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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27회 작성일 2015-01-0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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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올해는 모두 '죽어라 하고' 훈련합시다

[중앙일보] 입력 2015.01.09 00:05 / 수정 2015.01.09 00:21
 
박희경
KAIST 교수·재난학연구소장
 
재난은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발본색원 또는 근절할 수 없는 것이 재난이다. 따라서 정책이며 기술들도 발생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다. 그런데 일단 재난이 발생하면 그동안 불철주야 노력한 것은 물거품이 되고 정부 당국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지금 국내엔 노후화된 기반 시설물들이 산재해 있다. 배정된 예산으로 모두를 철저히 관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사고가 나면 관련 부서는 질책받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가 모든 재난을 막아줘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9일 해양안전심판원의 세월호 특별조사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는 ▶청해진해운이 세월호를 증축·개조하면서 복원성이 현저히 약화됐고 ▶선박 검사기관의 승인 조건보다 화물을 과적했고 ▶선박 평형수는 적게 실어 복원력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침몰 원인을 분석했다. 조타·운항을 잘못하고 승객 대피 조치를 하지 않은 선원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선박회사, 선원들 그리고 여러 정부 기관들의 잘못이 합쳐져 큰 재난이 되었다는 결론이다.

 축구 경기에서 골은 모두 골키퍼가 먹는다. 그렇다고 모두 그의 책임인가? 앞에서 막아주지 못한 다른 10명의 선수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래서 감독은 골키퍼만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전술을 짜서 모든 선수를 ‘죽어라 하고’ 훈련시킨다. 어떤 상황에도 조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기적인 팀을 만들기 위해서다. 감독의 노력만으로 유기적인 팀이 탄생할 수 없듯이, 방재안전을 위한 유기적인 시스템도 정부·민간과 개인들이 서로 협력하고 노력할 때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시스템이 설계한 대로 작동하려면 훈련이 중요하다. 전술과 기술은 몸으로 익혀야지 머리로 익혀서는 경기에 바로 쓰지 못한다. 근육이 기억하고 있어야 필요한 순간에 동작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땡볕, 혹한에 관계없이 매일 훈련을 한다. 재난 상황에서는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근육이 기억하고 있어야 가능한 것들이 많다. 해양안전심판원 보고서는 훈련이 없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훈련 및 대비를 시키지 않은 것은 감독인 정부의 책임이 분명하다.

 21세기 대형 재난 관리를 위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구 보고서에서 지적했듯이 지구 환경의 변화,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경제사회 활동의 도시 집중 등으로 인해 사회는 ‘알지 못하는 또한 알 수 없는 위험’에 빠져가고 있다. 최근 소니와 한국수력원자력에 가해진 사이버 공격은 과학기술 발전이 초래할 수 있는 미래 재난의 한 단면을 상상케 해준다. 모두가 서로 이어지는 초(超)연결 사회에서 재난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피해는 증폭·확산된다. 전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재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재난 관리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새 패러다임은 공공과 민간 부문 간, 정부 부처들 간, 나아가 정부와 개인 간 재난 관리의 책임공유와 상호협력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가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하지만 민간부문과 개인이 참여하여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협력하는 유기적인 시스템 구성을 목표로 한다. 정부, 민간 및 개인 간의 파트너십이 우선 구축되어야 한다.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정보교환, 공론화 및 정책제도적 기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방재안전을 위한 경고나 안내문들을 벽에 붙여놓고 보고만 지내왔다. ‘방학 때 계획표를 벽에 붙여놓고 나서야 밖에 나가 마음 편히 놀 수 있었던, 그리고 결국 며칠 밤 새우기로 숙제를 했던’ 그런 경험에 익숙한 우리는 안내문들을 붙여만 놓고 따르지 않았었다. 유기적으로 협력한다는 것은 정부가 안전을 위해 안내하는 대로 따르는 습관을 ‘죽어라 하고’ 반복 훈련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단순하지만 안전 문화를 정착시키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하인리히의 1:29:300 법칙은 한 번의 대형 사고나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관련한 작은 사고와 징후가 300번이나 있다는 이론이다. 우리가 ‘죽어라 하고’ 따르는 훈련을 하면 300번의 징후와 경미한 사고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고 막을 수 있다. 사소한 징후와 사고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한 번의 큰 재난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에 밴 행동 습관은 혹시 있을지 모를 재난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줄 중요한 방편이 될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인 유기적 관리체계의 기본이다.

 올해는 을미년, 푸른 양의 해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희생물로 바쳐지던 양은 양순하고 평화로운 동물이다. 양치기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며, 갔던 길로만 되돌아온다. ‘죽어라 하고’ 따르는 안전 훈련을 시작하기에 이만한 해가 없을 것 같다. 정부는 국가안전처를 발족했다. 안전 관련 조직을 정비하고 안전시설에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개개인들이 훈련을 통해 안전을 체화하는 작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할 것이다.

박희경 KAIST 교수·재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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