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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회사를 휴직하고 영국으로 간 이후부터 갑자기 불어난 체중을 관리하기 위해 나는 조깅이라는 것을 시작했었다. 다행히 집과 학교 주위에 오솔길 같은 모양새의 산책로가 있는지라 거의 매일 그곳을 달리곤 했었다. 한바탕 달리고 나면 온 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흡사 신체의 온갖 노폐물이 땀으로 다 빠져 나가는 쾌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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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도 조깅의 매력은 천천히 달리는 도중에 불현듯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거나 복잡한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데 있었다. 사실 암기 보다는 창의성을 요구하는 영국의 학교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매 과제물마다 새로운 아이디어 내지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생각의 병목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적마다 나는 더욱 힘차게 달렸고, 또 달리면서 힘을 얻기도 했었다. 한국에 돌아온 요즘도 나는 매일 조깅을 즐기고 있다. 다행히 내가 사는 집 주위에는 탄천 주위를 끼고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그곳에서 조깅을 할 수 있기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러나 이 곳에서 한 달 동안 조깅을 하면서 나는 영국의 산책로와의 몇 가지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영국에서는 산책로를 달리면서 나는 한번도 다른 산책객들과 부딪히거나 남들로 인한 진로 방해 때문에 내 달리기의 속도를 줄일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모든 산책객들은 항상 뒤에서 달려오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혹시 있는지 여부를 살펴서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길을 열어 주며 걷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완견의 천국인 영국에서는 개를 키우려면 법에 의해 매일 일정 시간 이상 산보를 시켜야 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철저히 끈으로 묶어서 산책을 즐기기 때문에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닐장갑과 봉투를 상비해서 혹시 개가 용변을 보게 되면 장갑으로 배설물을 주어 봉투에 담아 가곤 한다. 따라서 영국의 산책로에는 수 없이 많은 개들이 주인을 따라 걷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들로 인해서 내 조깅의 유쾌함이 반감되거나 방해를 받았던 적도 역시 기억할 수가 없다.
돌아와 보니 우리나라도 4년 사이 부쩍 중노년층의 산책객과 애완견의 수가 늘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곳을 달릴 때면 간혹 그리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우선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산보를 하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이 옆으로 나란히 서서 걷기 때문에 산책로의 통로는 완전히 막혀 버리기 십상이다. 또한 개들을(특히 덩치가 큰 개들의 경우) 산보 시키는 경우에도 별다른 통제 수단 없이 개들을 방치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특히 개를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큰 불편과 부담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라는 공공적 공간은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영국의 경우 사회성의 근저에는 타자에 대한 배려와 양보라는 사상이 깔려 있다. 이것이 곧 공익성을 담보하는 엔진인 것이다. 즉, 공공적 공간은 내 것이 아니라 남들과 공유되어 함께 사용되는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의 일정 부분을 스스로 제약하고 타자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그들에게 양보할 부분은 흔쾌히 양보할 때 비로서 사회의 다원적 참여와 의견은 사회적 공공선을 구현하는데 순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아니하고 우리 동네의 산책로의 사람들처럼 여럿이 걷는 다고 길 전체를 막아 버리거나, 그들이 그들의 애완견을 무척 아끼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냥 자유롭게 내 버려 둔다면, 뛰어 오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인라인을 즐기는 사람들, 개를 몹시 싫어 하는 사람들 등등 다양한 취향과 기호를 갖고 산책로를 공유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불편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 전체의 시각에서 볼 때 그 산책로는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는 법이다. 오히려 크고 잦은 분쟁과 싸움이 빈번할 것은 뻔한 이치이다.
애완견의 보급과 산책객의 증대는 자연스런 사회의 변화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산책로나 애완견이라는 하드웨어의 확대와 아울러 산책 매너라는 소프트 웨어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좀 거창하지만 “양보와 타협”이라는 소프트 웨어가 없는 “참여민주주의”라는 하드웨어는 제대로 구동할 수 없다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서양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사상들 중에서 원융무애(圓融無碍)의 사상이 있다고 한다. “하나로 융화될 때 걸림이 없다”라는 의미이다. 이제 남과 융화하는 방법, 더불어 사는 사회의 행복, 그리고 타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방법론등을 찾아 나설 때이다.
류영재(70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