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교정에서 - 65회 김의형
본문
아래의 글은 65회 김의형후배가 육동회사이트에 올린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졸업 30주년을 자축하는 모임을 가진 65회 후배들에게 미쳐 축하도 해 주질 못했군요. 죄송합니다. 김의형후배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모교의 생각이 절로 납니다. 오늘 중앙교우의 날이 열리는 날 여러 동문들께서도 함께 읽어 보시도록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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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은 오후 내내 그리고 저녁 시간을 중앙학교 교정에서 보냈다. 졸업 30주년을 자축하는 동창회 모임이었다.
중학교 1학년 초 심하게 앓았던 늑막염으로 인해 중학생 시절 내내 체육시간이면 견학을 하고 버릇처럼 한 쪽 구석에 앉아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며 히죽거리거나 비원을 바라보면서 문자화되지 않을 이야기 거리를 머릿속으로 끄적이곤 했었다. 생각의 소재는 늘 주변 사람들이었다. 비원 뒤뜰이 이끌어내는 상상력은 나를 옛날 그 정원을 사용했던 이들에게로 내어 모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이 머물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다. 내 생각의 소재는 늘 “오늘”이었고 “지금”이었고, 그리고 “사람”이었다.
흘러내리는 도수 높은 검은색 뿔테안경 가운데를 왼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삼십 센티 정도의 박달나무 막대기를 좌우로 흔들다가 숙제를 안 해오거나 문제를 틀리는 아이들 머리통을 ‘퉁’ 하고 한 대 씩 가볍게 치곤하시던 황세열 선생님이 다가오면 고개를 숙이고 수학문제를 풀면서도 어디쯤 오셨는지 알 수 있었다. 깊숙이 밴 담배 냄새 때문이었다. 그 담배 내음은 꽁초를 막 비벼 끈 사람으로부터 풍기는 역겨운 냄새가 아니라 수많은 시간을 담배 연기 속에서 보낸 사람의 옷과 몸에서 배어나는, 속까지 노랗게 군불에서 구워진 군밤의 구수함이 느껴지는 그런 내음이었다.
언젠가 의사로부터 끊으라는 말을 들으신 후 하루에 두 갑씩 피시던 담배를 구겨 휴지통에 던지셨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지만 나는 담배를 피워 무는 아버지를 본 기억이 없다.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노랫가락이라도 흥얼대며 흥겹게 귀가하시는 모습도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늘 정해진 시간대에 정확하게 집으로 돌아오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난치며 싸우던 방안에서도 초인종 소리만 들으면 우리는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누르시는 초인종 소리는 언제나 짧은 한 번 이었다. 현관문을 들어서며 자식들 신발이 눈에 띄지 않으면 누구는 어디를 왜 갔는지 언제쯤 들어올 것인지 어머니께 확인하곤 하셨다.
어른 키 높이 정도 중앙학교 운동장보다 낮은 위치의 비원 뒤뜰로 뛰어내려 몰래 담배를 피우고 올라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6년을 보낸 그 교정에서 나는 한번도 비원 뒤뜰에 내려가 본 적이 없었다. 대신 비원을 면한 축대 아래로 양다리를 내리고 숲을 향해 앉아 아이들이 뛰놀며 떠드는 소리를 배경으로 생각에 잠기곤 했었다. 이따금 구수한 군밤 냄새 같은 담배 내음 물씬 풍기는 황세열 선생님도 집에 가면 두부모 쓸 듯 정확한 아버지일까 하는 호기심도 떠올리곤 하면서.
비원을 향해 다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 있곤 하던 도서관 축대밑 자리에는 비원을 등지고 운동장을 향해 앉도록 높은 계단식 스탠드 축대가 세워져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들어서는 강당 내부는 옛날보다 좁게 느껴졌다. 가운데 위쪽에 걸려있는 붓글씨 현판을 제외하곤 모든게 그저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색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목재 합판이 천장 높이까지 회벽을 둘러싸고 있었고, 양 면 키 높이에 역대 교장선생님들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낯익은 몇 분은 성함도 기억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동창들 역시 예전에 망년회 때라도 몇 차례 보았던 얼굴들은 반갑고 익숙해 있었지만 오랫동안 접하지 못했던 얼굴들은 이름은 커녕, 얼굴도 낯설었다. 영양공급 과다인지 운동량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다들 늘어난 허리둘레와 부풀어 오른 얼굴들, 그리고 벗어지거나 희어진 머리칼에서 단풍 들어가는 나이테가 느껴졌다.
개회사와 소개사가 끝나고 이어 연주되던 70년대 포크송을 듣고 있으려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 이렇게 우리도 나이 오십이라는 것을 공공연히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지. 오십... ... 그래 우리들 잔치는 이제 진짜 끝이구나.”
한 분 한 분 소개될 때마다 손을 흔들며 일어서는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왜소한 체격에 얼굴 여기저기 검버섯 핀 노인네로 변해있는 모습이었다. 유충렬 선생님을 제외하곤 충만한 에너지에 듬직한 체격을 유지했던 선생님들조차 마찬가지였다. 하긴 저분들이 우리를 가르치던 시절에는 지금 우리 나이보다 더 젊고 싱싱할 때였겠지. 팽팽하게 물 오른 신체를 지녔던 양반들이 이제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조차 없을 정도의 작은 체구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수축되고 시들어버린 모습을 확인하면서 괜시리 서글픈 느낌이 가슴을 채웠다.
이 교정에서 시간을 보내었던 십대 시절에는 아무리 미래를 꿈꾸려 해도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고 “오늘”과 “지금” 만이 머릿속을 덮었는데, 삼십 년 지나 다시 찾은 강당에서 담뱃불 붙이고 빈 잔 가득 맥주 거품을 채우는 지금은 왜 자꾸 쇠약해진 내 육신의 훗날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일까.
한동안 담배도 끊었었고, 술 마시는 것도 중단했었다. 그러나 몇 년 뒤 그 두 가지의 나쁜 버릇을 다시 선택했다. 하지만 내 몸에서 황세열 선생님의 구수한 군밤냄새 같은 체취는 영원히 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 선생님처럼 넉넉한 인품이 못되는 내 체취는 구수한 군밤 냄새가 아니라 쓰디쓴 신경질적 담배 냄새쯤으로 기억되겠지. 그리고 “여기 미술반 출신들 좀 다 모이라고 해주게!” 하시는 이근신 선생님의 애정 어린 취기조차 내 모습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겠지. 그저 취하면 벽에 기대어 소리 없이 길고 긴 잠에 빠지는 늙은이 정도쯤 되어 있겠지.
그렇게 늙어 가겠지. 시간은 주름이란 나이테로 얼굴 위에 소리 없이 내리고 머리에도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세월은 서서히 하나 씩 사람을 낚겠지. 이렇게 모인 친구들 다들 언젠가 한번쯤 바람결에 흔들리는 영혼으로 비원 뒤뜰에 슬며시 내려앉아 보겠지.
글: 65회 김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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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은 오후 내내 그리고 저녁 시간을 중앙학교 교정에서 보냈다. 졸업 30주년을 자축하는 동창회 모임이었다.
중학교 1학년 초 심하게 앓았던 늑막염으로 인해 중학생 시절 내내 체육시간이면 견학을 하고 버릇처럼 한 쪽 구석에 앉아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며 히죽거리거나 비원을 바라보면서 문자화되지 않을 이야기 거리를 머릿속으로 끄적이곤 했었다. 생각의 소재는 늘 주변 사람들이었다. 비원 뒤뜰이 이끌어내는 상상력은 나를 옛날 그 정원을 사용했던 이들에게로 내어 모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이 머물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다. 내 생각의 소재는 늘 “오늘”이었고 “지금”이었고, 그리고 “사람”이었다.
흘러내리는 도수 높은 검은색 뿔테안경 가운데를 왼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삼십 센티 정도의 박달나무 막대기를 좌우로 흔들다가 숙제를 안 해오거나 문제를 틀리는 아이들 머리통을 ‘퉁’ 하고 한 대 씩 가볍게 치곤하시던 황세열 선생님이 다가오면 고개를 숙이고 수학문제를 풀면서도 어디쯤 오셨는지 알 수 있었다. 깊숙이 밴 담배 냄새 때문이었다. 그 담배 내음은 꽁초를 막 비벼 끈 사람으로부터 풍기는 역겨운 냄새가 아니라 수많은 시간을 담배 연기 속에서 보낸 사람의 옷과 몸에서 배어나는, 속까지 노랗게 군불에서 구워진 군밤의 구수함이 느껴지는 그런 내음이었다.
언젠가 의사로부터 끊으라는 말을 들으신 후 하루에 두 갑씩 피시던 담배를 구겨 휴지통에 던지셨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지만 나는 담배를 피워 무는 아버지를 본 기억이 없다.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노랫가락이라도 흥얼대며 흥겹게 귀가하시는 모습도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늘 정해진 시간대에 정확하게 집으로 돌아오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난치며 싸우던 방안에서도 초인종 소리만 들으면 우리는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누르시는 초인종 소리는 언제나 짧은 한 번 이었다. 현관문을 들어서며 자식들 신발이 눈에 띄지 않으면 누구는 어디를 왜 갔는지 언제쯤 들어올 것인지 어머니께 확인하곤 하셨다.
어른 키 높이 정도 중앙학교 운동장보다 낮은 위치의 비원 뒤뜰로 뛰어내려 몰래 담배를 피우고 올라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6년을 보낸 그 교정에서 나는 한번도 비원 뒤뜰에 내려가 본 적이 없었다. 대신 비원을 면한 축대 아래로 양다리를 내리고 숲을 향해 앉아 아이들이 뛰놀며 떠드는 소리를 배경으로 생각에 잠기곤 했었다. 이따금 구수한 군밤 냄새 같은 담배 내음 물씬 풍기는 황세열 선생님도 집에 가면 두부모 쓸 듯 정확한 아버지일까 하는 호기심도 떠올리곤 하면서.
비원을 향해 다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 있곤 하던 도서관 축대밑 자리에는 비원을 등지고 운동장을 향해 앉도록 높은 계단식 스탠드 축대가 세워져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들어서는 강당 내부는 옛날보다 좁게 느껴졌다. 가운데 위쪽에 걸려있는 붓글씨 현판을 제외하곤 모든게 그저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색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목재 합판이 천장 높이까지 회벽을 둘러싸고 있었고, 양 면 키 높이에 역대 교장선생님들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낯익은 몇 분은 성함도 기억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동창들 역시 예전에 망년회 때라도 몇 차례 보았던 얼굴들은 반갑고 익숙해 있었지만 오랫동안 접하지 못했던 얼굴들은 이름은 커녕, 얼굴도 낯설었다. 영양공급 과다인지 운동량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다들 늘어난 허리둘레와 부풀어 오른 얼굴들, 그리고 벗어지거나 희어진 머리칼에서 단풍 들어가는 나이테가 느껴졌다.
개회사와 소개사가 끝나고 이어 연주되던 70년대 포크송을 듣고 있으려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 이렇게 우리도 나이 오십이라는 것을 공공연히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지. 오십... ... 그래 우리들 잔치는 이제 진짜 끝이구나.”
한 분 한 분 소개될 때마다 손을 흔들며 일어서는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왜소한 체격에 얼굴 여기저기 검버섯 핀 노인네로 변해있는 모습이었다. 유충렬 선생님을 제외하곤 충만한 에너지에 듬직한 체격을 유지했던 선생님들조차 마찬가지였다. 하긴 저분들이 우리를 가르치던 시절에는 지금 우리 나이보다 더 젊고 싱싱할 때였겠지. 팽팽하게 물 오른 신체를 지녔던 양반들이 이제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조차 없을 정도의 작은 체구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수축되고 시들어버린 모습을 확인하면서 괜시리 서글픈 느낌이 가슴을 채웠다.
이 교정에서 시간을 보내었던 십대 시절에는 아무리 미래를 꿈꾸려 해도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고 “오늘”과 “지금” 만이 머릿속을 덮었는데, 삼십 년 지나 다시 찾은 강당에서 담뱃불 붙이고 빈 잔 가득 맥주 거품을 채우는 지금은 왜 자꾸 쇠약해진 내 육신의 훗날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일까.
한동안 담배도 끊었었고, 술 마시는 것도 중단했었다. 그러나 몇 년 뒤 그 두 가지의 나쁜 버릇을 다시 선택했다. 하지만 내 몸에서 황세열 선생님의 구수한 군밤냄새 같은 체취는 영원히 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 선생님처럼 넉넉한 인품이 못되는 내 체취는 구수한 군밤 냄새가 아니라 쓰디쓴 신경질적 담배 냄새쯤으로 기억되겠지. 그리고 “여기 미술반 출신들 좀 다 모이라고 해주게!” 하시는 이근신 선생님의 애정 어린 취기조차 내 모습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겠지. 그저 취하면 벽에 기대어 소리 없이 길고 긴 잠에 빠지는 늙은이 정도쯤 되어 있겠지.
그렇게 늙어 가겠지. 시간은 주름이란 나이테로 얼굴 위에 소리 없이 내리고 머리에도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세월은 서서히 하나 씩 사람을 낚겠지. 이렇게 모인 친구들 다들 언젠가 한번쯤 바람결에 흔들리는 영혼으로 비원 뒤뜰에 슬며시 내려앉아 보겠지.
글: 65회 김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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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월 10일★(가칭)계우닷컴 입주자대표회의 준비모임소식]</b> 48회 박수환선배님부터 79회 최형순교우까지 15명이 참석하여 7시부터 10시 20분까지 진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요일에 남기겠습니다.(오늘 교우의 날 행사참석때문에...정신이 없네요~죄송~)
오십, 어눌했던 잔치는 끝나고 원숙한 향연의 새로운 시작이겠지요.. 그런데..김의형선배님! 새로운 잔치를 시작하시려면 담배는 화악 끊으셔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