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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전승훈]누가 대중을 천박하다고 하는가
기사입력 2013-01-22 03:00:00 기사수정 2013-01-22 03:00:00
전승훈 문화부 차장
숙련된 기교보다는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현대미술을 풍자한 영화장면이다. 이처럼 컴퓨터 기술과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프로를 위협하는 아마추어가 곳곳에서 생겨난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합성한 ‘프로추어(Proteur)’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최근 가요계에서도 이러한 논쟁이 뜨겁다. MBC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3개월 동안 컴퓨터로 작곡을 배운 개그맨 박명수가 작곡하고 정형돈이 부른 ‘강북멋쟁이’가 소녀시대, 백지영 같은 톱가수들을 제치고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가요계는 이러한 대중의 반응에 불쾌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의 인기프로그램에 의한 음원시장 교란이 한류의 경쟁력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가요계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무엇보다 대중이 선택한 결과를 가요계가 무슨 근거로 ‘값싼 취향’으로 몰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음악성이 높다고 해서 꼭 유행가가 되는 건 아니다. 유튜브에서는 벌써 ‘강북멋쟁이’를 패러디한 UCC 비디오가 넘쳐난다.
박명수는 본의 아니게 ‘강북멋쟁이’를 통해 기존 가요계의 권위를 깨부수는 통쾌한 풍자에 성공했다. 그는 반복되는 리듬, 일렉트릭 사운드, 후크송 후렴구를 컴퓨터로 배합해 만든 ‘인스턴트 음악’쯤은 개그맨도 몇 주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공장처럼 찍어내는 천편일률적인 댄스가요 시장을 이끌어 온 대형 기획사들은 외부 탓을 하기보다 먼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대중의 자연스러운 선택을 비난하는 시각은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 이후 일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는 “이런 천박한 수준의 국민들이 정말 싫다” “이민가고 싶다”는 글이 쏟아졌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인기는 “선거 후 집단 우울증에 빠진 48%에 대한 위로”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대선 결과를 놓고 원인을 분석하거나 스스로를 성찰하기보다 아직도 재검표 주장에 매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복잡계 경제학자인 존 캐스티는 ‘대중의 직관’(반비)이란 책에서 “전문가들의 합리적 예측보다는 대중이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신념이나 느낌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더 정확하게 바라본다”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스마트 대중’의 시대, 프로나 엘리트가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시각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혹시 식민지 시대 일제가 “민도(民度)가 뒤떨어진 조선 민중”이라고 폄훼한 시각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