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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대선과 외교적 ‘거리의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2012.08.02 00:00 / 수정 2012.08.02 00:00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그래서 지금 대선과 한·미 동맹 문제는 한반도 관련 국제회의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다. 국익을 위한 외교안보 정책이 대선 정국에서 당파적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 어느 한쪽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압도적인 통치 위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외교안보 정책을 둘러싼 당파적 이해의 밀고 당기기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이른바 ‘거리의 딜레마(dilemma of distance)’가 다시 한번 우리 외교안보 정책을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미국과 중국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남북 간의 거리 문제를 놓고 당파적 논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미 동맹이 우리 외교안보의 기본 축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과 남북 대립의 와중에서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반미 정서와 ‘균형자적’ 거리 문제가 또 한번 대선 정국을 흔들어 놓지 않을까 하는 우려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중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동맹의 미래에 관한 회의에서도 미국 측 참석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 대선 후 한국 외교정책이 직면할 거리의 딜레마였다. 물론 대선 후 한·미 간에 시급히 다루어야 할 현안들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았다. 예컨대 2014년 만기가 되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재협상 문제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정권에 관계없이 이 문제의 원만한 타결 없이는 한·미 간에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아시아로의 복귀를 선언한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거리의 정책을 취할지 하는 문제였다. 대선 후 한·미 동맹이 밀월관계에서 ‘정상적’인 관계로 자리를 잡아갈 것으로 낙관하는 견해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30명이 넘는 국회의원이 반미 성향의 진보진영 출신인 점을 감안해 보면 현실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는 시각 또한 만만치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노무현 정권의 반미 정서에 등을 돌렸다. 한·미 동맹의 복원을 외친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런 대선에서의 압도적 승리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을 균형외교에서 동맹외교로 방향을 틀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0%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는 기분이다. 다시 한번 전(前) 정권을 전면 부정하는 AB(anything but)정책의 악순환을 몰고 올 수 있는 여론의 움직임이다.
이명박 정권을 전면 부정하는 ABL(anything but Lee) 여론이 미·중 간, 북·미 간 등거리를 요구할지, 아니면 지난 반세기간 성공적인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토대를 이루어 왔던 한·미 동맹의 ‘재정의’를 요구할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 다만 우리 여론 속에 내재해 있는 ‘중국 콤플렉스’와 ‘북한 콤플렉스’가 대선 과정에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의 주시해야 할 시점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회의 중 우리의 대북, 대중 애착과 환상에 이해와 우려를 표명한 전직 주한 대사들과 한미연합사 사령관들의 표정이 의미심장하게 보였다. 그동안 한·미 동맹의 네트워크 속에 체질화된 한국 외교안보 정책이 불확실한 거리의 위험지대로 나서는 것에 불안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국익을 위한 공통의 거리 모색작업이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 우리의 대선 정국에 보내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