 결정하고, 아무런 서약도, 어떤 사람의 증언도 필요없이 묵묵히 행동해야 한다.


[임성삼의 주(註); 로마인들은 이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였을 것이다.]


 또한 쾌활해야 한다. 외부에 원조를 구하지 말며 타인이 주는 평화를 바라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남아는 남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힘으로 서야 한다.
[임성삼의 주(註); 그 당시 세계의 주인으로 자부하고 있던 로마인의 자세가 잘 나타나 있다.]


6. 인간 생활에 있어서 그대가 만일 정의, 진리, 절제, 견인(堅忍)보다 더 선한 것을 발견한다면 ... 그대는 거기에 전심전력을 위탁하라. 그리고 그대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향락하도록 하라.


 나는 말하고자 한다. 그대는 다만 단순히, 그리고 자유롭게 최선의 것을 선택하라. 그리고 그것을 고수하라.


8. 세련되고 정화된 인간의 정신 속에는 썩은 것, 부정한 것, 꿰매어 붙인 상처 같은 것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또 언제 죽음의 손에 잡히더라도, 마치 연기를 끝마치기 전에 무대를 떠나는 배우에 대한 비난처럼 미완성의 생활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는 조금도 비굴한 데가 없고, 또한 허식도 없으며, 큰 집착도 느끼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사물을 등지는 일도 없고, 탓할 만한 일도 없으며, 피난처를 찾는 일도 없다.
[임성삼의 주(註); 이 황제가 이런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황제를 힘없고 병든 노인으로 묘사한 영화는 진실이 아니다. 그는 죽을 때 59 세밖에 안되었었다.]


10. ... 그리고 가장 길다는 사후의 명성도 역시 짧은 것으로 대대손손(代代孫孫) 그것을 전하는 것은 다만 가엾은 인간들이며, 그들 자신이 매우 신속히 죽어가고, 또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자들이므로 먼 옛날에 죽은 사람들에 대하여 알 리가 없다.
[임성삼의 주(註); 죽은 후의 명성에 대하여까지 정확히 분석하였다.


나의 집 사람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 중 이 줄 친 부분만은 틀렸다고 하였다. 지금 우리들은 그의 글을 읽으며 그의 마음을 알고 그와 함께 느끼고 있으니까.]


16. ... 자기의 가슴에 심어 놓은 신성(神聖)을 모독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인상에 의해 그것을 훼방하지 않으며,
신에 순종하고,
진리에 어긋나는 일은 일체 입밖에 내지 않으며,
[임성삼의 주(註); 논어에 나오는 비례물언(非禮勿言; 예절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는다)]
또한 정의에 위배되는 것은 일체 행하지 않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역시 논어의 비례물동(非禮勿動)]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이 단순하고 겸손하며, 분수에 어울리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어느 누구에 대하여도 불평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자기가 한 평생 도달하려는 목적에 이르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4>
2. 어떤 행위를 하든지 거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또한 기술상의 완전한 원리에 따라야 한다.
......


 명성에 대한 욕망이 아마도 그대를 괴롭힐 것이다. 보라, 모든 사물이 얼마나 신속히 망각되는가를.


10. 모든 사물은 정당한 이유에서 생긴다는 것을 명심하라. 만일 깊이 관찰하면, 그대는 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무엇을 하든지 선인(善人)이 될 것을, 다시 말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선인이 될 것을 목표로 하고 행동해야 한다.


[임성삼의 주(註); '엄밀한 의미에서 선인'이 될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착한 사람 비슷하게도 될 수 없다.


율곡 선생님의 "격몽요결"의 첫 귀절은 다음과 같다.


初學 先須立志 必以聖人自期              須(모름지기 수)    期(기약할 기)
처음 학문을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뜻을 정하기를
반드시 완전한 사람(성인 聖人)이 되기로 스스로를 기약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성인을 선인과 거의 같이 해석한다.]


12. 우리는 언제나 다음 두 가지 규칙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하나는 지배와 입법을 맡은 자는 인류의 이득을 위해서만 명령을 내릴 것.
 또 하나는 만일 근처의 어느 사람이 그대의 미망을 제거해 주고 그대의 그릇된 견해를 씻어 준다면 아낌없이 의견을 변경할 것. 그러나 이 의견의 변경은 정의나 혹은 공공의 이익과 같은 어떤 확실한 이유에서 행해야 하며, 그것이 기분 좋게 보인다든가, 또는 명예를 가져온다는 이유에서 변경해서는 안된다.


17. 스스로 만 년 동안이나 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죽음은 그대 위에 걸려 있다. 그대가 사는 기간은 그대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대는 선량하라.
[임성삼의 주(註); 이것이 이 책의 기본 법칙이다. 이 논리에 대해 잘 생각해보자.]


18. 나의 이웃 사람이 말하고, 또 행하며, 혹은 생각하는 것을 알려고 애쓰지 말고, 오직 자기 자신이 하는 일을 올바르고 순결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은 괴로움을 모면하게 될 것이다.
 아가톤(그리스의 비극작가. BC 447 - 400)이 말한 바와 같이, 남의 타락된 도덕에 눈을 돌리는 일 없이, 다만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 어느 의미에서나 아름다운 것은 모두 그 자체에 있어서 아름답다. ...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진리, 인애(仁愛), 겸손이 칭찬을 받아서 아름다운 것이 되었으며, 비난을 받으면 더러운 것이 된다는 말인가? 비취, 황금, 상아, 자수정 등이 칭찬을 받지 않으면 밉게 보이는가?


[임성삼의 주(註); 칭찬을 바라는 데에 대한 경고]


24.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은 언제나 "이것은 불필요한 일이 아닌가?"하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인간은 불필요한 행위 뿐 아니라 불필요한 생각까지도 버려야 한다. 이렇게 하면 부질없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된다.


28. 간악한 성격, 비겁한 성격, 완고한 성격,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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