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0년 동안 무엇을 했나, <font color=blue>이승철(66회)</font> <경향신문>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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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29회 작성일 2011-07-20 17:03
북한은 20년 동안 무엇을 했나, <font color=blue>이승철(66회)</font>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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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북한은 20년 동안 무엇을 했나

이승철|논설위원  
1991년 중국의 훈춘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훈춘은 중국 사람들에게조차 ‘망각의 지역’이었다. 1990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두만강을 따라 왕복 2차선 포장도로가 건설돼 비로소 높은 밀강령(密江嶺)의 꾸불꾸불 산길을 다니지 않고 바깥세계와 오갈 수 있었으나 훈춘은 여전히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얼마 전 20년 만에 다시 찾은 훈춘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조선족 자치주 수도인 옌지과 훈춘 사이에는 4차선 도로가 휑하게 뚫려 있었다. 널찍한 시가지와 즐비한 고층 건물들은 20년 전의 훈춘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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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군인들의 엄격한 검문 때문에 방문에 실패했던 훈춘의 동쪽 끝인 방천도 마찬가지였다. 1993년 건설된 방천의 망해각(望海閣)에서 두만강과 북한의 두만강시(옛 용현), 러시아의 핫산, 그리고 두 도시를 잇는 조·러철교를 바라보았다. 20년 전 조·러철교의 사진을 찍다가 러시아 국경수비대원에게 잡혀 3시간여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났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두만강시는 그때보다 더 퇴락했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북한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20년이라는 시간의 의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투먼도 예외는 아니었다. 투먼 세관 주위에는 많은 건물이 들어서 과거 세관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특히 세관 옆의 두만강변 공원은 세계 어느 나라 공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수많은 중국인이 주말을 맞아 가족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강변에는 화려한 색상의 유람선 선착장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북한 사람도 중국 쪽 모습을 보고 있으리라. 일행 중 한 명이 강 건너 북한 사람들을 의식해 “누구 약 올릴 일 있나”라고 한마디 했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투먼과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북한 남양은 20년 전과 똑같이 칙칙한 느낌을 주었다. 활기없던 회색빛 두 도시가 이제 완전히 색깔이 다른 도시가 되어 있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20년 전 중국 쪽 두만강변 취재를 마치고 창춘에서 하얼빈으로 가는 특급열차 속에서 북한 유학생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그는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의 근원을 일제강점기 일본의 산업정책과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찾았다. 일본이 남한은 경공업, 북한은 중공업으로 분업화시킨 데 이어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인해 북한이 경제적 곤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장시간 강변했다. 나중엔 말꼬리를 흐렸지만.

북한 지도부는 이 유학생의 논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이명박 정권의 대북 압박정책을 경제적 어려움의 원흉으로 지적한다. 적어도 20년 만에 북·중 국경 취재에 나선 기자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다. 북한 지도부가 두만강과 압록강변의 깎아지른 듯한 산비탈의 다락밭에 매달려 일하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지 어떻게 다른 곳으로 화살을 돌릴 수 있단 말인가.

북한은 요즘 들어 중국과 맺은 압록강 황금평과 라선 특구 개발사업에 상당한 기대를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들 사업이 북한 경제에 획을 그을 정도로 엄청난 효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중국의 관심은 오랜 숙원인 동해로의 통로 확보에 쏠려 있다. 동북지방의 산업화로 생산되는 공산물과 농산물을 라선을 통해 중국 남부와 해외로 수송하는 것이 중국의 절박한 경협 목적이라는 뜻이다. 북한은 라선 지역을 임가공무역과 무역지대로 개발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낙후된 동북지방 개발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중국이 도로·항만과 창고 건설 외에 얼마만큼 라선 개발에 힘을 쏟을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라선 개발은 전망이 나은 편이다. 황금평은 전망이 더욱 불투명하다. 북·중이 기공식을 가진 지 달포가 지났지만 황금평에서 개발의 기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철조망 너머로 농민들이 한가롭게 농사짓는 모습만 눈에 띌 뿐이었다. 황금평과 불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어마어마한 넓이의 단둥 임항산업단지는 사실상 나대지 상태였다. 자국 중심주의에 젖어 있는 중국이 어느 쪽에 역점을 둘지는 묻지 않아도 뻔하다. 현지의 일반적 여론도 그랬다.

지난 20년간 허송세월을 한 북한이 핑계로 현실을 더 이상 감추기는 힘들다. 지도부의 의식전환이 멈춰 버린 북한의 시계를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아닐까 싶다. 20년 시간여행 끝에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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