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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191회 작성일 2012-08-1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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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전승훈]런던스타일과 강남스타일

기사입력 2012-08-17 03:00:00 기사수정 2012-08-17 03:00:00



전승훈 문화부 차장

12일 열린 런던 올림픽 폐막식은 현대 미술계의 악동 데이미언 허스트가 만든 거대한 유니언잭 모양의 무대에서 시작했다. 런던의 러시아워를 묘사한 장면에서 사람들의 옷은 물론 블랙캡 택시와 2층 버스도 모두 신문지로 싸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문지에는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 존 밀턴, 윌리엄 워즈워스 같은 영국 대문호들의 작품이 인쇄돼 있었다. 오늘의 영국을 만들어낸 힘이 활자와 인문학에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활자로 시작한 폐막식은 조지 마이클, 스파이스 걸스, 더후, 뮤즈 등 팝음악 스타들과 패션계의 거장 알렉산더 매퀸, 타악 퍼포먼스 ‘스톰프’ 등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영국 대중문화의 창조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개막식에서 폴 매카트니가 ‘헤이 주드’를, 폐막식에서 퀸이 ‘위 윌 록 유’를 수만 명의 관객들과 함께 ‘떼 창’한 것은 정말 짜릿한 순간이었다.

개막식에서도 영국은 산업혁명, 여성참정권 운동, 국민의료서비스(NHS), 해리포터, 피터팬, 뮤지컬, 코미디까지 두루 자랑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중국은 인류 4대 발명품(나침반, 화약, 인쇄술, 종이)과 세계로 뻗는 중국의 힘을 과시했다. 그러나 런던 올림픽이 베이징 올림픽과 달리 쇼비니즘(배타적 애국주의) 논란에서 벗어나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곳곳에 숨겨진 ‘유머’의 힘 때문이었다.


‘영국식 유머’(British Humour)는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등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프랑스 유머가 남의 약점이나 순진함을 조롱하는 말장난이 많다면, 영국식 유머는 자기 자신까지도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 블랙유머가 많다. 이는 먼저 자기를 낮춤으로써 남의 공격을 예방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런던 올림픽은 진지하고 엄숙한 개막식에서 국가의 최고 존엄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86)을 웃음거리로 삼았다. 올해 즉위 60주년을 맞은 여왕이 제임스 본드와 함께 치마를 휘날리며 스카이다이빙을 하고(대역이었음),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미스터 빈’ 로언 앳킨슨이 무대 위에서 조는 장면에서 전 세계인들은 ‘빵’ 터졌다.

지난 한 달 동안 유튜브에서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세계의 공통언어인 유머의 힘을 보여준 사례다. 기름진 머리를 한 남자가 육중한 몸매로 말춤을 추는 장면을 본 외국인들은 컴퓨터 앞에서 파안대소하고, 패러디 동영상을 띄우면서 싸이의 유머에 동참했다. ‘런던스타일’이나 ‘강남스타일’도 모두 자신이 ‘가장 잘 나가는 핫(hot)한 존재’임을 강조했지만, 스스로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머로 세계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것이다.

런던 올림픽 개·폐막식을 본 탈북자들은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북한의 아리랑축전이나 88 서울 올림픽,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등은 꽉 짜인 군대 열병식 같은 분위기였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관람했던 리틀엔젤스 공연이나 SM타운의 K팝 콘서트의 ‘집단 안무’도 경이롭지만 획일적인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개·폐막식은 한국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총감독을 맡는다고 한다. 한국의 ‘정(情)과 한(恨)’을 탁월하게 그려냈던 임 감독에게 세계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한국식 유머도 함께 기대해본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blog_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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