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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건 조회 475회 작성일 2004-10-09 00:00
한글날...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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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_8689.jpg

연꽃잎인냥 겹겹의 능선이 이른새벽 기지개 켠다/040927 북한산에서



추락하는 한글에 날개를 달자





10월 9일은 한글날!
예전에는 공휴일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노는 날이 많다고 평일로 둔갑 해버렸다.

지구촌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존재하지만
'내나라 글'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별로 많지가 않다.

우리나라는 한문을 원형대로 쓰다가
이두문자가 출현하고 백성을 어여삐 여긴 세종대왕께서
눈병을 앓으면서까지 창제했다고 하는 '훈민정음(訓民正音)' 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우리가 편리하게 쓰는 글이 되었다.

무엇이던지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과학적인 글,
어떤 욕설이라도 소리나는대로 쓸 수 있는 만능적인 글,
이 한글이 어떠한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향기를 뿜어내기도 하고, 독기와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요즘은 순한글로 이름을 짓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한별. 샛별, 이슬, 달님, 초롱, 한아름,....

한글이름 중 가장 긴 이름은 무엇이며 누구일까?

충남 태안에 사는 김텃골돌샘터씨의 딸
‘김온누리빛모아사름한가하’의 이름이 가장 긴 것으로 알려졌다.
참 예쁘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부를때는 그냥 "온누리야" 하면 될테고....
한 번 부를때마다 온누리가 들썩이니 이 어찌 좋은 이름이 아닌가.

한류 열풍을 타고
일본. 중국 여성들이 한글 배우기에 송글송글 땀을 흘린다고 한다.
한국어과를 신설하는 대학도 날로 늘어나고....
젠작 우리나라에서는 한글이 퇴색화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나라 처럼 국어공부가 어려운 나라도 드물 것이다.
학생들은 현대어와 고어를 배우느라고 진땀을 흘리고...
한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도 많고 많아서
한국인도 배우기 힘든데 외국인이야...

한 외국인이 길거리에 누웠다. 무슨말을 하는가 보려고
죽은 시늉을 하고....

"죽었다. 돌아갔다. 뒈졌다. 사망했다. 밥숟갈 놨다.
천당갔다. 황천길 떠났다. 눈 감았다. 염라대왕 앞에 갔다..."

슬며시 일어나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우스개 일화이다.

요즘 컴퓨터의 급속한 보급,
인터넷의 일상생활화는 한글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국적불명의 언어와 문자가 난무하고
비속어와 저질스런 문자가 판을 치고 있다.

요즈음 젊은이들 몇이 모여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꼭 다른나라에 와서 외국어를 듣는 기분일 때가 종종있다.

우리나라 문자와 언어는 정말 아름답다.
어른께 올리는 공손한 말, 동아리끼리 하는 재미있는 말,
손아래 사람을 대하는 언어와 문자가 잘 구분되어 있다.

우리의 문자와 언어를 잘 가꾸는 일이
무엇보다는 시급한 시점에 우리가 서 있다.

익명성, 얼굴없는 그림자로 지칭되는 인터넷 상에서
이상 야릇한 신조어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심지어는 일본어같이 받침없는 말이 서슴없이 횡행한다.

10월 9일 한글날을 맞이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고관대작들이 모여서
애국가 부르면서 기념식을 갖는다고
한글의 소중함이 살아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국적있는 교육을 가르치고
부모형제부터 고운말 고운 문자 쓰기를 생활화하여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일이 급선무이다.

외국에 나가봐야 비로소 애국심이 생긴다고 한다.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자긍심,
내가 세계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자신감,
우리 글과 말이 아름답고 멋스럽다는 마음을 갖자.

지덕노체(智德勞體)가 겸비된 한국인이
어디를 가도 가장 세계적인 사람임을 명심하자.

글 / 월천



[세종대왕의 약사]
  세종대왕 조선 제4대 왕(재위 1418~50),휘, 도, 자 원정, 시호, 장헌 태종의 셋째 아들로 원경왕후 민씨 소생.비 는 청천부원군 심온의 딸 소헌왕후,1408년(태종 8)충녕군에 봉군, 13년(태종 13)에 대군이 되고 18년에 왕세자에 책봉, 동년 8월에 22세 나이로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sejong.gif
  즉위 후 정치, 경제 ,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아 수준 높은 민족문화의 창달과 조선 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유교 정치의 기틀을 확립하고, 공업을 시행하는 등 각종 제도를 정비해 조선 왕조의 기반을 굳건히 하였다. 또한 한글 창제를 비롯하여 조선 시대 문화의 융성에 이바지하고 과학 기술을 크게 발전시키는 한편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국토를 넓혔다. 1420년에 설치된 집현전은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육성하는 동시에 왕과 세자에 대한 학문적인 자문과 교육과 각종 학술 연구, 서적 편찬을 담당하는 기구였다.
  그는 정치적으로 중앙집권 체제를 운영하기 위하여 20년에 집현전을 설치하고 황희, 맹사성, 허조, 등의 청백리를 등용하여 왕권과 신권의 조화에 노력하여 의정부의 독주를 견제했고, 왕립 학술기관으로 확장하여 변계량, 신숙주, 정인지, 성삼문, 최항 등 장년층의 학자를 등용하여 정치자문, 왕실 교육, 서적 편찬 등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다.
  그리고 궁내에 정음청을 설치, 성삼문, 신숙주, 최항 등으로 하여금 43년(세종 25)한글을 창제하게 하고 46년 이를 반포하였다. "훈민정음" 28자를 제정하여 반포하는 한편 정음청을 두어 유교 전적. 음운서 등의 국문 출간을 담당하게 했으며, 학문의 장려에 힘쓰면서 "효행록", "삼강행실", "오례의", "자치통감훈의", "치평요람", "용비어천가", "고려사", "역대 병요", "동국정운",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의방유취" 등 각종 서적을 편찬하게 했다. 또한 이천에게 명하여 경인자, 갑인자, 병진자 등을 제작하게 하였는데, 그 중에서 갑인자는 정교하기로 유명한 활자이다.

  초기에는 억불책을 써서 5교 양종을 선종과 교종의 2종으로 통합하여 각 18개 사찰만 인정하고 경행을 금지했으나, 말년에는 궁중에 내불당을 짓고 승과제도, 경해을 인정하는 등 왕실 불교로 장려하여 불교 발달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여 25년 관습도감을 설치하고 박연으로 하여금 아악을 정리하게 하여 음악을 장려하였다. 박연에게 명하여 아악기를 개조하여 고래의 아악, 당악, 향악의 모든 악기, 악곡, 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게 했으며, "정대업", "보태평" 등 저명한 악곡을 제작하게 하였다.
또한 실록 보관을 위하여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에 4대 사고를 설치했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만 남고 모두 불타버렸다.

  과학기술에 대한 업적은 42년 이천 ,장영실로 하여금 우량을 분포 측정기인 측우기를 제작하게 했는데, 이는 1639년 이탈리아의 B.가스텔리가 발명한 측우기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그리고 궁중에 과학관인 흠경각을 설치하고 과학기구를 비치하도록 했고, 훈천의, 해시계, 물시계 등 각종 과학기구를 발명하였다.
김담, 이순지 등을 시켜 중국 원 나라의 수시력, 명나라의 대통력을 참작하고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빌어 역서인 칠정산내외편을 편찬했고, 천문, 역법, 의상등에 관한 지식을 종합한 <제가역상집>을 이순지가 펴냈다.

  경제, 사회 정책면은 36년 공법상정소를 설치하고 각 도의 토지를 비척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어 세율을 달리하는 안을 실시했으나 결함이 많았으므로 43년에 공법상정소의 안을 시정하기 위하여 전제상정소를 설치하고 풍흉에 따라 연분 9등법과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6등법에 의한 수등이척법으로 조세의 공평화를 도모했으며, 전국의 토지를 20년 마다 측량하여 양안을 작성하도록 했다. 그리고 의창, 의료제도, 금부삼복법을 제정했고, 노비에 D대한 지위등을 개선, 사형을 금하도록 했다.
  대외정책면에서는 국가의 주권 확립과 영토확장에 진력한 치적을 들 수 있다. 명나라와의 관계를 보면, 처녀진헌을 폐지하는 한편, 당나라에 보내던 금, 은의 조공물을 폐지하고 마, 포로 대신하도록 했다. 그리고 여진과의 관계는 무력을 강경책을 쓰거나 회유하는 화존 양변책을 썼는데, 두만강 유역의 여진은 김종서로 하여금 구축하도록 하고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였다. 압록강 유역의 여진은 최윤덕, 이천등으로 하여금 구축하게 하고, 4군을 설치하였다. 이 때의 국경선이 압록강으로부터 두만강까지 확보되어 이 곳에 사민정책을 실시하는 등 국토의 균형된 발정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일보고는 19년(세종1) 이종무로 하여금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섬을 정벌하게 했으며, 이후 쓰시마 도주소 사다모리가 사죄하고 통상을 간청해오자, 26년 삼포를 개항하였다. 이후 왜인의 출입이 증가하자 43년 왜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신숙주의 교섭으로 변효문과 소 사다모리 사이에 계해조약을 체결하게 하여 1년 동안에 입항할수 있는 세견선을 50척으로 제한했고, 세사미를 200섬으로 제한하는 한편, 반드시 수도서인에 한하여 왕래하도록 무역과 출입을 통제하였다.
  능은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는 영름인데 처음에는 광주에 있었으나, 69년(예종 1)에 이곳으로 옮겼다.
  세종조는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유교 정치,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대이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다. 집현전을 통하여 많은 인재를 길렀고, 유교 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나아가 겨레 문화를 높이는 데에 기본이 된 훈민정음의 창제, 방대한 편찬 사업, 농업과 과학 기술의 발전, 의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업적으로 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sejong_title_02.gif [세종대왕]

-> 세종의 성명은 `이도`이며 자는 원정(元正)이고, 시호는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1397년(1세) 4월 10일(양력 5월7일) 태종의 셋째 아들로 한양에서 탄생하다.
1408년(12세) 2월 충녕군에 책봉되고 결혼하다.
1412년(16세) 5월 충녕대군에 진봉되다.
1418년(22세) 6월 왕세자로 책봉된다.
1418년(22세) 8월 10일 왕위에 오르다.
1419년(23세, 세종 원년) 6월 대마도를 정벌하다.
1420년(24세, 세종 2년) 3월 집현전의 기구를 확장, 궁중에 설치하다.
1421년(25세, 세종 3년) 3월 주자를 만들어 인쇄술을 개량하다.
1423년(27세, 세종 5년) 9월 조선통보 화폐제를 창설하다.
1430년(34세, 세종 12년) 12월 [농사직설]을 전국에 펴내다.
1430년(34세, 세종 12년) 12월 아악보를 이룩하다.
1431년(35세, 세종 13년) 3월 [태종실록] 편찬을 마치다.
1431년(35세, 세종 13년) 4월 광화문을 세우다.
1432년(36세, 세종 14년) 1월 [팔도 지리지]를 편찬하다.
1432년(36세, 세종 14년) 6월 [삼강 행실도]를 편찬하다.
1433년(37세, 세종 15년) 6월 사군을 설치하여 국경이 압록강에 이르게 하다.
1433년(37세, 세종 15년) 8월 혼천의(천체 측정기)를 제작하다.
1434년(38세, 세종 16년) 7월 동활자 갑인자와 물시계(새로운 자격루)를 사용하다.
1434년(38세, 세종 16년) 10월 앙부일구(해시계)를 제작하다.
1435년(39세, 세종 17년) 7월 경복궁 안에 주자소를 설치하다.
1437년(41세, 세종 19년) 4월 일성정시의(주야측우기)를 만들다.
1437년(41세, 세종 19년) 9월 야인(여진)을 정벌하고 6진을 설치하여 국경이 동북으로 두만강에 이르게 하다.
1441년(45세, 세종 23년) 8월 측우기를 제작하여 이듬해 5월에 측우하는 제도를 정하여 실시하다.
1442년(46세, 세종 24년) 8월 [고려사]를 편찬하다.
1443년(47세, 세종 25년) 11월 전제를 정하는 관서(전제 상정소)를 설치하다.
1443년(47세, 세종 25년) 12월 [훈민정음](한글)을 창제하고 언문청을 설치하다.
1445년(49세, 세종 27년) 4월 [용비어천가]를 짓다.
1446년(50세, 세종 28년) 9월 [훈민정음](한글)을 반포하다.
1447년(51세, 세종 29년) 7월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을 편찬하다.
1447년(51세, 세종 29년) 8월 숭례문(남대문)을 개축하다.
1447년(51세, 세종 29년) 9월 [동국정운]을 편찬하다.
1448년(52세, 세종 30년) 7월 궁 안에 불당을 건립하다.
1449년(53세, 세종 31년) 12월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을 간행하다.
1450년(54세, 세종 32년) 2월 17일(양력 3월 16일) 승하하다.

 
 



○발신:시민단체 활빈단(대표.홍정식) www.hwalbindan.co.kr
○제목:▶한글날 맞아 우리말 더럽히는 정치지도자들에게 어글리마우스상 주고 촉새혓바닥등 경종품 보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지도자들의 발언에는 최소한의 품격이 있어야 하고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 하는데도 아니면 말고 식 발언들이 너무 많은게 현실이다. 시민단체 활빈단(대표.홍정식)은 우리 말글의 오용과 파괴 현상이 심각한 수준인 세태에 우리의 정부여당의 지도부가 돌아가면서 실언을 해 국민들 빈축을 사고 있는 가운데 558돌 한글날을 맞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세종대왕릉에서 우리말글 바로쓰기 결의후 입술 잘못놀리는 지도층인사들에게 경종용품을 발송하기로 했다.

● 활빈단은 방미중 뉴욕특파원 만찬서 "노인들은 곧 돌아가실 분…무슨 힘 있나" 등 '노인비하 발언' 으로 파문을 일으킨 천정배의원과 지난 총선 직전 "노인들은 투표장에 가지말고 집에서 쉬시라"고 말해 노인들을 분노케 한데다 최근 국가보안과 국보법은 무관하다는 발언을 한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어글리마우스 상을 주기로 하고 경종용품으로 입술 근질근질할땐 꼭 붙여놓고 있으라며 강력접착제와 함께 야산에서 곤충과 잡초의 씨를 먹고사는 촉새혓바닥을 구해 보내기로 했다.

●또한 잦은 실언으로 대통령권위를 스스로 추락시키는 노무현대통령에겐 CODE등 서민들에게 위화감 조성하는 말표현 자제와 한마디 한마디마다 심사숙고한 후 발언하고 왠만한 일 아니면 말보다는 차라리 글로 표현하라는 뜻으로 꿀 한통과 붓을 보내기로 하고 국경일에서 기념일로 격하된‘한글날’을 다시 국경일로 격상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대외 경쟁력 강화란 미명아래 LG, SK, CJ등 외래어로 회사명칭을 쓰는 대기업들에게도 민족주체성을 확립토록 다시 한글이름으로 개칭할 것도 제안했다.

●앞으로도 활빈단은 간첩도 민주화투사라고 주장하고 식언을 밥먹듯하는 여야 정치인과 정책을 오락가락 뒤엎고 갈팡질팡하는 장관등 고위관료들에게도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못믿겠다는 뜻으로 메주덩어리와 오리궁댕이도 보낼 요량이다.

 

댓글목록

(中) 작성일
다른 모든 국경일을 없애도 한글날은 국경일로 지정해야 할 것입니다.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정체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가장 한국적인 지상 최대의 문화 걸작품 입니다.한글날 국경일 지정에 모두가 동참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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