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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97회 작성일 2012-11-28 15:54
[중앙시평] 판타지 공약보다 국가사회 미래상을, <font color=blue>장달중</fo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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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판타지 공약보다 국가사회 미래상을
 
[중앙일보] 입력 2012.11.15 00:45 / 수정 2012.11.15 00:45
장달중
서울대·정치외교학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대선은 매우 실망스러워 보인다. 이전의 대선에서 느꼈던 흥분과 논쟁이 적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선전은 후보자들 간 세계관의 대결이기도 하다.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을 리드할 수 있는 자신의 가치와 생각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에게서 들을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판타지 공약’들뿐이다. 이런 온갖 공약들을 어떻게 실현하려는지, 그리고 사회 통합에 어떻게 연결시키려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이런 공약들이 어떤 사회상(像)과 국가상(像)의 큰 그림 속에서 제시되고 있는지도 보이지 않는다.

 걱정이 없을 수 없다. 국민통합의 미래상 같은 큰 그림은 제쳐둔 채 판타지 공약에 매달릴 경우 대선전은 포퓰리즘의 경연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세 후보 캠프 브레인들이 참석한 정책 토론회에 가봤더니 기자들이 아우성이었다. 기삿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세 후보 캠프가 엇비슷한 판타지 공약의 나열에만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은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리드할 후보를 찾고 있다. 하지만 어느 후보도 판타지 공약의 단순 나열을 넘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메시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우리 정치가 직면한 문제는 매우 커 보이는데 대선 후보들은 너무 작아 보인다.

 어느 사회든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가치와 규범, 사회를 이끌어 갈 엘리트, 그리고 이상적인 인간상의 삼위일체를 필요로 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유교가 시대정신을 대변하고 양반계급이 지배 엘리트로 기능했으며 가부장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떠받들어졌다. 하지만 이런 전통사회는 무너졌고 그 뒤를 이은 근대사회도 지금 해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발전 이데올로기의 시대정신과 근대화 엘리트, 그리고 전문성을 이상으로 했던 인간모델이 정보화 사회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현상은 이런 시대적 변화의 표출일 수 있다. 하지만 어느새 그의 ‘낡은 체제 혁신’은 ‘깡통’이더라”는 견해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그만의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박근혜의 ‘국민행복 시대’, 문재인의 ‘정권·시대·정치교체’ 역시 새로운 이데올로기도, 새로운 엘리트의 실체도, 그리고 이상적 인간상의 모습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는 지금 빅뱅이냐 아니냐의 기로에 서있다. 이전과 달리 무당파층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야권 단일화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지만 무당파층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다. 이들이 야권단일화로 기존 정당에 흡수되든, 제3극으로 독자세력화하든 그 움직임이 명확한 정치구도의 ‘싹’을 틔울 수만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대선전이 정책이념의 명확한 대립구도 속에서 치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당파층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일이 생기면 우리 정치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당파층은 이슈마다 생각이 다르다. 예컨대 복지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진보적이지만 대북정책에서는 보수적일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의 방황은 판타지 공약과 맞물려 로마제국의 몰락을 가져왔던 ‘빵과 서커스’의 정치를 대두시킬 위험이 있다.

 빵과 서커스 정치의 역사적 교훈은 준엄하다. 오랜 전쟁 탓에 경제적으로 피폐해진 로마에서 정치가들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무상으로 빵을 공급하는 동시에 이들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기 위해 레저로서 서커스까지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빵과 서커스의 포퓰리즘 정치에 빠진 로마제국의 정신적 퇴폐요 몰락이었다.

 수백 가지가 넘는 선심성 판타지 공약을 보면 깊이 새겨 보아야 할 역사적 교훈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런 선심성 과잉공약은 차라리 안 믿는 게 옳을지 모른다.

 우리는 세 후보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알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반새누리당’이냐, 아니면 ‘반야권단일화’냐일 게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어디로, 그리고 어떻게 이끌어 가려 하는지를 정말 모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판에 박은 듯한 공약의 일방적 낭독이 아니라 왜 대통령을 하려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려는지를 듣고 싶어 한다. 만약 그들이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대선전은 곧 판타지 공약의 포퓰리즘 경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언론 인터뷰도 TV토론도 구경하기 어려운 게 지금의 대선 정국이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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