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손호철(61회)</font>의 정치시평]처음엔 비극, 두 번째는 희극 <경향신문>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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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237회 작성일 2012-08-0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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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시평]처음엔 비극, 두 번째는 희극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어디에선가 헤겔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 번 반복된다고 쓴 바 있다. 그러나 그가 빠트린 것이 있다. 그것은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자주 인용되는 이 구절은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정치적 혼란 덕분에 나폴레옹에 이어 황제에 오른 것을 목도하면서 마르크스가 쓴 명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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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남 의원의 배신으로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 등 당 쇄신이 물 건너가면서 분당 사태에 직면한 통합진보당을 바라보면서 떠오른 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이 구절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 번 반복된다는 헤겔의 주장처럼,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는 2008년에 있었던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의 반복에 다름 아니다. 즉 2008년의 분당 사태 이후 4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을 장악한 경기동부연합 등 다수파는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의 진보정당 운동은 발목이 잡힌 채 발전하지 못하고 좋게 말해 제자리걸음을, 솔직히 말해 뒷걸음을 치고 있다.

반공주의의 불모지대에서 별 성과 없이 몸부림쳐온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은 2004년 총선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크게 힘입어 민주노동당이 10명의 의석을 가진 제3당으로 급부상함으로써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도 문제가 된 경기동부연합 등 비민주적인 패권주의와 종북주의는 한국의 진보정당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기와 분당 사태로 끌고 갔다. 이들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자위권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2007년 대선에서 신자유주의에 의한 민생파탄 문제가 아니라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생뚱맞은 구호를 들고 나와 죽을 쑤게 만들었다.

게다가 당의 중심간부가 당내 주요 인사들의 성향을 작성해 북한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일심회 사건까지 터져나왔다. 이에 조승수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가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문제삼으며 탈당했다. 놀란 당권파는 심상정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앉혔고, 심 의원은 일심회 관련자의 처벌 등을 내용으로 한 쇄신안을 내놓았지만, 당권파가 이를 부결시킴으로써 쇄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 등은 조 전 의원 등과 합류해 진보신당을 창당해야 했다.

이로부터 4년 뒤에 발생한 이번 사건은 진보신당의 다수파가 2008년의 트라우마를 이유로 재합당을 거부한 반면 그 자리를 유시민 전 의원이 이끄는 국민참여당이 대신했다는 차이만 있을 뿐 2008년의 반복에 다름 아니다. 분란의 핵심에 비민주적인 패권주의와 종북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 쇄신을 위한 최후의 노력이 경기동부연합 등 다수파의 비토로 실패하고 만 것 등이 그러하다. 2008년 일심회 관련 당직자 징계안이 부결되면서 쇄신 노력이 좌초하고 분당 사태로 달려갔듯이, 이석기·김재연 의원 징계안이 부결되면서 통합진보당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가고 있다. 특히 심상정 의원이 2008년에는 비대위원장, 현 국면에서는 원내대표라는 쇄신의 지휘관으로 고전분투하다가 좌초하고 말았으니, 역사의 장난치고는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마르크스가 잘 지적했듯이, 2008년 사태가 비극이었다면 이번 사태는 희극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번 사태는 비극적이다 못해 정말 희극적이다. 약속을 깨고 기권표를 던져 쇄신을 무산시킨 김제남 의원이 “이석기 의원에게 승리를 선사한 것이 아니라 강기갑체제에 노역형을 준 것”이라며 중단 없는 혁신을 위해 무효표를 던졌다고 주장했다니, <개그콘서트>는 명함도 못 내밀 희극의 최고 수준이다. 이제 문제는 어차피 실패한 통합진보당의 실험의 피날레가 어떤 모양을 갖출 것이냐는 것이다. 다시 2008년처럼 분당 사태로 귀결될 것인가? 아니면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확실한 것은 그것이 안티클라이맥스일 따름이라는 사실이다. 두 번째 반복하는 역사가 희극이라면 희극에 합당한 결말이 적합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기엔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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