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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G20 : 편들기 넘어 주도적 역할 찾는 계기 돼야
[중앙일보] 입력 2010.11.11 00:00 / 수정 2010.11.11 09:59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
정상회의의 계절이다. 아세안+3, G20, 그리고 APEC 정상회의가 연이어 열린다. 한반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우리의 역할을 테스트할 최적의 무대다. 의장국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기대되는 G20회의가 오늘 서울에서 개최된다.서울대 교수·정치학
어떻게 보면 G20 서울회의는 빈곤과 분쟁의 대명사 같았던 우리가 성공과 희망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마도 “축하! G20 서울회의”라는 인사를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나 자신도 정상외교를 취재했던 일본의 지인 언론인으로부터 이런 축하 메일을 받았다. 회의의 성공을 위해 일본의 정상회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이 처음으로 선진국 정상회의에 참가한 것은 우리보다 35년이나 앞선 1975년이다. 프랑스 랑부예에서 열린 ‘제1회 선진국 수뇌회의(G6)’였다. 일본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였다. “구미 선진국 국기와 함께 일본 국기가 휘날리는 것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졌다”는 감격의 기사가 신문 지면을 메울 정도였다. 지금의 서울 분위기를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의외였다. 작금 방황하는 일본의 모습이 G8외교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미(對美)관계만 좋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언론도 회담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본 총리가 미국 대통령 옆에서 사진을 찍었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했다. 탈냉전 후에도 20년이 넘도록 이런 패턴이 계속됐다. 하지만 G2, G20세계에서 이런 패턴을 반복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본 나름대로의 국가 전략에 대한 요구가 일어났다. 민주당 정권의 등장이었다. ‘대등한 미·일 관계’ 속의 다극적 외교가 모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5년 전 모습 그대로다. 그 결과 미국과는 삐걱거리고 중국에는 치이며 러시아에는 밀리는 꼴이 됐다는 것이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자리를 찾을 것인가.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 이런 논의는 들리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월스트리트 저널의 지적처럼 외교안보 면에서도 기존 전략은 수명을 다해가고 있지만 새 전략을 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원로 정치인이 걱정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19세기 말 조선의 역경이 되풀이될지도 모른다고. 물론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이 닥칠지도 모르는데 그저 최선의 상황만 기대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절박한 과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선 중국을 극복해야 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국이 한반도를 통하지 않고 세계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북한이 우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새로운 패턴의 외교안보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토대는 여전히 한·미 동맹이다. 하지만 새로운 모습의 한·미 동맹이다.
한·미 동맹의 ‘재확인’ 위에서 이루어지는 동맹의 ‘재정의’ 작업에는 희생이 따를 것이다. 이익의 희생뿐 아니다. 오랫동안 소중히 해왔던 기존 신념도 희생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유념해야 한다. G2, G20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그러한 이익이나 신념은 곧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돼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이 재확인과 재정의를 어떻게 균형 있게 엮어내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작업은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또 이를 현실로 옮기는 일도 그리 간단치 않다. 하지만 대선 정국과 더불어 이를 둘러싼 논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국민적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G20회의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어떨까.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