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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전승훈]사드는 다시 불태워져야 하는가
기사입력 2012-09-26 03:00:00 기사수정 2012-09-26 03:00:00
전승훈 문화부 차장
19세 미만 금지 처분인 ‘청소년 유해간행물’ 판정과 달리 ‘유해간행물’ 판정은 모든 독자가 책을 읽을 수 없도록 하는 책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간행물윤리위원회는 “근친상간, 수간(獸姦), 시간(屍姦) 등 음란성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다.
이 소식은 프랑스 통신사 AFP를 타고 전 세계로 퍼졌다. 뉴욕데일리는 “인터넷에서 언제든 포르노를 볼 수 있는 2012년에, 더구나 민주주의가 발전된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놀랍다”고 전했다. 네덜란드 일간지 NRC한델스블라트는 “18세기 말에 나온 책이 200년 만에 국제적인 스캔들을 일으켰다”고 조롱했다.
‘소돔의 120일’은 루이 14세 치하에서 공작, 법원장, 주교, 징세청부인 등 부유한 권력자 4인이 젊은 남녀 노예들을 이끌고 120일간 향락을 즐긴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 보니 외설스럽다기보다 너무 끔찍해 읽기 쉽지 않았다. 사드는 인체의 부분을 하나하나 해체해 가며 쾌락의 원천을 밝혀 내려는 과학자처럼 집요하게 가학 행위를 서술해 나간다.
사드는 ‘변태성욕자’란 죄목으로 평생 30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방탕한 성생활뿐 아니라 종교와 도덕, 권력에 대한 모독을 일삼는 그는 위험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785년 바스티유 감옥에서 37일 만에 ‘소돔의 120일’을 써 냈다. 폭 11cm, 길이 120cm나 되는 띠를 구해 빽빽이 글을 써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자신을 가둔 절대왕정 권력자들의 위선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1975년 이탈리아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 감독도 영화 ‘살로 소돔 120일’을 만들면서 1944년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의 말기로 배경을 바꿔 권력을 비판했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을 드러낸 사드의 작품은 20세기의 정신분석학, 실존주의, 초현실주의, 니힐리즘 등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드에 관심을 가진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성적인 동기를 통해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정신분석학을 발전시켰다. 작가 시몬 보부아르는 ‘사드는 불태워져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사드는 실존주의보다 150년이나 앞선 자유주의 철학가”라고 말했다. 보들레르는 자연 상태의 인간과 사드의 악을 연결시키면서 ‘악의 꽃’을 썼고,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역사상 존재한 가장 자유로운 정신”이라고 사드를 칭송했다.
사드의 판타지는 공포 및 공상과학소설(SF), 영화 등 대중예술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최근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그레이의 50가지’도 사도마조히즘(가학과 피학적 고통을 통한 성적 쾌감)을 다룬 소설이다. 신체를 절단하는 고통과 가학적 행위가 빈번히 등장하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세계도 사드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돔의 120일’에 대한 폐기 결정은 최근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면서 경찰이 불심검문을 부활시키는 등 경직된 우리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한류 문화 강국을 표방한 나라에서 고전이 된 18세기 작품조차 포용 못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라면 ‘19금’ 딱지를 붙이면 될 것을, 어른들도 못 읽게 하는 것은 지나친 우려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