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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66회 작성일 2012-09-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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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12.09.13 00:04 / 수정 2012.09.13 00:08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흔히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고 한다. 국익을 위해서는 악마와의 동맹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냉정한 국제정치 현실이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침공을 받은 처칠의 절규가 이를 생생히 말해주고 있다. ‘잔인무도한 독재자 스탈린’과의 동맹을 비난하는 영국 의회에 그가 응수했다. ‘히틀러가 지옥을 침공한다면 악마와도 기꺼이 동맹을 맺을 것’이라고.0

 교과서에만 등장하는 얘기가 아니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동북아의 국제정치 현실이기도 하다. 한·일 관계가 언제 동지적 관계에서 적대적 관계로 뒤바뀔지 모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적대감을 넘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에 자신감을 보여온 우리 정부다. 중국의 부상과 북·중 동맹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과 군사정보 협력을 비밀리에 밀어붙이려던 우리 정부다. 더욱이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과 사실상의 ‘버추얼 동맹’을 형성해온 우리 정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의 이런 대일 정책이 와해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를 너무 나이브하게 인식해온 정책의 업보인지도 모른다. 국민의 정부 이후 우리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과거를 넘어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외쳐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 방송에 나가 세계에서 제일 좋아하는 나라가 일본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군사 협력을 추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독도 문제의 이슈화, 그리고 위안부 강제동원의 부정이었다. 이 때문에 작금의 충돌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양국의 충돌 여파가 어디까지 날아갈지 예측 불허다.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기본 틀은 어디까지나 ‘현상의 유지(status quo)’에 있다. 한·일 관계에서 볼 때 그것은 독도에 대한 우리의 실효적 지배,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 그리고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유지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이를 부정하면서 현상을 타파하려는 체계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동지와 적의 게임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움직임이다.
 
 어느 평자는 지금 한·일 관계를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에 비유했다. 그것도 각자의 신호에만 의지한 채 달리고 있는 열차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통정리 없이는 정말 정면 충돌을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미국이 교통정리를 해왔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입장이 어정쩡하다. 한국은 물론 일본과 각각 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일 간의 정면 충돌은 중국의 부상과 북핵문제에 대처하려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엄청난 긴장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뉼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중요한 가치가 있는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은 분명 미국에 불편한 일’이라고 말하고 나섰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일본의 방침에 미국이 찬동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미국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가져온 1905년 태프트-가쓰라 밀약의 망령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역할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 미국이 한·미·일 공조체제를 유지하려면 한·일 양국의 열차가 정면 충돌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신호를 동원해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APEC회의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교통정리에 나선 모양이다. “‘영토 문제에 대한’ 온도를 낮추”라는 그녀의 ‘훈수’가 한·일 관계를 일단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보도다.

 그러나 미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일본이 역사 문제를 극복하여 우리의 진정한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경제·안보 협력만으로는 버추얼 동맹에 의한 한·미·일 공조체제를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키신저가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말했다. 중국의 시각은 ‘보편적’인 데 반해 일본의 시각은 ‘편협’하다고. 이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일본을 대할 때 우리가 유념해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일본이 신뢰의 길을 찾을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진다. 일본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접는 편이 낫다. 대신 우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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