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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16회 작성일 1970-01-01 09:00
계동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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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스 명 : 경향신문 등 록 일 : 2001/11/22 등록시간 : 17:12:40 크 기 : 4.4K 모처럼 포근한 겨울햇살이 골목골목을 내리쬐고 있었다. 대구 참기름집, 중앙목욕탕, 믿음미용실을 지나 서울공판장까지 일렬로 늘어선, 남루하지만 소박한 서울 계동 골목. 건축가 김영섭씨와 사진작가 조향순씨 부부가 예쁘게 고쳐 산다는 두 채의 한옥은 이 동네 언저리에 있었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닌 안주인 조향순씨는 전화통화를 할 때와는 달리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다. 그는 '집구경 오는 사람’들에게 지쳐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국내외 건축가들을 비롯해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생은 물론 10대 청소년들까지 선생님을 앞세워 몰려오곤 했던 것이다. “한국사람이 한옥에 사는 게 뭐가 그리 신기한지…”. 푸념을 하면서도 조씨는 건축가인 남편 못지않은 지식과 살림을 사는 주부의 지혜를 바탕으로 구석구석 섬세하게 집구경을 시켜주었다. ‘청송재’라는 이름을 붙인 아래채가 그들 식구의 메인공간이었다. ㅁ자 한옥은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안방과 대청마루, 사랑방과 행랑채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우선 어느 방에서나 보이고 통하게 돼있는 마당은 욕실용 타일로 깔려있던 것을 걷어내고 소담한 정원으로 꾸며놓았다. 방들은 그리 넓지 않았다. 바깥으로 드나들던 화장실을 안으로 들여놓아야 했고, 난방을 위해 이중창과 방충망을 달고 단열을 새로 하느라 집안으로 나무를 덧대야 했기 때문이다. 대신 붙박이장을 설치했다. 벽면과 같은 벽지로 바른 뒤 문고리만 나무로 해서 멋을 냈는데 그덕에 방안을 넓게 쓸 수 있었다. 창호문 위로 길게 낸 띠창을 통해 비쳐드는 햇살도 퍽 운치있었다. “먼동이 틀 때 푸른 햇살이 비쳐들면 잠에서 깨어날 때 아주 기분이 좋아요. 누워 있으면 하늘도 보이고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대청마루의 위치를 바꾸느라 조씨는 남편과 실랑이를 벌였다고 했다. 온기가 없는 대청마루는 비실용적이라고 판단한 아내는 안방과 건넌방을 잇는 마루에 난방을 들여야 한다고 우긴 것이다. 대신 대청마루는 그대로 뜯어내 옆으로 옮겼다. 다실로도 사용하는 대청은 위채로 가는 연결통로이기도 하다. 두집을 차례로 사들이면서 위채와 아래채의 담장을 허물었는데 그 사이에 왕대나무를 심고 작은 와인창고를 박아넣었더니 대청마루와 함께 퍽 여유있고 낭만적인 공간이 되었다.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할 만큼 약간 높은 위치에 자리한 위채는 ‘위계가 있는’ 한옥이었다. ‘능소헌’이라 이름붙인 이 집은 안채가 좀더 높은 위치에 있고 사랑채와 문간이 그 아래에 자리했다. 청송재와 다른 점은 집을 둘러싼 쪽마당을 그대로 두었다는 것. 대신 안마당이 좁아보였지만 앞뒤로 문을 다 열어젖히고 앉으면 바람과 햇살이 드나드는 게 더없이 정취가 있다고 했다. 아래채로 메인공간을 옮긴 뒤로 위채는 주방과 맏딸의 방으로만 쓰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주방이 따로 떨어져 있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재미있고, 밥하러 오르내리다보면 건강에도 좋다”고 답하는 조향순씨다. 서울 방배동 아파트에 살다가 강북의 작은 마을로 이사오게 된 것은 막내딸 때문이었다. 유치원에 다니던 녀석이 ‘우리집’이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그려왔는데 네모진 아파트에 몇동 몇호라고만 써붙인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가회동, 계동 일대를 둘러보다 우연히 들른 곳이 지금의 능소헌이다. 80년이 넘은 낡고 작은 집이었지만 춘양목으로 된 문짝이며 손기와 등이 그대로 남아있고 뼈대 또한 좋아서 김씨 부부는 이 집에서 50년 넘게 살았다는 주인장 할아버지에게 큰절을 넙죽 하고 집을 얻었다. 4년전 아래채까지 사들이게 된 것은 그 자리에 다세대주택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였다. “아랫집까지 내주면 온통 다세대에 둘러싸여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가족회의를 했죠. 그러자 큰아들놈이 장가 가서도 한옥에 들어와 살테니 눈 딱 감고 사자는 거예요. 꼭 그 때문은 아니었지만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작용해서 아래채까지 끌어안게 된 겁니다” 10년전 계동으로 이사올 때 주위에서는 “미쳤느냐”고 혀를 끌끌 찼다. 강남 8학군을 놔두고 강북에, 그것도 한옥이라니. 하지만 이곳으로 이사온 뒤 가장 좋아한 사람은 3남매였다. 경복궁, 비원, 삼청공원, 와룡공원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놀 곳이 지천이고,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사람들은 정스럽고 너그러웠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인성교육에서 효과를 보았다. 쾅쾅 여닫는 아파트의 여닫이문이 아니라 사르륵사르륵 조심스럽게 밀고 닫아야 하는 창호문. 낮은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치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이렇게 충고했다. “겸손해지라고 그러지. 한옥은 원래 그런 집이야”. 10년전 집을 내주던 주인할아버지가 “이 집에서 큰 재목은 못길러냈어도 다복하게는 살았수. 남은 내 복까지 다 가져가시라”고 덕담을 했다더니, 골목길 한옥집에서 하늘 보며 살아가는 다섯식구가 퍽 행복해 보였다. ◇건축메모 대지면적=552.07㎡(167평) 건축면적=264.46㎡(80평) 연 면 적=304.13㎡(92평) 규모=지하1층, 지상1층 구조=목구조 외부마감=드라이비트+회벽 설계=(주)건축문화 김영섭, (02)574-3842 /김윤덕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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