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봄을 재촉하듯이 가랑비 내리던 2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어제 오전에,
前 동기회장 류인모 인천대 법대학장의 아버님이자 대한민국 학술원
정회원이면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을 역임하셨던 류승국 박사님께서
오랜 투병 끝에 작고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고인은 대한민국 유학의 총본산인 성균관에서 후학을 양성하시며
유교로 대표되는 동양철학은 물론이고, 성경과 불경, 도덕경, 코란경등
세계 유수의 종교 경전 및 사상을 학문적으로 통달하신 후, 종교간의
소통을 통한 사해동포주의를 강조하신 당대의 석학이셨습니다.
더우기 한국 고대사에서 신화로 남아있던, 아니 한민족사 시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고조선 역사에 대해서도 나름 구축해오신 갑골학과 금석학을 통해
그 실체를 밝히셨습니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 고조선 역사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해진 것도 님께서 기틀을 닦아놓으신 업적과 그 바탕 위에서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학생들에게 국사를 가르치지 않는 작금의 현실에서 위처럼 고조선 역사를
근거 중심의 자료를 통해 실증해보이신 고인의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님께서 일평생 동양철학사에 남기신 족적 역시 방대하기 이를 데
없어 이 지면을 다 채워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달리 말해서, 北에 황장엽 박사가
있었다면 그에 비견되어 南에 류승국 박사가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인은 일생동안 수많은 연구 및 고찰을 통해 한민족의 역사적 기원과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을 확립시키는데 탁월하고 지대한 공헌을 하셨습니다.
또한 故 류 박사님은 영식인 류인모 동기에겐 자상한 아버지이기 앞서서 영원한
스승이었습니다. 작년 연말 동기 송년회가 열리기 직전에 모교의 강의실에서
69동기들을 상대로 '태극기의 원리와 민족의 이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 성치
않으신 몸으로 장장 두 시간 동안이나 사자후 하시듯 열변을 토해내셨습니다.
강의 중에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전세계 나라 국기(國旗)들 대부분이 해와 별
그리고 동식물 등의 물형(物形)을 그려낸 데 반해서, 태극기는 물형이 아닌 음양의
원리를 통해 불멸의 진리를 나타내는 태극과 함께 건 곤 감 리의 4괘인 사상(四象)을
동시에 나타낸다는 점을 강조하신 부분입니다. 고인은 이토록 우리 태극기에 함축된
의미를 통해서 한민족 속에 면면히 흐르는 고유한 민족정신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태극기에 담긴 원리도 모른 채 월드컵경기때마다 태극기를 들고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목이 터져라 외쳐댄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외 기억에 남는 것은, 공맹(孔孟)이 닦은 유학사상의 모델(원조)이자 성군으로
불리는 중국의 요순 임금이 바로 漢族이 아닌 동이족(韓族)이라고 힘주어 강조하신
대목이었습니다. 즉, 고고학적인 자료와 문헌에 근거하여 중국 고대사의 요순사회는
동이(동방)민족에 속했다는 겁니다. 갑골문자로 새겨진 유물들을 분석해본 결과, 순(舜)
임금은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동아 문명의 개창자로서 동이족임이 증명되었고, 더 나아가
중국의 유학은 역사적으로 한민족의 원류인 동이(東夷)와의 관계에서 형성되었음을
주장하셨습니다. 공자가 무궁화 피는 조선을 '君子의 나라'로 칭한 것도 이런 연유이겠지요.
그날의 강의에 이어서 성탄연휴때도 두번째 강의가 있었으나 개인적 사정으로 수강하지
못했기에, 님의 일평생 연구를 집대성한 역작인 '한국사상의 연원과 역사적 전망'이란
책을 연말에 구입해 일독하면서 고인의 체취와 숨결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무에게도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 중국땅의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석 앞에서
확대경을 든 채 고구려史가 압축된 비문을 면밀히 탐색하시는 사진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 2월 중순이었던 보름전, 류 박사님 거처인 이천 호법면의 단천정사 연경당에
왕진차 갔을 때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몸인데도 불구하고 유려한 필체로
자신의 여러 증세를 또박또박 적어서 저에게 보여주신 것에 감탄과 놀람을 금치
못했습니다. 연하(삼킴)곤란이 있으셔서 곡기를 끊다시피 하신 님께서 "박 선생!
나 여기 물좋은 이천 땅에서 나는 생수만 제대로 마셔도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맑은 정신으로 또렷하게 말씀하시던 그 육성이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운명하신 날이었던 어제, 류 박사님 영전에 엎드려 재배를 올리면서 저로선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불치의 병은 더이상 없다'고 할 정도로 현대의학이 날로
발전하고 있는 이 시대에,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적절한 치료와 처치도 못해드리고
영영 떠나 보내드린 점에 대해 의사로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故 도원(道原) 류승국(柳承國) 박사님!
부디, 님의 저서 서문에 친필로 쓰신 휘호인
以道輿治 永樂四海(이도여치 영락사해)처럼,
道로써 다스려지는 저 영원한 세상에서 평안함과 낙을 누리시고 영면하소서.
단기 4344년 2월 마지막 날 아침
중앙고 69회 동기회장 박영환(朴永桓) 호곡(號哭)
댓글목록
소상하게 언급하셨습니다. 경향 각지의 선각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민족의 사학의 임을
강조하셨고 또한 그 학교를 졸업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유승국1923. 2. 17 충북 청주~.2011.2.28
교육자.
1952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1954년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5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과를 이수했으며, 1975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55~88년 성균관대학교 문리대학 교수, 1971~73년 동 대학 유학대학장, 1972년 한국철학회장, 1974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장·도서관장, 1977년 성균관학술연구원장을 역임했고,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철학연구실장, 1980~83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 1983~86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1987~90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1988년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장 등을 지냈다. 1992년 현재 학술원 회원, 동방문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종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 〈동양철학논고〉·〈한국의 유교〉·〈한국의 종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