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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63회 작성일 1970-01-01 09:00
문화일보에 중앙교우가 흐르는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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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초대석>3년간 300회 시위 `괴짜` 홍정식 활빈단장 박상주 기자/sjpark@munhwa.co.kr 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와 같은 핏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좀 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구한말 경술국치 당시 순국자결한 벽초의 부친 홍범식(당시 금산군수)의 기개를 이어받은 탓일까. 걸출한 이들 두 풍산 홍씨와 가까운 집안으로, 우리시대 최고의 기인이자 뉴스메이커로 꼽히는 활빈단 단장 홍정식(50)씨. 일본교과서 왜곡에 항의해 일왕 앞으로 식칼을 보내는가 하면, 옷로비 사건 국정감사장에 뛰어들어가 당시 관련 고관부인들에게 “서민들의 검약을 배우고 마음의 때를 벗기라”며 몸빼바지와 때밀이 타올을 던진 인물. 지금까지 300여회에 이르는 각종 ‘기상천외’한 시위와 이벤트로 세상의 주목을 받은 그는 문화일보를 찾은 2일에도 예외없이 ‘한건’을 올리고 오는 길이었다. 청남대로 하계휴가를 떠나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대통령이 지나는 길목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국민을 하늘같이 모실 바른 인재를 등용하십시오’라는 플래카드를 목에 걸고 오전 내내 1인시위를 벌였다는 것이다. 홍씨는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기전 안주머니에서 주섬주섬 4개의 플래카드를 꺼내놓았다. 일본 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는 구호에서부터 바른 정치를 촉구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라도 필요할 경우 적절한 플래카드를 꺼내 1인시위를 벌일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니는 것이다. 3시간 내내 힘없는 자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를 쉼없이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불같은 열정’ 그 자체였다. 홍씨는 원칙없이 뒤죽박죽인 우리사회가 자신을 아스팔트 위로 끌어냈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 이시대의 기인이라고 부른다던데. “스스로 ‘의식있는 돈키호테’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으려는 나의 행동이 때론 이상하게 비칠 수도 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우리사회에서 취할 수 있는 불가피한 방법론으로 이해해 달라.” ―활빈단은 언제 결성됐으며 무슨 뜻인가. “지난 98년 4월 결성됐으며 빈자에 활력을 주는 단체라는 뜻이다. 물론 홍길동의 활빈당처럼 악한 무리들에게 활을 쏘는 단체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이제까지 경력을 간단히 말해달라. “김포세관과 인천세관 등지에서 세무 공무원을 한 것이 가장 큰 이력이다. 이밖에도 김밥장사, 호텔 웨이터, 신문배달, 밤무대 가수 등 안해본 게 거의 없다.” ―왜 공직을 떠났나. “지난 99년 3월 서울세관 파주감시소장으로 근무할 당시 윤관 대법원장과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때밀이 타월 3000장을 보낸 사건이후 공직을 떠났다. 비리 판·검사에 나눠줘 건국이래 법조계의 묶은 때를 벗기라는 취지였는데 이로 인해 상사들의 분위기가 험악해져 버티기 어려웠다.” ―요즘 벌이는 주요 활동들을 얘기해 달라.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활동은 ‘사랑의 릴레이 편지 운동’이다. 처음 한 사람이 사랑의 종자돈을 넣어 다음 사람에게 계속 전하다가 열번째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담아 불우이웃돕기 등 의로운 일에 쓰도록 하는 방법이다. 어디에 쓰든 열번째 사람이 양심껏 판단하면 된다. 두번째는 ‘이름대로 살기 운동’이다. 예컨대 김덕룡·홍사덕 의원등 ‘덕(德)’자 돌림 의원들에게 ‘덕정회’를 구성해 덕있는 정치를 하라고 권하고, 이인제·강인섭 의원등 ‘인(仁)’자 돌림 의원들에게는 ‘인정회’를 구성해 인정스런 정치를 펴라고 권하고 있다.” ―활동하는데 원칙이 있다면. “활빈단의 활동은 ‘히트 앤드 런(Hit & Run)’ 과 ‘삼한사온’이라는 두가지 전법을 기본으로 이루어진다. 전자는 활빈단에서 문제를 제기하되 해결은 정부나 사회에 맡긴다는 것이다. 후자는 3일 동안은 부패추방 등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에 주력하고 4일간은 이웃돕기 등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는 뜻이다.” ―돈도 많이 들텐데. “24년동안 세무공무원을 한 덕에 퇴직금 5000여만원을 받았다. 월 100만원 정도의 연금도 나온다. 최근엔 생명보험 3개를 해약한 돈으로 활동비를 충당했다. 이곳저곳에서 이따금 생기는 강연료나 출연료도 보탬이 된다. 지금 통장에 8만원 정도밖에 없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이래봬도 나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밤무대에서 ‘뽕짝’도 부르고, 옛날 경험을 살려 호텔 웨이터 노릇도 가끔 한다.” ―부인이 바가지를 많이 긁을텐데. “결혼 초에는 천사같던 마누라가 요즘은 소크라테스의 악처인 크산티페처럼 변해 가는 것 같다. 집팔아 활동비로 쓸까봐 집문서만큼은 내주지 않는다. 그래도 속마음은 신랑이 하는 일을 믿고 따른다. ” ―노숙자들에게 인기가 높다던데. “한때 서울역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몸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노숙자들에게 한끼 3만~4만원씩하는 고급 식사도 가끔 대접한다. 노숙자들을 깨끗하게 씻기고 입혀서 고관대작들이나 기업체 사장님네 집안의 결혼식 혹은 상가를 방문, 예를 깍듯하게 갖춘뒤 포식을 하고 나온다. 물론 활빈단의 홍정식이라고 당당하게 이름 밝히고 축전·조전도 띄운다.” ―앞으로의 구상은. “빈곤퇴치 연구로 지난 98년 아시아에서 첫번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된 인도의 아마르티아 센 등 세계적 인물들과 국제적 활빈운동연합을 결성하고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궁극적으로는 활빈단과 같은 단체가 없어도 더불어 살수 있는 세상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 갈수록 어지러운 우리사회가 정상을 되찾는다면 나도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갈 것이다.” /박상주 기자 sjpark@munhwa.co.kr 200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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