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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는 영국으로부터 한 통의 소포를 받았다. 봉투를 열어 보니 선물용지로 포장된 만년필과 편지 한 통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내가 공부했던 비즈니스 스쿨의 학장님인 맥칼만 박사가 내게 보내온 것이었다. 편지를 뜯어 보니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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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나는 2년 전 당신이 내게 베풀어준 호의에 대해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한국의 힐튼호텔에서 있었던 세계 MBA Fair에 참석했을 때 당신은 행사기간 내내 내 옆에서 통역과 안내로 나를 도왔으며 또한 아무런 어려움이 없도록 배려했습니다. 그 덕분에 나는 소기의 목적을 이뤘으며 생애 처음 방문했던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과 기억을 갖고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순간 나는 누군가로부터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 일은 2년 전의 일이어서 이미 내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 진지 오래이며, 무엇보다 그 학장님과 관련해서 그리 썩 유쾌하지 못한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나는 그 당시 재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그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측에 행사참여를 자원했었다. 그 첫번째 이유로는 우리학교를 홍보하는 그 행사에 유일한 한국인 학생인 내가 빠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학장님과 동행함으로써 그와 개인적 친분을 다지고 사적이익(?)을 챙겨보자는 것이기도 했었다.
사실 이러한 내 의식의 저변에는 20여년 전 내가 국내 대학원에 재학할 당시의 경험이 깊이 깔려 있기도 했었다. 그 당시에는 공부도 공부지만 그 보다는 교수와의 친밀도에 따라 논문통과의 난이도가 결정되기도 하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동기들이 교수님들의 눈 도장을 받기 위해 오매불망 노심초사 했었던가.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내 예상은 너무도 빗나갔었다. 그 행사기간 동안은 물론이고 그 일을 마치고 돌아온 맥칼만 박사는 예전과 너무도 똑같이 나를 대할 뿐이었다. 인천공항을 떠날 때, 고맙다는 말을 내게 던진 것 외에 그는 내가 학교과정을 모두 마치고 우리나라로 영구 귀국할 때까지 그 특유의 담담하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를 대할 뿐이었고 그런 그가 나는 야속하기만 했었다.
오히려 지난 4월초에 내 졸업논문이 최종 통과할 때까지 맥칼만 박사는 무슨 거대한 바위처럼 조금의 요동도 없이 내 학업과정의 행로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맡고 있는 ‘인재관리’ 과목은 내게 천형과도 같은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과목의 과제물마다 나는 재손질 과정(revision)을 거쳐야만 했었고, 졸업시험에서도 ‘인재관리’과목에 있어서는 재시험을 치러야만 했으며 급기야 내 졸업논문의 제2 채점자(second marker; 지도교수와 함께 졸업논문을 다시 채점하는 교수)로서 그는 내게 치욕적인 점수를 안겨 주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감사의 편지를 내게 보내온 것이다. 그것도 2년 전의 일이어서 나는 이미 까맣게 잊고 있는 일을 가지고 말이다. 나는 편지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
“나는 이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또 이렇게 조그만 선물을 보낼 수 있는 날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내 마음을 감춰 왔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졸업장을 받기 전까지 학장 직을 맡고 있는 나와 학생 신분인 당신과의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의 문제가 놓여 있기 때문에 부득불 나는 내 마음을 감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당신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학교의 졸업생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임스 맥칼만 드림”
편지를 놓고 나는 두 가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사함의 시효’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공사(公私)의 구분’에 관한 생각이었다.
우리 말에 “열번 잘 해주더라도 한번 서운하게 하면 원망을 산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사의 단기성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리라. 오랜 세월 동안의 은혜와 도움도 단 한번의 발등의 불과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서는 재처럼 무의미로 변하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감사의 냄비기질’ 이라면 근접한 표현일까.
공사의 구분에 있어서도 답답한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해상충의 첨예한 문제도 당사자간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서는 쉽게 무시되어 버리는 구조가 그것이다. 아무리 엄정한 원칙이라도 학연,지연,혈연이라는 기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그 기제를 원활하게 작동시키기 위해 변칙이 원칙을 대체하는 우스꽝들이 그냥 일상 속에 널려 있다. 원래 ‘관계지향적 사회’라고 치부하고 말아 버리면 그만일까.
학장님이 내게 준 진정한 선물은 ‘나를 다시 돌아 보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류영재(70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