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전병준</font> 칼럼] `뺄셈의 정치인` 박근혜 운명은? <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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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준 칼럼] `뺄셈의 정치인` 박근혜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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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7.11 17:08:55 | 최종수정 2012.07.11 19:29:35 |
1976년 미국의 유권자들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잠정 유보했다. 하원의장과 부통령 출신인 현직 대통령 제럴드 포드를 외면했다. 대신 조지아주 땅콩농장주 출신의 무명 주지사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위대한 미국도 좋지만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추락할 대로 추락한 미국 정치의 도덕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본 것이다. 상대적으로 덜 부정적인 정치세력을 뽑았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뺄셈의 정치`다.
4년 후 상황은 급변했다. 대외관계에서 죽을 쑤고 있는 민주당의 현직 대통령 지미 카터를 낙선시켰다. 대신 공산주의 타도와 경기 회복을 주장한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도덕성도 좋지만 미국의 자부심을 세워주고 경제대국 미국을 되살리겠다는 희망세력에 표를 몰아준 것이다. 한마디로 `덧셈의 정치`에 손을 들어준 격이다.
유권자가 어떤 정부를 선택하느냐는 시대적 상황, 유권자의 수준, 정책의 실현 가능성 등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선거의 속성상 `실현 가능한 희망`에 기대를 거는 것이 상례다. 뽑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도 많지만 국민의 강한 희망이 선거라는 정치과정에 녹아들고 그 과정을 통해 유권자들은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 좋은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열망도 갖는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한국의 압축성장이 말해주듯 지난 50년간 한국의 대통령선거는 몇 차례의 체육관 선거를 제외하고는 희망을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60년대 박정희를 선택했던 이유도 잘살아 보겠다는 희망이었고 김영삼, 김대중의 선택 역시 문민화와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여망이 반영된 것이었다. 노무현을 뽑아준 것도 인권과 평등의식에 대한 젊은 유권자들의 선택이었고, 그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 역시 "경제를 살려 달라"는 국민의 강렬한 주문이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과거와 다른 점은 국민이 희망을 피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현재의 여야 정치세력에는 희망을 걸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주변에 "이번 투표는 정말 하고 싶지가 않다. 누구를 선택해도 큰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고 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덧셈의 정치`에 익숙해져온 한국의 유권자들이 평소에 경험해 보지 못한 `뺄셈의 선택`을 앞두고 정치행위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는 뺄셈 정치의 대가다. 그의 지지율은 유권자의 희망을 반영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나라를 덜 망칠 것 같은` 유권자의 불안심리 결과물이다. 그 점에서 그는 부친인 박정희와 확연히 구별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박정희는 희망의 정치인이었다. 기존의 틀을 거둬내고 국민에게 밝은 미래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실천의 정치인이었다. 보수라기보다는 진보에 가까운 통치자였다. 박근혜가 10일 대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국민 행복`을 천명했지만 덧셈의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냐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 대선은 여야의 대결이 아니라 박근혜와 비(非)박근혜의 대결이다. 선거양상을 축구에 비유해 보자. 수비축구의 달인 박근혜가 한 골 정도 앞선 상태에서 공격이 시원치 않은 상대방과 싸우는 구도다. 야당은 자기 제어를 못하는 공격수(통합진보당)가 고의반칙으로 퇴장 당해 10명으로 싸우고 있다. 교체카드(안철수)를 통해 전세를 뒤집으려 하고 있지만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 쉽지 않다. 관중은 재미없다며 게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고 있다.
박근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기자는 그가 한 골 더 넣기 위해 공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혹 수비가 부실해져 역전패라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공격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관중이 열광하고 한국 축구(정치)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다. 그가 과연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정치공학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이번 대선 최대의 관전 포인트다.
[전병준 국차장 겸 지식부장]
4년 후 상황은 급변했다. 대외관계에서 죽을 쑤고 있는 민주당의 현직 대통령 지미 카터를 낙선시켰다. 대신 공산주의 타도와 경기 회복을 주장한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도덕성도 좋지만 미국의 자부심을 세워주고 경제대국 미국을 되살리겠다는 희망세력에 표를 몰아준 것이다. 한마디로 `덧셈의 정치`에 손을 들어준 격이다.
유권자가 어떤 정부를 선택하느냐는 시대적 상황, 유권자의 수준, 정책의 실현 가능성 등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선거의 속성상 `실현 가능한 희망`에 기대를 거는 것이 상례다. 뽑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도 많지만 국민의 강한 희망이 선거라는 정치과정에 녹아들고 그 과정을 통해 유권자들은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 좋은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열망도 갖는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한국의 압축성장이 말해주듯 지난 50년간 한국의 대통령선거는 몇 차례의 체육관 선거를 제외하고는 희망을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60년대 박정희를 선택했던 이유도 잘살아 보겠다는 희망이었고 김영삼, 김대중의 선택 역시 문민화와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여망이 반영된 것이었다. 노무현을 뽑아준 것도 인권과 평등의식에 대한 젊은 유권자들의 선택이었고, 그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 역시 "경제를 살려 달라"는 국민의 강렬한 주문이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과거와 다른 점은 국민이 희망을 피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현재의 여야 정치세력에는 희망을 걸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주변에 "이번 투표는 정말 하고 싶지가 않다. 누구를 선택해도 큰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고 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덧셈의 정치`에 익숙해져온 한국의 유권자들이 평소에 경험해 보지 못한 `뺄셈의 선택`을 앞두고 정치행위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는 뺄셈 정치의 대가다. 그의 지지율은 유권자의 희망을 반영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나라를 덜 망칠 것 같은` 유권자의 불안심리 결과물이다. 그 점에서 그는 부친인 박정희와 확연히 구별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박정희는 희망의 정치인이었다. 기존의 틀을 거둬내고 국민에게 밝은 미래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실천의 정치인이었다. 보수라기보다는 진보에 가까운 통치자였다. 박근혜가 10일 대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국민 행복`을 천명했지만 덧셈의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냐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 대선은 여야의 대결이 아니라 박근혜와 비(非)박근혜의 대결이다. 선거양상을 축구에 비유해 보자. 수비축구의 달인 박근혜가 한 골 정도 앞선 상태에서 공격이 시원치 않은 상대방과 싸우는 구도다. 야당은 자기 제어를 못하는 공격수(통합진보당)가 고의반칙으로 퇴장 당해 10명으로 싸우고 있다. 교체카드(안철수)를 통해 전세를 뒤집으려 하고 있지만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 쉽지 않다. 관중은 재미없다며 게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고 있다.
박근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기자는 그가 한 골 더 넣기 위해 공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혹 수비가 부실해져 역전패라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공격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관중이 열광하고 한국 축구(정치)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다. 그가 과연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정치공학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이번 대선 최대의 관전 포인트다.
[전병준 국차장 겸 지식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