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독(在獨)음악가 고(故)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씨(氏)가 김일성의 “永生不滅(영생불멸)”을 기원하는 친필 서신을 소개한다. 서신의 출처는 북한의 ‘문학예술출판사(주체92(2003)년 출간)’가 펴 낸 ‘영원한 추억’이란 책자이다. 같은 책엔 김일성 사망 시와 1주년 당시 윤이상 본인이 썼다는 편지도 수록돼 있다.
윤이상은 현재 서울 거주 중인 오길남 박사와 吳박사 가족인 경남 통영 출신 신숙자(69)씨와 두 딸 오혜원(35)·규원(33)씨 3모녀의 入北(입북)을 사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吳박사 가족은 1985년 독일을 떠나 北으로 갔다가 이듬해 吳박사만 홀로 탈출해 1992년 귀국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오길남 간첩 사건’ 수사 발표를 통하여 吳씨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한 뒤 윤이상이 “북한의 조종을 받아 활동하는 북한의 문화공작원”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윤이상의 유족들은 ‘통영의 딸’ 입북(入北)에 윤이상이 개입한 사실을 부정하며 심지어 윤이상의 從北(종북) 행각마저 부인해왔다.
극좌매체들은 이들의 충실한 스피커 역할을 해왔다. <한겨레>는 1월27일 토요일 특집판에 음악가 윤이상의 아내 이수자씨(氏) 인터뷰 기사를 1면 헤드라인에 실었다.
李씨는 기사에서 “더 이상 윤이상 이름을 팔아먹지 말라”, “우리도 가족이 8년 동안 흩어져 살아본 경험이 있어 오씨 가족의 송환을 위해 특별하게 신경 썼다”며 “처음엔 가족 팔아먹고, 나중엔 윤이상 팔고 산다. 더 이상 윤이상이란 이름 팔아먹지 마라. 우리만큼 오 씨 가족 송환 위해 애쓴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라”라며 오(吳)박사에게 인신공격을 퍼 부었다.
또 윤이상에 대해 “윤 선생은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에 힘썼다” “민족과 예술을 짊어지고 산 사람이다. 음악과 조국 두 가지 개념 속에서 살다간 사람이다.” “민족의식이나 역사의식이 강했다”고 미화했다.
2. ‘영원한 추억’에 수록된 이수자氏의 자필서신은 李씨가 김일성 사망 5년을 맞아 북한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은 뒤 방명록에 적은 것으로 나온다. 이 서신은 “아-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 “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 등의 낯 뜨거운 내용으로 돼 있다.
윤이상이 김일성 사망 시와 1주년 당시 썼다는 편지 역시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 “우리 력사 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는 등 김일성에 대한 찬양일변도다.
기자(記者)는 이 자료를 국회도서관과 국립도서관에서 확인했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윤이상·이수자 부부는 김일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해 온 인물들이다. 따라서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에 힘썼다” “음악과 조국 두 가지 개념 속에서 살다갔다” “민족의식이나 역사의식이 강했다”는 이수자氏의 윤이상에 대한 평가에서 나오는 ‘조국’이나 ‘민족’은 대한민국이나 한민족으로 보기 어렵다. 만일 이런 방대한 증거가 북한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이수자氏는 가련한 오길남 박사와 방수열 목사를 고소하는 대신 북한에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영원한 추억’에 수록된 윤이상 부부의 편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아- 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 수령님께서 떠나신지 벌써 어언 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대를 이으신 장군님께서 한 치의 빈틈없이 나라 다스리심을 수령님께서 보고 계실 것입니다. 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 우리의 강토를 지켜주시고 민족의 념원인 통일됨을 열어주십시오.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 주체88년 7월 8일 리수자》
《하늘이 무너진 듯한 충격과 이 몸이 산산이 쪼각나는듯한 비통한 마음으로 위대하신 수령님의 서거의 통지를 접하고 허탈상태에 있는 이 몸이 병중에 있으므로 달려가 뵈옵지 못하는 원통한 심정을 표현하며 전 민족이 한결 같이 우리 력사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 1994.7.9 빠리에서. 치료 중에 있는 윤이상 부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서거 1돐을 맞이하여 그 영령 앞에 심심한 애도와 흠모를 절감하오며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 도이췰란드 베를린의 병원에서 윤이상 삼가 올립니다. 1995년 7월 8일》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 수령님께서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민족의 재간둥이라고 부르시던 저의 남편 윤이상은 오늘 병원 병석에 누워있어 저와 같이 수령님 령전에 가서 수령님을 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주만사의 원리라고는 하지마는 수령님께서 저희들 곁을 떠나신지 벌써 1년이란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항상 수령님께서 저희들 곁에 계심을 느끼며 수령님을 추모할 때마다 그 인자하시고 인정 많으시고 눈물 많으신 우주와 같이 넓으신 덕성과 도량, 세상의 최고의 찬사를 올려도 모자라는 수령님, 살아계셨어도 그러하였고 돌아가신 뒤도 부디부디 불우한 저의 민족의 운명을 굽어 살펴주소서. 수령님 령전에 무한한 평화와 명복을 빕니다. 1995년 7월 8일. 리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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