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전5기 홍수환(60회)의 링은 교실이다 <6>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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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89회 작성일 2007-11-16 09:39
[한국일보] 4전5기 홍수환(60회)의 링은 교실이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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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5기 홍수환의 링은 교실이다]

 

<6>"파나마 가려거든 관 짜서 가라"
하나는 죽어야 하는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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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60회)이 1999년 8월 언론과의 인터뷰도중 카라스키야를 3회 통렬한 KO로 쓰러뜨리고 두팔을 번쩍 치켜든 사진을 가리키며 웃고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홍)수환아, 파나마에 가려거든 관을 짜 가지고 가라.”

헥토르 카라스키야와의 경기를 앞두고 친구인 염동균이 나에게 겁을 주려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단단히 하라는 우정의 충고를 건냈다. 카라스키야의 승승장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친구 염동균으로부터 가공할 위력을 새삼 들을 수 있었던 것.

염동균이 윌프레도 고메스에게 패하던 날 공교롭게도 그는 카라스키야와 같은 라커룸을 사용했는데 염동균은 카라스키야가 링으로 올라간 지 몇 분 만에 승리를 거두고 다시 라커룸으로 돌아오자 ‘뭐 이런 괴물이 있어?’라고 놀랐다며 당시를 회상하면서 나에게 그의 전력을 귀띔해 준 것이다.

1977년 당시 내 나이 스물 입골 살. 나와 카라스키야와의 시합은 이미 경기를 벌이기도 전에 승패가 결정난 것으로 보였다. 국내 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혹은 ‘기관총으로 탱크를 쏘는 격’이라는 표현으로 대전 결과에 비관적인 전망을 늘어 놓고 있었다.

주니어 페더급은 나에게 있어서 더없이 알맞은 체급이었고 어쩌면 하늘이 내게 준 마지막 기회인지도 몰랐다. 어느날 문득 내게서 챔피언 벨트를 빼앗아간 사모라가 연습할 때 도끼질을 하면서 체력을 키웠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나는 워커힐호텔을 숙소로 정해 놓은 다음 제재소에 가서 통나무 한 묶음을 사왔다. 그리고는 매일 같이 도끼질을 반복했다. 도끼로 통나무를 팰 때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오기가 끓어 올랐다.

그리고 시합 날짜가 정해졌다. 1977년 11월27일, 장소는 파나마시티였다. 1주일 전인 20일에는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앙에서 김태호가 WBA주니어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하게 되었다. 언론에서는 홍수환보다 김태호가 승산이 높다며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김태호는 챔피언 사무엘 세라노에게 다운까지 빼앗고도 역전 KO로 쓰러지자 1주일 뒤에 치러질 내 경기의 TV중계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TV중계를 맡았던 동양방송이 일주일 간격으로 두 명의 한국 선수가 모두 참패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 실망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중계 계획을 재검토했다는 후문이다.

그때 파나마는 3명의 세계챔피언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만약 카라스키야가 승리하면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인 4명의 챔피언을 보유하게 될 판이었다. 게다가 카라스키야는 윌프레도 베니테스가 갖고 있던 최연소 챔피언의 기록(17세 8개월)을 2개월 경신하게 되어 파나마는 그야말로 축제의 밤을 맞게 되는 상황이었다.

우리 일행은 경기 10일 전에 파나마시티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기자회견장으로 갔다. 회견장에는 라이트급의 최강자인 로베르토 두란도 나와 있었다. 나는 목이 말라 테이블에 놓여 있는 콜라에 손을 댔다. 순간 두란의 눈과 마주쳤는데 그는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입에다 대고 말없이 가로 젓고 있었다. 먹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는 지금도 당시 두란의 그 호의를 잊지 못한다.

시합을 앞두고 갑자기 프리 녹다운제로 바뀐 것도 결국 내게는 행운이었던 셈이다. 그 배경에는 염동균의 영향이 한 몫 했다. 염동균은 고메스와 싸우기 이전에 부산에서 파나마의 리고베르토 리아스코를 상대로 타이틀전을 벌였다. 결과는 15회가 끝난 뒤 리아스코의 판정승.

부당한 판정에 흥분한 관중은 그날의 주심이었던 래리 로자딜라를 위협하며 링 밖으로 아무도 나오지 못하게 했다. 신상에 위협을 느낀 로자딜로는 결국 염동균의 승리로 판정을 번복하고 말았는데 본국에 돌아가서 그날의 정황을 설명하며 WBC에 항의, 결국 염동균은 다시 챔피언 벨트를 빼앗기고 말았다.

카라스키야측은 부산에서처럼 판정이니 뭐니 할 것 없이 두 선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경기를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우리측에서는 라운드에 상관없이 그럴 수는 없는 일이고 스리 녹다운제를 풀자고 했다. 당시만해도 대부분의 복싱시합은 한 라운드에서 한 선수가 3번 다운을 당하면 자동으로 경기가 종료되는 스리 녹다운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결국 한 라운드에 몇 번을 다운당해도 완전히 못 일어날 때까지로 결정됐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승부였다. 그리고 시합날이 밝았고 나는 대사관 직원에게 부탁해 한국 전통모자인 갓을 쓰고 링에 올랐다. 사람들은 비웃을지 모를 일이지만 심리전에서 이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1만6,000명의 함성과 일방적인 응원에 맞서기 위한 표현이자, 대한의 아들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결연함의 표시였다. 그리고 운명의 1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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