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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경제 김용기 논설위원 칼럼]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생긴 법이다.
이 법은 생기기도 전부터 지레 겁을 집어먹은 반론을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못 산다는 식이었다. 청탁성 선물이나 향응을 위한 식사대접이 금지되면, 농수산업이나 요식업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그런데 이런 목적의 거래가 많다보면 이 물건들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나한테 꼭 필요한 물건인데, 청탁용으로 다 팔려나가 정작 필요한 나는 구할 수도 없거나 감당하기 힘든 비싼 가격을 내야 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발생한다. 특히 문화재단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다.
서울의 문화재단들은 상당수가 지방자치단체의 산하기관으로 설립됐다. 이런 곳은 지역 사회의 문화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 공연을 준비한다. 단지 표를 많이 팔아 입장수익만을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익성도 살펴가며 공연을 준비한다.
과거의 경우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문화재단에는 불청객들이 찾아들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문화재단에 공짜표를 달라는 요구가 쇄도했던 것이다.
“공짜표는 안주면 그만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형편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표를 요구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문화재단과 관련해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문화재단 입장에서는 “정당한 가격을 내고 오시오”라고 일축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초대권은 줄 수도 있지만 이 사람들이 달라는 건 전부 좌석권이었다. 한두 장을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전체 객석이 500~600 석인데 어떤 '슈퍼 갑'은 70~80장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슈퍼 갑'의 대형 요구를 들어주고 나면 다른 '갑' 들의 요구 또한 거부하기 힘들어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무리에 무리를 거듭해서라도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나면, 이 공연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갈 표가 사라졌다. 진정한 문화의 수혜자가 돼야 할 국민들의 좌석은 사라졌던 것이다.
더욱 한심한 일은 공연 당일에 벌어지기도 한다. 오고 싶은 사람들은 오지도 못한 공연인데, 공짜표로 나간 자리는 절반이 비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청탁사회가 빚어내는 경제활동은 이렇게 절반 이상이 타당한 경제적 기반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문화재단의 공연사업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청탁 선물과 향응 식사는 해당 물품의 가격을 올렸지만, 청탁 공연표의 남발은 정말 문화가 꼭 필요한 사람들의 관람기회를 박탈했고, 문화재단의 공연사업에 재정적 고난을 가중시켰다.
게다가 공연 당일 절반이 비어버린 객석은 무대 위 예술인들의 맥까지 빠지게 만들었다.
문화 분야도 김영란법 때문에 일시적인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법으로 인해서 팔리지 않는 표는 원래부터 문화적 기반과는 무관한 허구로 간주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떻든 청탁이나 선심성 표가 근절된 것은 문화재단과 같은 공연주최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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