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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건 조회 357회 작성일 2004-05-21 00:00
"절대진리의 함정"(중앙일보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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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절대 진리의 함정



개는 색맹이라 이 세상을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본다. 이 사실을 떠올리면 갑자기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인간과 달리 붉은색 바깥의 적외(赤外)선과 보라색 너머의 자외(紫外)선을 볼 수 있는 외계인이 있다면 그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 하는 점이다. 평생토록 2차원 평면을 기어다니는 개미는 입체공간이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 3차원 공간을 경험하는 인간에게는 개미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처럼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많은 것이 사실은 인간의 제한된 감각과 인식 범위 안에서 포착한 주관적인 것이다. 이 세상은 인식 주체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저만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인간이 나름의 관점에서 구성해낸 것이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진리도 마찬가지다. 진리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잠정적이고 오류 가능성이 있는 일종의 '믿음'에 불과하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뒤엎고 지동설을 주장해 말 그대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이루었지만, 그의 도전적인 주장이 일순간에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천문학자 브라헤는 여전히 천동설을 옹호하기 위해 행성을 관측했다. 그러나 그의 제자 케플러는 동일한 자료를 토대로 지동설을 주장했고 나아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동일한 관측을 통해 브라헤는 지구 주위를 회전하는 천체로서의 태양을 보았고, 케플러는 지구가 그 주위를 회전하는 태양계의 중심으로서의 태양을 본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근대 자연과학의 기반인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개념을 부정했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고전 물리학의 결정론적인 사고를 무너뜨렸다. 이 이론들은 뉴턴식의 고전 물리학이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러고 보면 언제 또 어떤 이론이 등장해 우리가 현재 진리라고 믿고 있는 이론을 반박하게 될지 모른다.

학교에서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도라고 배운다. 이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성립하는 명제이지만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구면기하학에서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도보다 크고 쌍곡기하학에서는 180도보다 작다. 이 중 어느 하나만 옳고 나머지는 '틀린'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셋 다 나름대로 타당한 '다른' 주장이다.

흔히 과학과 수학은 시공을 초월한 절대 진리를 담고 있는 학문이며, 논쟁의 여지가 없이 확실한 지식의 순차적인 축적 과정을 통해 발전해 온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과학과 수학은 옳다고 당연시되던 지식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거쳐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진리를 판정하는 항구적이고 초역사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어떤 이론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은 인문.사회과학뿐 아니라 과학과 수학에도 통용된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은 어느 정도 옳으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오류가 내포된, 그래서 수정과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들이며, 기존 지식을 반박하는 반례가 등장해 그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지식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왔다.

이 세상에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으며 진리와 거짓의 구분은 다분히 상대적이며 상황과 맥락에 의존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겸손하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자신의 생각이 완벽한 참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 자칭 '진리의 대변자'들은 컬러를 보지 못하는 개나 입체를 상상하지 못하는 개미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사고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이를 개선해 나가는 과정으로 인해 보다 높은 수준의 사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정직한 구도자'의 마음이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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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자체가 움직이니, 아는게 "힘"이냐,모르는게 "약"입니까?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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