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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71회 작성일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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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미주 현지 sports seoul 신문 1월 14일자에 난 기사 전문입니다. 동계 올림픽 성화주자 선정 한국자동차그룹 이 대룡회장(57회) "한인사회 대표 버몬길을 뜁니다." 올해 한국은 세계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의 하나인 월드컵 축구 열기로 뜨겁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는 또 하나의 '지구촌 스포츠 축제'가 열린다. 동계 올림픽이다. 이번 동계 올림픽은 바로 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린다. 이번 동계 올림픽 개막에 앞서 미국내 한인 커뮤니티에 경사가 났다. 바로 LA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자동차 그룹인 한국자동차의 이대룡회장이 솔트 레이크 시티 동계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회장이 이같은 영광스러운 무대에 서게된 것은 미국 주류사회에서도 인정될 정도로 사업을 크게 성공시킨 '자랑스런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이번 동계 올림픽 공식 스폰서인 GM이 스폰서 자격으로 성화 주자를 추천할 수 있게 되자 미 전역 4천여개 딜러에서 소비자 만족도가 높은 200개 딜러를 선정, 지난해 3월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에서 딜러 미팅을 가졌다. 한국인 최초로 지난 90년 GM 딜러쉽을 획득한 이회장은 여기서 성화 봉송주자로 선정되 오는 15일 버몬 시보레가 있는 버몬의 4~6가 구간에서 성화를 들고 달리게 된다. 미국에 정착한 뒤 지난 73년부터 현재까지 25년간 비지니스맨으로 한길을 달려온 이회장은 사실 동계 올림픽과 무관하지 않다. 중앙고교 재학시절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활동했던 것. 타운에서 소문난 싱글 골퍼인 이회장의 골프실력은 이때 단련된 하체와 운동신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이회장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 매일 1시간씩 달리기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땀을 흘리는 생활 스포츠인이다. 이같은 꾸준한 운동 덕택에 이회장을 보면 도무지 60대라는 나이가 연상되지 않는다. 아직 구체적 계획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회장은 체육계 후배들을 위해 이번 동계 올림픽 한국선수단 후원활동을 계획하고 있기도 하다. 성화봉송주자로 선정된 뒤 이회장은 "개인적으로는 크게 내세울 것 없는 쑥스러운 일이지만 미국내 한인 커뮤니티의 영광인 것 같아 성화봉송날 조촐한 기념식을 갖는다"며 "많은 한인들이 참석해 축하해 주시면 감사할 뿐" 이라고 말했다. # 이회장 프로필 이 대룡회장은 지난 1968년 유학생으로 미국땅을 처음 밟았다. 잠사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기도 했던 이회장은 다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다시 미국에 돌아왔을 때 그의 주머니에는 단돈 30달러가 들어있었다. 이때 이회장은 에어컨 공장에 취직, 시간당 4달러를 받는 직공으로 일했다. 돈을 더벌기 위한 욕심으로 하루 16시간씩 노동을 하기도 했다. 이때 몸에 벤 부지런함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한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 이회장의 설명. 이후 햄버거 샵을 운영하기도 한 이회장은 1972년 마침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길에 들어섰다. 동양자동차에 입사, 자동차 세일즈맨을 시작한 것. 1년간 자동차를 세일즈한 이회장은 철저하게 고객에게 신용을 지켜온 덕택에 한달에 70 ~ 80대의 자동차를 파는 최고의 세일즈맨에 떠올랐다. 그리고 1년후인 1973년 마침내 8가와 킹슬리 코너에 '한국 자동차' 간판을 걸며 자신의 비지니스를 시작했다. 이회장은 이후 일에 미쳐 살았다. 직원을 채용할 때도 주말에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았다. 대신 높은 보스를 줬다. 이회장의 방침은 고객에 한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 자신뿐 아니라 전사원이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꼭 지키도록했다. 1987년 올림픽에 현재 올림픽 사옥을 올린 이회장이 도약하게 된 계기는 1990년. 10개 회사가 경합을 벌인 버몬쉐볼레를 인수한 것이다. 당시 사내에서는 한인교포들이 미국산 자동차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같은 결정을 반대했다. 그러나 이회장은 미국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만 더욱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며 뚝심있게 밀어붙혔다. 결과는 대성공. 이같은 과정은 한국산인 기아자동차 딜러를 획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회장은 사업성이 가소 떨어지더라도 한국산 자동차를 미국인들에게 팔겠다는 애국심으로 이 결정 또한 밀고 나갔다. 한국자동차를 설립한 지 30년이 지난 현재, 이회장은 8개 브랜치에 25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식구를 일궈냈다. 그래도 이회장의 욕심은 끝이 없다. 1억 5천만달러 정도되는 매출을 2억달러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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