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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51회 작성일 2004-07-07 00:00
다시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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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중산층이 법률문제에 부딪혔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변호사가 아니라 ‘전화 한 통 넣어줄 수 있는 힘 있는 친지’이다. 그런 힘 있는 친지에는 일반적으로 국회의원, 기자, 고위 공무원, 판검사 등이 포함된다. 만약 그 친지가 “전화 한 통 넣어 달라”는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한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분’의 청렴성에 찬탄하며 존경을 표하게 될까, 아니면 ‘그 놈’이 원래는 안 그랬는데, 높은 자리에 올라가더니 변했다며 섭섭한 마음을 품게 될까. ‘힘 있는 사람’들에게 끝없는 깨끗함을 요구하면서도, 막상 내게 문제가 생기면 ‘힘 있는 친지’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안의 이중성이다. 한 다리만 놓으면 모두가 친구일 수 있는 좁디좁은 나라이기에, 그동안 웬만한 지위에 있었던 사람치고 청탁을 주고받는 관행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이처럼 일상화된 청탁 관행으로부터 벗어나 전혀 새로운 기준이 지배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있다. 지난 며칠간 나라를 시끄럽게 한 서영석씨 부부의 교수 임용 청탁 사건도 결국 이런 옛 관행과 새 기준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영석씨나 오지철 차관은 억울하게 느낄지도 모르나, 기준을 이렇게 높이는 데 가장 기여한 것이 다름 아닌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었고 그런 기대를 바탕으로 집권이 이루어진 이상, ‘이 정도는 관행이었다’고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기자회견까지 자청해가며 문제제기에 나선 정진수 교수의 진의에 대해서도 말이 많지만, 나는 그를 새 기준에 남보다 빨리 적응한 사람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의 용기로 인해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얼룩졌던 대학 교수 임용 과정도 앞으로는 많이 개선되리라 믿고 ‘싶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이번 사건을 보면서 환멸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떤 개혁도 ‘우리 안의 청탁 본능’을 바꿀 수 없으리라 일찌감치 절망했던 나는, 이번 사건 앞에서 오히려 희망의 새싹을 본다. 노 대통령 취임 직후 ‘검사와의 대화’ 때도 많은 사람들이 검찰에 대한 환멸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좀 오버한다’ 싶었던 젊은 검사들의 발언 덕분에 정치인이든 누구든 검찰에 함부로 청탁하다가 망신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검찰은 상당한 수준의 독립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나는 이번 사건도 그때처럼 개혁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리라 믿고 ‘싶다.’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번 사건을 ‘안풍’ 무죄 판결과 동등한 비중으로 다룬 언론의 보도 태도다. 가족들을 제외하면, 청탁받는 사람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청탁자가 바로 기자들이다. 과거에는 그 힘을 이용하고자 한 언론사주 등 주변 사람들의 청탁이 기자들에게 몰리기도 했다. 청탁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론들이 이번 사건을 보도하며 어느 때보다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적용한 것은, 앞으로 자신들의 삶도 이 엄격한 기준에 맞춰 나가겠다는 위대한 선언이리라.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한나라당이 이 사건에 대해 “국정조사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논평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차떼기를 서슴지 않던 정당까지도 이제는 이런 새로운 기준에 자신을 맞추겠노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정립된 높은 윤리적 기준이 공무원뿐 아니라 언론인과 정치인에게까지 예외 없이 지속적으로 적용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반가운 일은 없다. 언론인과 정치인으로부터 청탁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정 교수의 예에 따라 앞다투어 기자회견을 열고 그 사실을 공개해 주기만 한다면, 언론개혁과 정치개혁의 성공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정말이지 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리라 믿고 ‘싶다.’ 파병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서글프게도 이런 ‘억지 희망’ 속에서 오늘 하루를 연명한다. 그래도 환멸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한겨레
김두식 한동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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