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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이제 ‘실용적 현실주의자’들 차례다
[중앙일보] 입력 2012.06.21 00:00 / 수정 2012.06.21 00:00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하지만 이것은 애초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전문가 회의에 가보면 으레 지적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외교안보 정책이 왜 ‘너희들만의 리그’로 일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햇볕정책이 자기절대화에 빠진 이상론자들의 경연장이었다면, 압박정책은 자기절대화에 빠진 한국판 네오콘들의 경연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들만의 이념적 리그에서 타자와의 공존이나 타협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이념적 리그의 눈에는 이익적인 타협이 타락한 야합으로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이익적 리그는 타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념적 리그보다 대립이나 갈등을 방지하는 데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그 때문에 누가 정권을 잡든 이제는 실용적인 현실주의자들을 외교안보팀에 포진시켜야 한다. 절대적인 이념 대립을 극복해서 타협적인 이익 대립의 환경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대결의 역사를 공존의 역사로 이끌어 낸 외교정책은 대체로 실용적 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세계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온 트루먼-애치슨-마셜의 정책이나, 냉전 대결에 데탕트를 몰고 온 닉슨-키신저의 미·중 국교정상화, 총성 한 방 울리지 않고 냉전 종식을 가져온 아버지 부시-베이커-스코크로프트의 정책 등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국내외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반도 안보지수는 이런 위기상황을 여실히 나타내 주고 있다. 2007년 안보지수를 조사한 이래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이다. 군사적 긴장지수는 연평도 포격사건 때와 유사하며, 남북 당국 간의 관계지수는 연평도 포격 사건 때보다 더 악화되어 있다.
이런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 2+2(외교·국방장관)회담은 포괄적인 연합방어태세를 구축하는 동시에 사이버 안보협력체제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대선 정국의 취약한 안보환경에서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 대신 생존의 문제가 대북정책의 전면으로 등장하면 결론이 너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한 북한의 제압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물론 북한과 같이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군사적 긴장의 연속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전쟁에 의존하지 않고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어려운 정책선택을 계속해 왔다. 이것은 평화를 위한 계산된 모험이었다.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물론 국제정치에서 힘과 평화는 같이 간다. 하지만 제아무리 강력한 군사력도 외교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나폴레옹이 우세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전 유럽동맹에 처참한 패배를 당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반면 비스마르크의 성공은 적대국의 잠재적 동맹을 와해시킨 그의 용의주도한 외교정책 때문에 가능했다.
대북정책도 마찬가지다. 그 성패는 우리가 어떻게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과 평화를 유지하느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인식은 2+2회담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에 신냉전 구도의 심화는 굴러들어 온 역설적인 행운이다. 북한이 무슨 도발을 하든 중국이 보호해 주지 않을 수 없는 구조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는 이 역설적 행운을 최대한 누리려 할지 모른다. 이를 막아야 한다. 실용적인 현실주의 정책의 지혜와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