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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中)
댓글 2건 조회 356회 작성일 2004-05-21 00:00
30년간의 편지...

본문

다음의 한 카페에서 보고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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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오덕이 세상을 떠났다.
      일체의 조문을 받지 말 것.
      그것이 그의 유언이었다.
      그의 마지막 부탁은
      권정생의 시비를 하나 세워달라는 것...
      그는 죽어서까지 권정생을 두고 싶어했다.
      두 사람의 30년간의 편지.
      그 것은 이오덕이
      세상에 남겨 놓은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었다.
      소란 떨지말고 조용히 치르라는 유언을
      남겼기에 빈소는 개방되지 않았고
      그의 가는 길을 먼발치에서 제자들이 지켜보았다.
      이오덕... 그는 이제 여기 없다.
      이오덕이 세상에 남기고 간 책은 82권.
      테이프를 감아 쓴 만년필과 안경.
      그토록 좋아했던 고흐의 복사화 몇 장. 오래된 손목시계...
      그것이 그가 남긴 전부였지만
      그의 진정한 유산은 한국의 아동문학이며
      그 중심에 권정생이 있다.
      한국의 체호프... 권정생.
      이오덕이 떠나던 날 그는 하루종일 두문불출했다.
      언젠가 그는
      <이오덕이 있어 나는 살 수 있다.>라고 고백했다.
      그런 그가 이오덕의 상가로 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홀로 이오덕을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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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로움을 녹여내고
      그 아픔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사람... 권정생.
      그와 세상 사이에 놓인 길은 너무나 좁았고
      그는 세상 마치 밖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 길을 따라 한 벗이 찾아왔다.

      -편지 1(권정생)
      바람처럼 오셨다가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일평생 처음으로 선생님 앞에서
      마음놓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출생지가 남의 나라인
      저는 여태껏 고향조차 없는 외톨박이로 살아왔습니다.
      9살에 찾아온 고향이 왜 그렇게 정이 들지 않는지요.
      늘 소외당한 이방인이었습니다.
      선생님을 알게 되어 이젠 외롭지 않습니다.

      찾아간 이는 이오덕이었다.
      이오덕이 생면부지 권정생을 찾아간 것은
      한 편의 동화를 읽고난 직후였.
      조그만 기독교 잡지에 실렸던 강아지 똥이라는 동화 한 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듯 보이던 강아지 똥 한 줌이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거름이 되어 민들레 꽃으로 피어난다는 이야기
      ... 동화는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동화는 이오덕을 감동 시켰다.
      당시 이오덕의 나이는 40중 반.
      주목받는 아동문학가로 자리잡은 중견이었다.
      이오덕은 75년 가을 권정생을 찾아갔다.
      강아지 똥이라는 동화 한 편이
      그의 길을 재촉했다.
      그때 권정생은 회복이 어려운 결핵환자로
      새벽마다 종을 치는 종지기였다.
      그의 나이는 36살. 이오덕과는 12년 차이.
      이오덕은 권정생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때 권정생의 첫인상을
      <다만 동화를 쓰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이오덕은 산골초등학교 교사였고
      두 사람의 삶은 아동문학 속에 만났고
      30년간의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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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지 2(권정생)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病身이어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 끼 보리밥만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답장도 이어졌다.
      12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이오덕은 권정생에게 한 번도 하대한 적이 없었다.
      존경과 우정은 정중하고도 간절했다.

      - 편지 3(이오덕)
      산골에 있어도 할미꽃 한번 못보고
      진달래꽃 한번 찾아가지 못하는 일과입니다.
      산허리에 살구꽃 봉오리가
      발갛게 부풀어 올라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걸 보고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괴로울 때마다 선생님을 생각해봅니다.
      이번 여름방학 때는 꼭 찾아가 뵙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써주시기를 빕니다.
      서울에서 원고료 온 것이 있기에 만원 부칩니다.
      보태어 쓰시기 바랍니다.

      이듬해의 73년 권정생은 이오덕의 신뢰에
      화답이라도 하듯 무명저고리와 엄마라는
      작품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권정생은 여전히 가난한 종지기였다.
      새벽마다 종을 치며 한편 한편 동화를 써나갔다.
      권정생이 글을 쓴다는 건 거의 사투에 가까웠다.
      약도 듣지 않는다는 전신결핵.
      그 몸으로 원고지 한 장을 쓰려면
      열 번도 더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했다.

      -편지 4(권정생)
      10여 일 동안 몸이 불편했습니다.
      병원에 가보면
      그저 영양섭취를 많이 하라고 합니다.
      쓸데없는 줄을 알면서도
      일년에 한두 차례는 병원에 갑니다.
      종합진단, 투약, 심신안정...
      밥맛이 통 없습니다.
      남들에겐 보리밥도 잘 먹는다고 하지만
      어머니가 무쳐 주시던 무생채 생각이 자꾸 납니다.
      고사리 무침도, 산나물도 그리고 어느 해인가
      살찐 닭을 잡아 찹쌀을 넣고 끓인
      닭 곰국을 꼭 한 주발이라도 먹고 싶어요.
      이게 살아있다는 증거인 가봐요.
      선생님, 꼭 좋은 동화 쓰겠습니다.

      권정생은 작품이 써지는 대로 이오덕한테 보냈다.
      그러면 이오덕은 작품이 발표될 지면을 찾아다녔다.
      권정생은 쓰고 이오덕은 발표하고...
      그 때부터 둘의 역할은 그렇게 정해졌다.


      -편지 5(이오덕)
      아동문학 협회에는 고려가 나오지 않으니
      우선 다른 곳을 알아보러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서울의 소년조선이나
      소년 한국 등과 그 밖의 아동잡지를 알아봤지만
      60매 자리는 실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구매일신문에는 웬만하면 실어주겠지...
      하면서 대구에 내려가 문예부를 찾아가
      부탁했더니 거기서도 난색을 보입니다.
      워낙 제가 무능해서
      이모양이 되었으니 그저 용서를 바라고 싶습니다.

      - 편지 6(권정생)
      저 때문에 너무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올해도 보리밥 먹고
      고무신 신으면 너끈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가난한 것이 오히려 편합니다.
      며칠 전에 시내에 나가서 원고지 1000장을 사왔습니다.
      죽기 전에 써야할 것을 어서 써야겠다고
      자꾸 초조해집니다.
      아까서부터 소쩍새가 자꾸 웁니다.

      - 편지 7(이오덕)
      동화 한 편 더 보내주시면 상경하는 길에
      어느 잡지에나 싣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권선생님의 작품집이 출판되도록 해야될 것인데...
      며칠 밤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선생을 돕고 싶은데
      저의 능력이 부족해서 뜻대로 안됩니다..


4.jpg

 



    • 이오덕은 권정생의 작품을 알리는데
      왜 그토록 자신을 바쳤던가?
      그것은 당시 아동문학의 대한 이오덕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오덕은 평생을 잘못된 아동문학과 싸운 사람이었다.
      이오덕은 아이들이 직접 쓴 글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평생의 보물로 여겼던 아이들의 글과 그림들...
      이오덕은 그걸 모아 책으로 엮어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아이들의 꾸밈없는 글이, 일기가 감동을 주고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낸 사람이었다.
      그는 작은 문집이 만들어질 때마다
      일일이 읽어보고 장문의 감상문을 보냈다.
      문집으로 봐줄 사람이 없을 만큼 초라한 글에,
      그림에 하나하나 비평과 칭찬을 담아
      60매 정도 원고의 육필로 적어보낸
      이오덕의 정성에 어떤 교사는 그 자리에 무릎을 꼻는다.
      이오덕은 글이란 전문적이고
      특별한 사람이 아름답고 특별한 이야기를
      화려하고 예쁘게 만들어내는 것이란 생각을
      글이란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삶의 이야기를
      누구나가 쉽고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라는 것으로
      바로잡아 놓았다.
      글 쓰기의 주체가 전문인이 아니라 누구나 이며,
      삶과 동떨어진 내용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
      그리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라고 바로 잡은 것이다.
      이오덕이 평생 강조해 온 것은 삶의 글이었다.
      지식의 글이 아닌 삶의 글...
      40대 어느날 이오덕은 권정생에게서 그 희망을 봤고
      평생 그 희망을 지켰다.


      - 편지 8(이오덕)
      남들이야 무슨 말을 하든
      저는 선생님의 작품을
      귀하고 값진 것으로 아끼고 싶습니다.
      우편환으로 7천환 부쳐드립니다.
      우선 급한 대로 양식과 연탄 같은 거
      확보하십시오.
      요즘 출판 사정이 악화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라도 선생님 책이 나오도록 해보겠습니다.
      이 편지 써두고 인편을 기다리다 안되어
      오늘 전신환으로 돈을 부쳤습니다.
      저는 또다시 전근이 되어 산골로 옮겨왔습니다.
      춘양서 한 시간을 걸어 재를 오르고
      산 등을 타고 걸어야 하는 벽촌입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불편이고 뭐고 너무 사치한 소립니다.
      선생이 계신 안동에서
      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저도 선생님을 결코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합니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책을 내기 위해
      일요일마다 서울을 오갔다.
      그는 마치 외판원이라도 된 것처럼
      권정생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 다녔다.

      - 편지 9(이오덕)
      지금 청량리에서 밤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입니다.
      계몽사에 가니 전에 맡겨 놓았던
      장편동화를 아직 검토도 못했다며 미안해 합니다.
      아동 책이 통 안 나가서
      일체 출판을 못하고 있다고 해서
      원고를 도로 인수했습니다.
      다시 어디 편지로라도 교섭해서
      연재라도 할 수 있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일전에 소년동화에 가서
      선생님의 동화 연재를 부탁했더니 8월쯤 가서 다시 이야기
      해보자고 했습니다.

      기별 오는 대로 편지하겠습니다..


10.jpg

 



    • 마침내 74년 첫 동화집 강아지 똥이 나왔다.
      그 책으로 권정생은 제1회 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출간은 권정생에게 얼마간의 여유를 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가난한 종지기였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었고
      동화책의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권정생도 이오덕도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 편지 10(이오덕)
      백만 명의 독자보다
      단 백 명의 가난한
      그러나 슬기로운 어린이가 읽어준다면
      더 기쁘고 보람있는 일이지요.
      부디 몸조심하고 글 너무 쓰지 말고 쉬세요.
      선생은 좀 더 오래 살아야 합니다.

      권정생의 동화집은 계속 나왔다.
      가난한 무명작가와
      중견 아동문학가가 만나 이루어낸 성과들이었다.
      그렇게 권정생이란 작가는 세상에 나왔다.
      권정생은 오두막에서 쓰기만 할 뿐
      지면을 얻어 출판하게 하는 일은
      이오덕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가면서 한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권정생을 세심하게 챙겨준 이오덕.
      한국아동문학에 대한 스스로 짐지운 책임과
      의무감 그것이었다.
      그는 권정생만이 아동문학의 희망이라고 봤고
      그걸 지키는 일이 자신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했다.
      이오덕이 권정생을 최고의 작가로 여긴 건
      그가 바로 삶의 글을 쓰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권정생은 직접 겪은 이야기를 작품으로
      바꾸어 썼을 뿐 일부러 만들어 쓰지 않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 현대사를 아프게 겪어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슬픈 나막신에서
      권정생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담았다.
      권정생은 도쿄 변두리 민가에서 태어났다.
      식민지 이주민의 삶은 처참했고
      그 때의 기억은 평생 권정생을 따라다녔다.

      - 편지 11(권정생)
      우리집은 아버지가 주어놓은 쓰레기가
      뒤란의 처마밑에 꽉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퀴퀴한 곰팡내는 아직도 내 코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동경 거리를 쓰는 청소부 아버지.
      열두 살 짜리 누나도 공장에 나갔다고 했습니다.
      집안은 언제나 비어있었습니다.
      몸서리 쳐지도록 무섭고 지루하고
      쓸쓸했던 나날이었습니다.
      전쟁에 시달리던 그 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땀이 흐릅니다.

      권정생은 해방 이듬해 귀국한다.
      9살이었고 집안은 여전히 가난했다.
      결핵의 증세가 시작된 건 19살.
      가난이 병을 키웠고
      제때 치료하지 못한 결핵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천형이 되었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그러한 삶이
      불행했던 우리의 현대사 그 자체라고 봤다.

      - 편지 12(이오덕)
      혹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쓰는 수기 같은 걸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이 말은 선생님이 동화작가로 적당치 않다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선생님이 살아온 역사는
      세상 사람에게 알리는 보람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보고문학이나 자서전이란 것이
      훌륭한 문학작품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화를 쓰시는 것이 선생의 본 길이고
      다만 그것에 전념하기 위해
      남은 생명을 바치시는 선생님인데
      행여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았는지 죄송합니다..


댓글목록

(中) 작성일
정말 가슴속에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습니다...좋은글 잘 읽었습니다..고맙습니다!
(中)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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