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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48회 작성일 2007-12-11 09:22
[한국일보] "아, 카르도나 戰!" - 홍수환(60회), 링은 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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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5기 홍수환의 링은 교실이다] <10>"아, 카르도나 戰!"

 

2차 방어전에서 버팅당해 눈 뜰 수 없는 큰 부상
복싱위 '매니저 앙금' 탓 경기 강행 결국 TKO 패
실망한 팬들, 링 위로 소주병 던지며 분통 터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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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왼쪽)이 1978년 5월 7일 열린 타이틀 2차 방어전에서 카르도나의 레프트 카운터를 맞고 링 바닥에 주저 앉아 있다.

영원한 챔피언은 없다. 두 체급을 석권하고 챔피언이 됐지만 언젠가는 나도 링에서 쓰러질 날이 있으리라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것이 내게는 가장 치명적인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선수로서 내 운명의 갈림길이 된 리카르도 카르도나(콜롬비아)와의 타이틀 2차 방어전이 실패로 끝난 것은 내 승부근성이 해이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나는 마땅히 중단돼야 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싸웠다. 아쉬움과 후회가 있다면, 주변 관리를 지혜롭게 하지 못하고 나를 아끼는 많은 팬에게 실망을 안긴 채 선수생활을 접은 사실이다.

카르도나와의 2차 방어전은 1978년 5월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1회전에서 카르도나의 잽을 잡기 위해 라이트 훅을 날리는데 상대의 머리가 내 얼굴을 받았다. ‘퍽’ 소리가 났는데 몸이 뒤로 틀어질 만큼 아팠다. 카르도나의 버팅이었다. 그 버팅으로 나의 얼굴은 피범벅이 됐다. 미간에서부터 왼쪽 눈꺼풀까지 L자로 쭉 찢어진 것이다. 흘러내리는 피로 눈을 뜰 수 없었고 억지로 떠도 보이지 않았다.

당시 내 머리 속에는 재경기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심판은 계속 경기를 진행하게 했다. 그 동안 48번 싸웠으나 이런 버팅은 처음이었다. 1회전이 끝나고 조순현 선생님께 “선생님, 이 눈으로는 경기가 곤란해요. 피가 양쪽으로 흘러내립니다.” 조 선생님도 당황했다. 지혈이 안되고 찢어진 부위로 뼈가 보일 정도였다.

홈 경기라는 이점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상적인 경기가 어려운 3회 안의 버팅은 재경기 선언이 복싱의 관례였고 그것이 정당한 시합이었다. 그렇지만 한국복싱위원회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모른 척했다. 자신들이 지명한 매니저를 고용하지 않았기에 미운 털이 박힌 것이다. 나는 안팎의 적과 싸워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경기 자체가 무리였다. 슬로 비디오처럼 느리게 들어오는 카르도나의 레프트 잽도 내 얼굴을 연이어 때렸다. 4회 들어 카르도나의 레프트 카운터를 맞고 다운 당한 나는 판정으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방에 눕혀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더 굳어만 갔다. 포인트를 계속 잃었고 12회까지 사투를 벌이며 끌어온 것도 기적이었다.

12회 1분23초 만에 심판에게 경기 포기 의사를 밝혔더니 카르도나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링 위에는 나밖에 없었다.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조여 오듯 답답하기도 하고 울분과 고통에 터질 듯 하기도 했다.

내 얼굴에서 말라버린 피와 흘러내리는 피가 서로 다른 층을 이룰 정도였다. 그런 나의 머리 위로 관중이 던진 소주병과 깡통이 날아들었다. 팬들에게는 당연히 실망스러운 경기로 비쳤을 테고 그들은 4전5기의 주인공이 TKO패를 당한 데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카라스키야(77년 11월26일), 가사하라(78년 2월1일), 카르도나(78년 5월7일)와 연속 세 경기를 무리한 일정 속에 뛴 것에는 사연이 있었다. 아라시다라는 일본인 프로모터가 옵션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나와 카라스키야의 승자는 무조건 아라시다가 지명하는 두 명의 도전자와 방어전을 치러야 했다. 두 명을 이긴 후에야 옵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라시다는 카라스키야와 싸운 후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내게 2개월, 3개월 간격으로 방어전을 치르게 한 것이다. 나는 카라스키야를 꺾고 챔피언이 된지 5개월 만에 허망하게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카르도나와의 방어전에 실패한 뒤 그와 한번 더 겨뤄보고 싶다는 집착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아무리 시합 장면을 곱씹어 봐도 그에게 실력으로 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반칙이나 마찬가지인 부상만 없었더라도 난 충분히 그를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패자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매스컴은 나의 패인을 철저하게 사생활과 연관시키려 했고 나는 선수로서 링 위로 올라설 자신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언론은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표현했으며 국민을 배신했다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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