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하나뿐인 병원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작성자 (中)
댓글 0건 조회 205회 작성일 2009-06-24 10:11
지구에서 하나뿐인 병원

본문

《지구에서 하나뿐인 병원》
좋아하는 영화배우 가운데 빌 머레이(William
James Murray)란 사람이 있다. <사랑의 블랙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등의 작품에서 그만의 독
특한 캐릭터를 구축한 남자 배우다. 그는 지난
2005년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브로큰 플라워>에
도 출연했다. 거기서 빌은 중년의 공허함을 느끼
는 남자 돈 존스턴 역을 맡아 열연했다.
돈은 컴퓨터 사업으로 큰돈을 벌지만 은퇴 후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다. 독신을 고집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전혀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견디지 못한다. 애인 쉐리마저 그의 곁
을 떠난다. 이별의 날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든다. 익명의 옛 애인에게서 온
편지에는 19년 전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집을 떠났다
고 쓰여 있었다. 돈은 옛 기억을 더듬어 헤어진 연인들을 찾아 나서는데….
여기서 빌 머레이는 독특한 무표정 연기를 선보인다. 그의 이런 표정은 상
황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한다. 심각한 상황은 더 심각하게, 코믹한 상황은 더
코믹하게 그려주는 것이다. 여기에 음악까지 절묘하게 녹아든다. 중독성 있
는 특이한 리듬이 빌 머레이의 연기와 어우러져 관객들의 뇌리 속을 파고든
다. 영화 속에서 돈의 옆집 친구 윈스턴은 이렇게 말한다.
“이봐, 내가 구워준 끝내주는 그 CD 어디 있어? 여기 있구먼. 에티오피아
음악은 말이야 심장에 정말 죽인다고!”
에티오피아와의 인연
사실 이 영화, 아니 이 영화에 삽입된 음악만 아니었다면 에티오피아에 전
혀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아프리카 대륙의 어디쯤 있을 나라, 기아와
내전으로 허덕이는 나라쯤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음악을 계기
로 그 나라 상황과,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불
행의 땅, 저주의 땅이라고만 알려진 에티오피아에서 어떻게 이런 강렬한 음
악이 나올 수 있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다.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한다. 아주 작은 것에
서 시작한 관심이 더 크고 더 깊게 이어진다.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에 나오는 오스트레
일리아인 레그와 캐서린 부부도 마찬가지. 에티
오피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편하
게, 남들처럼 사는 삶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봉사 가능한 일자리를 찾고 있었고, 그때 한 의
학 잡지에 에티오피아 병원에서 의사를 찾는다
는 광고를 보게 됐다.
레그는 에티오피아에서 일하는 한 선교사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알아왔다.
그녀는 에티오피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했는데 그녀가 이야기를 할
수록 레그는 더 낙담했다. 그녀에 따르면 에티오피아는 무시무시한 나라였
다. 아이들 눈에는 파리가 붙어 있고 마흔 넘게 사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황
제는 늙고 망령이 들었다. 그녀의 아들이 그곳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비행기
에 오를 때마다 그녀는 아들에게 고통을 잊으라며 위스키를 주어야 했다. 레
그는 전화를 끊고 풀이 죽었지만, 나(캐서린)는 그녀가 좀 노망이 든 노인 같
으니 개의치 말라고 말했다.
레그는 걱정이 돼 혼자 시골로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 술집에 차를 세워놓
고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다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얼마 전 에티오피아에서
돌아온 사람이었다. 참 맘에 드는 곳이니 걱정 말고 가라는 말에 용기를 얻
은 레그는 그 길로 에티오피아에 가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이 책은 레그와 캐서린 부부가 에티오피아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살아온 삶
을 기록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들은 당초 3년 계약을 하고 에티오피아 땅을
밟았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레그는 거기서 뼈를 묻었고 캐서린은 51년째 의
료봉사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1959년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레그와 캐서린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한다. 많은 여성들이 ‘누’란 질환으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
었던 것. 선진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누는 에티오피아의 조혼 풍속과 출
산 후 관리 소홀로 발생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소녀들은 보통 8살에
약혼하고 12살에 시집으로 들어간다.
신랑은 결혼식 날 처음으로 만난다. 신
부는 음악과 잔치로 시끄러운 결혼식에
당황한 채 앉아 있다가 신랑과 그의 부
모 손에 끌려가다시피 해 따라간다.
신랑은 신부가 충분한 나이가 될 때
까지 잠자리를 갖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그들은 성관계를 갖기에 정서적으로나 육체
적으로 충분히 성숙되어 있지 않다. 이는 거의 부모들에 의해 묵인되는 강간
이다.


이들은 열너댓 살의 나이에 첫 아이를 임신한다. 대부분의 10대 초반 소녀
들은 아이를 분만하기에 성숙되지 못했다. 이런 소녀들은 대체로 난산을 겪
는다. 며칠째 오두막 바닥에 웅크리고 앉거나 얇게 짚을 깐 바닥에 누워 아
기가 나오게 하려고 힘을 준다. 5분마다 자궁수축으로 가해지는 압력을 태아
는 이틀 이상 견디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태반이 떨어지고 그러면 태아에
게 혈액 공급이 차단돼 태아는 죽게 된다. 태아가 죽고 나면 태아의 체액이
흡수되는 침용 과정이 일어나 두개골이 작아지면서 함몰된다. 그러면 산모는
사산아를 적출하게 된다.


그쯤 되면 임산부는 닷새에서 엿새 동안 산통을 겪지만 산모의 불행은 이
제 시작에 불과하다. 태아의 압력이 산모의 방광으로 가는 혈액 공급을 차단
해 섬유조직이 죽는다. 불쌍한 산모는 방광과 질 사이에 구멍이 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직장에 구멍이 생긴다. 그러면 방광과 직장의 내용물이 질을
통해 계속 새어나오게 된다. 몸에 냄새가 나기 때문에 그녀는 대체로 남편한
테 버림받고 마을사람들한테 따돌림을 당한다. 그녀는 외롭고 수치스러운 삶
을 선고받는다.
“당신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
레그와 캐서린은 온 정성을 다해 누 환자들을 돌봤다. 누 환자가 외래병동
에 나타나면 다른 환자들은 그들을 줄 바깥으로 밀어냈다. 그들에게서 너무
지독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레그는 그들에게 다가가 팔로 안아주
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오늘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입니다. 당신부터 먼저 진료해드리
겠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물론 영국에 있을 때에도 누 환자를 본적이 없었기 때문
에 레그와 캐서린은 처음에는 어떻게 할 지 몰랐다. 밤을 지새며 관련 논문
과 자료를 찾아 읽고 공부한 덕분에 마침내 수술에 성공하게 되고 그 소식
은 금방 에티오피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우리가 성공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누로 고통
받고 있는 더 많은 에디오피아 여성들이 찾아오
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디스아바바까지 200~300킬
로미터를 걸어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역겨운 냄새
가 진동했고 넝마를 걸친 헐벗은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한 어린 여자는 어머니와 함께 15일을 걸
어와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돈도 없고 머
물 곳도 없었다. 우리는 입원비를 면제해주고 그
녀의 어머니를 침대 곁에 머물도록 했다.


또 다른 젊은 여성은 450킬로미터를 걸어서 도
착했다. 그녀 또한 누더기를 걸치고 입원비도 갖
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수술이 어려운 환자였는
데 방광에 큰 구멍이 두 개나 나 있었고, 그로 인해 방광의 일부가 탈수되어
구부리고 앉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했다. 그녀는 이렇게 10년 동안 견뎌온 상
태였다. 레그가 그녀를 수술하고 2주 정도 지나자 오줌을 흘리지 않게 되었
다. 이전의 그녀는 절망적이었고 비참했지만 이제는 눈에 기쁨의 표정이 넘
치는 아름다운 미소가 가득한 여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이 끝없이 닥쳐왔다. 가장 큰 문제는 혈액부족.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혈액이 필요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혈액을 구
할 수 없었다. 자신의 피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그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술을 앞둔 한 여자는 희귀 혈액형이었다. 그녀의 남편에게 수혈을 위해
혈액형이 동일한지 피검사를 해보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럼 당신의 아내는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내 피를 주느니 마누라가 죽는 게 나아요.”
“만약 당신이 아프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신의 아내가 당신한테 피를 주지
않을까요?”
“어림없어요. 내가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재빨리 딴 사람하고 결혼할 겁니다.”


레그와 캐서린은 혈액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이한 방식을 개발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의학교과서에도 없는 방법이었다. 태아가 자궁 밖의 나팔
관에서 자라는 자궁 외 임신을 하면 환자는 복강 속으로 많은 피를 빠른 시
간 내에 흘려보낼 수 있다. 이 따뜻하고 신선한 피를 레그는 시장에서 사온
스프용 국자로 퍼냈다. 그리고 깔때기에 거즈를 대고 그 피를 걸러서 환자의
팔에 다시 주입했다. 자신의 피를 본인에게 주입하면 거부 반응을 일으킬 위
험도 피할 수 있어 그들은 이 방법으로 많은 여성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가끔 수술을 하고 있는데 정전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병원에는 발전기가
없었다. 낮에 정전이 일어나면 수술대를 창가로 끌고 가서 수술을 마쳐야 했
다. 밤에는 정말 곤란했다. 배터리로 켜지는 비상등이 있었지만 배터리가 방
전될 때가 종종 있어서 적잖은 횃불을 켜고 마무리하기도 했다.


영국보다 문명화된 나라 에티오피아
1972년 에티오피아 북동부에 심각한 가뭄이 발생했다. 이듬해 초 그 지역
농민들이 굶어죽었다. 산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아디스아바바 외곽까지
몰려들었다. 경찰은 이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다.
상황은 더욱 악화돼 그해 8월 무렵, 사람들은 거리에서 죽어갔고, 미처 화
장하지 못한 시체들은 쌓여만 갔다. 대규모로 콜레라가 창궐했고, 이러한 소
식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마침내 1974년 2월, 반란이 일어났다. 이는 전면적인 소요사태로 번졌고 그
틈을 타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군인들이 황궁으로 밀고 들어와 왕을 폐위
시켰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군부 내 권력싸움과 특정 지역의 독립 요
구로 내전에 휘말렸다. 병원으로 총탄이 날아들었고, 수시로 폭탄이 터졌다.
그러면서 경제사정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석유는 배급제였고 도시 밖으로
나가거나 일요일에 차를 몰려면 여전히 허가를 받아야 했다. 어딜 가나 빵
사는 줄이 길게 늘어섰고 식료품 가게는 대부분 텅 비어있었다. 언론은 철저
히 통제됐다.
하지만 레그와 캐서린은 에티오피아를 떠나지 않고 병원을 묵묵히 지켰다.

결국 내전은 종식되고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맞았다. 여전히 누 환자는 넘쳐
났고, 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런 가운데서도 레그는 영국, 미국, 오
스트레일리아 등지를 다니며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1991년 8월, 레그의 오른쪽 장딴지에
혈종 같은 덩어리가 발견되었다. 그것
은 악성으로 판명되었고, 2년 후 그는 숨을 거두었다. 레그가 벌여놓은 일은
고스란히 캐서린에게 떨어졌고, 그녀는 그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도 없이 병
원일 속으로 빠져들었다.


레그와 캐서린은 에티오피아를 정말 사랑했다. 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있는
영국에서도 에티오피아가 그리워 며칠 머물지 못할 정도로 그들은 뼈 속 깊
이 에티오피아 사람이었다. 캐서린은 이렇게 말한다.
영국 사람들은 자신들을 문명화된 사회로 간주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여러
면에서 에티오피아가 훨씬 더 문명화된 사회였다. 영국에는 발달된 산업과
체계적인 교육 여건이 있지만 인간적 나눔과 배려가 없었다. 철학이 발달하
고 학문과 사회는 문명화되어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미발달 사회에 대한 관
용이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미개발 사회는 더불어 살아야 할 공존의 파트너
가 아닌 정복의 대상이었다. 반면 에티오피아는 좀 더 느리고 여유롭게 인간
의 본성을 가르쳐주는 곳이었다. 물질이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심오한
진리를 에티오피아의 자연과 인간은 온전하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다시 영화 <브로큰 플라워>로 돌아가서…. 돈은 옛 애인을 다 만나고 돌아
오지만 결국 누가 편지를 보냈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우연히 보고, 동네 식당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된 청년에게 돈은 이
렇게 말한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삶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여기 있는 건 현재 뿐이고, 이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전
부구나.”
레그와 캐서린 역시 현재에 충실함으로써 ‘지구에서 하나뿐인 병원’에서 누
구보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캐서린 햄린, 《지구에서 하나뿐인 병원》, 북스넛, 2009

댓글목록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7740 (中) 2009-07-10 277
7739 (中) 2009-07-09 230
7738 (中) 2009-07-08 220
7737 (中) 2009-07-08 228
7736 (中) 2009-07-07 255
7735 (中) 2009-07-05 232
7734 (中) 2009-07-03 252
7733 no_profile 박수환(高048)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9-07-02 220
7732 no_profile 박수환(高048)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9-07-02 242
7731 (中) 2009-07-02 304
7730 (中) 2009-06-30 302
7729 no_profile 손창수(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9-06-29 434
7728 no_profile 손창수(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9-06-29 353
7727 no_profile 손창수(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9-06-29 293
7726 (中) 2009-06-28 338
7725 (中) 2009-06-24 292
7724 (中) 2009-06-24 245
열람중 (中) 2009-06-24 206
7722 (中) 2009-06-22 259
7721 no_profile 박성기(高07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9-06-18 300

Copyright © www.gyewoo.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