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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하루
육영수 여사와 박 대통령 부부의 생전모습
나는 10.26사건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부마(釜馬) 사태의 현장에 있었던
이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해사건과 이 사건의 후폭풍인 12 .12사건을 장기간 취재해 왔다.
이런취재는 박대통령 전기(傳記) 집필로 이어졌다.
내가 10 . 26사건을 취재하면서 개인적 호기심을 풀려고 한 대목이 있다.
박 대통령은 과연 가슴 관통상을 당하고도 "난 괜찮아" 라고 말했을까.
나는 10.26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주요 인물들을 거의 다 만났다.
물론 거기에는 그 최후의 만찬장에 있었던 세 생존자도 포함된다. 김계원金桂元(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심수봉沈守峰(가수), 그리고
신재순 申才순(여대생). 이들 중 신재순 씨의 증언이 가장 정확했다.
신씨는 대담한 성격인 데다가 기억력과 표현력이 대단했다.
하느님이 그녀를 박정희의 최후 목격자로 선택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가한 시간에 피아노 치는 박 대통령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45분, 김재규金載圭의 권총 발사로 가슴을 관통 당해
등에서 피를 콸콸 쏟고 있던 박정희를 혼자서 안고 있었던 이가 신씨였다.
차지철車智澈 경호실장은 팔에 총상을 입고 실내 화장실로, 김계원 씨는 바깥 마루로, 심수봉 씨는 김재규가 다가 오는 것을 보고 달아난 이후 신씨만이 대통령을
피범벅 속에서 안고 있었다.
김재규는 합동수사본부 수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차지철을 거꾸러뜨리고 앞을 보니 대통령은 여자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있어
식탁을 왼쪽으로 돌아 대통령에게 다가가자 여자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권총을 각하의 머리에서 50cm 거리에 대고 쏘았습니다.
이 순간을 40대의 중년의 중년여성으로 변한 신재순 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그 사람의 눈과 마주쳤을 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의 눈이 아니라 미친 짐승의 눈이었어요.
그가 대통령의 머리에 총을 갖다 대었을 때는 다음에는 나를 쏘겠구나 생각하고
후다닥 일어나 실내 화장실로 뛰었습니다. 저의 등 뒤로 총성이 들렸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도 문 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청와대 정원에서 육여사와 함께한 박 대통령
바깥이 좀 조용해 지자 신씨는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대통령은 실려 나갔고 문 앞에 차 실장이 하늘을 보고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신씨가 일으키려고 손을 당겼다.
"차 실장은 몇 번 힘을 써 보다가 포기하는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난 못 일어날 것 같애." 그러고는 다시 쓰러져 신음하는데
그 눈빛도 잊을수가 없어요.
그 날 밤 차 실장은 김재규 부장을 자극하고 약을 올리듯 막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차실장이 고마운것은 그날 제가 대기실에서 면접을 볼 때
술을 못 마신다고 했더니 그분은
"옆에 깡통을 갖다 놓을테니 거기에 부어 버려라" 고 말하더군요.
나는 박정희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신씨에게 여러 모로 물어보았다.
신재순씨의 설명은 일관성이 있었다.
"그날 밤 대통령 께서는 좀 취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말이 헛 나올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인자한 아버지 같았어요.
피를 쏟으면서도 "난 괜찮아" 라는 말을 또박 또박 했으니까요.
그말은 "난 괜찮으니 자네들은 어서 피하게" 라는 뜻이었습니다.
일국의 대통령 이시니까 역시 절박한 순간에도
우리를 더 생각해 주시는구나라고 생각했었죠.
그 분의 마지막은 체념한 모습이었는데 허무적이라기 보다는
해탈한 모습 같았다고 할까요.
총을 맞기 전에는 "뭣들 하는 거야" 하고 화를 내셨지만
총을 맞고서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였어요.
어차피 일은 벌어졌으니까요."
근혜, 근영 두딸과 함께 아들 지만 생도를 찾아간 박 대통령
해탈한 모습으로 운명을 받아들인 박정희!
총성과 고함과 비명이 오고 가는 아수라장 속에서
피하지도 숙이지도 애원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난 괜찮아"란 말을 남기고 떠난 사람.
그래서 나는 그가 참 멋진 모습으로 죽은 사람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그가 보통 사람처럼 행동 했더라면?
차지철 실장처럼 실내 화장실로 달아나 숨어 있는것을
김재규가 문을 차고 들어가 그를 사살하는 모습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것인가.
박정희의 비범한 죽음과 그 증언자 신재순 씨로 인해서 우리는 영웅을
잃지 않게 되었다.
해탈한 초인 超人의 모습으로 죽은 박정희의 국장 國葬,
최규하 崔圭夏 대통령 권한대행이 영전 靈前에 건국훈장을 바칠 때
국립교향악단은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작곡)를 연주했다.
독일 철학가 니체가 쓴 동명同名의 책 서문을 음악화한 이 곡의 선정은
얼마나 상징적 이었던가.
어느 행사장에서 담배를 피며 활짝웃는 박 대통령 내외분
한 시대의 청탁(淸濁)을
다 들이마시고도 끝까지 자신의 혼을 더럽히지 않고 죽어 간 박정희를
나는 서슴치 않고 초인 超人 이라고 부른다.
무자비한 권력욕의 화신이 아니라 부끄럼 타는 초인!
하나 우스운 것은, 김재규의 지령을 받아 두 대통령 경호원을 사살 하는 등
이날 궁정동 작전을 지휘했던 박선호 朴善浩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 일대 학살극을
끝낸 뒤 두 여인(심수봉, 신재순)에게 각각 20만원이 든 돈봉투까지 주고
차에 태워 집으로 보내 주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사살 당하는 것을 목격한 두 사람을,
이 사건의 주역이 아무 감시역도 붙이지 않고 현장에서 이탈하게 했다는
이 점이 10 . 26사건의 성격을 이야기 해준다.
과감하지만 치밀하지 못한 김재규의 지리멸렬상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권력을 잡지 못하고 전두환全斗煥 의 등장에 길을 열어 주엇던 것이다.
10월 26일 밤의 행동에 의하여 상처받고 의심받은 요인들과
이 약점을 이용한 세력이 있었다.
이날 밤은 그뒤 10 여 년의 한국 역사를 상당 부분 결정했다.
여름 휴가때 망중한을 즐기던 박 대통령의 어느날 오후에
계엄사령관으로 등장한 정승화鄭昇和 장군은 김재규의 계략에 의해
대통령 시해 현장에
초대 받아 와 있었다는 점으로 해서 의심을 샀고,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