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4전 5기 홍수환(60회)의 링은 교실이다 <2>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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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52회 작성일 2007-10-15 09:38
한국일보 - 4전 5기 홍수환(60회)의 링은 교실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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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자식교육이 이룬 쾌거" 어머니께 금일봉 전달

[4전5기 홍수환의 링은 교실이다] <2>
카퍼레이드에 전우들의 분열까지 온국민 성원
육영수 여사 "작은 손으로 큰 일 해냈다"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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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오른쪽 두번째)선수가 1974년 세계챔피언에 등극한 뒤 정재계가 주최한 환영리셉션에서 정재계 인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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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악수를 나누는 모습.

8년 만에 내 복싱 꿈은 이루어졌다.

고1이던 1966년 6월 김기수 선배가 니노 벤베누티를 꺾고 한국 첫 세계챔프에 오른 뒤 벌인 카페이드 장면을 보고 복싱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순간으로부터 8년만의 일이었다.

74년 남아공의 아널드 테일러를 꺾고 세계챔피언이 되어 돌아온 나에게 국민들은 8년 전 김기수 선배 못지않은 열렬한 성원을 보내주었다. 7월15일 김포에서 영등포-서울운동장 등을 거쳐 시청에 이르는 코스에서 열린 카퍼레이드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가슴이 벅차 오른다.

카퍼레이드가 끝난 뒤 소속부대였던 수도경비사령부 연병장에서 동료 전우들의 분열 하에 부대 사령관에게 귀국신고를 했다. 동료 전우들의 분열은 건군이래 최초의 일등병 신고 분열이었다고 한다.

'왕성한 공격정신으로 최후의 승리를 차지한다'는 불굴의 한국 군인 정신을 세계에 널리 과시한데 대한 사령관의 배려로 이루어졌다. 73년 2월16일 입대한 나는 당시 일등병이었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부대로 연락이 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격려하고 금일봉을 전달한다는 것. 부대에선 난리가 났다. 영장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일등병이 청와대로 불려간다니 혹시 무슨 실수라도 할까 봐 사령관은 자신의 직속 부관을 보내 예행연습을 시켰다. 연병장에서 차려, 경례만 수도 없이 반복했다.

"대통령 각하가 금일봉을 내릴 땐 청와대 비서관이 금 쟁반에 흰 봉투를 들고 들어 올 것이다. 그때 너는 차려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각하께서 봉투를 들어 올리는 때를 잘 맞춰서 두 손을 정중하게 앞으로 내밀어야 한다"면서 부관은 이때 손을 너무 빨리 내밀거나 너무 늦게 내밀어도 안된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그리고 16일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어머니를 모시고 청와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접견실로 들어섰다. 예행 연습을 했건만 대통령 내외가 나타나는 순간 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긴장 되기 시작했다.

"음 수고했구만." 대통령의 격려에 이어 비서실 직원인 듯한 사람이 노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아, 이게 금일봉이구나!' 나는 뻣뻣하게 선 채로 쟁반 위의 흰 봉투를 대통령이 집어 들기만 기다렸다. 대통령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대강 눈치로 봉투를 집는 손의 움직임을 포착하려니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봉투를 집어 든 대통령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린다 싶었을 때 나는 절도 있게 앞으로 반 걸음 나가며 양손을 정중하게 내밀었다. 5초나 지났을까.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해 고개를 들어 봤더니. 아뿔사, 대통령은 내가 아니라 어머니를 향해 봉투를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홍 선수가 세계챔피언이 된 건 다 어머니가 자식교육을 잘 하신 덕입니다." 잠시 민망했던 나는 비로소 대통령의 깊은 배려에 감탄했다.

박 대통령이 테일러와의 경기에서 다쳤던 내 왼쪽 귀를 만져보며 "많이 다치지 않았나 걱정했다"면서 "사진으로 볼 때는 키가 아주 커보이던데 별로 크지 않다"면서 대견스러워 하셨다.

박 대통령은 또 앞으로 "홍 선수가 스스로의 타이틀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배들을 키워 세계챔피언의 대를 잇도록 힘써야 할 것"이라면서 배석했던 당시 민관식 문교부장관에게 "홍수환 체육관을 만들라"라고 지시까지 했다. 그러나 홍수환 체육관은 꼭 한 달 뒤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는 엄청난 사건이 터지면서 유야무야 됐다.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청와대 방문 때 육영수 여사는 "아유 저 손 좀 봐. 어쩜 그렇게 작은 손으로 권투를 잘해요? 한번 만져봐도 될까?"라며 "세상에 이렇게 작은 손으로 챔피언이 됐네요?"라고 격려해 주셨다.

대통령이 직접 내리는 금일봉이라면 얼마나 될까. 청와대를 빠져 나오는 차안에서라도 어머니한테 돈 봉투 좀 열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다른 일행이 함께 타고 있어서 속으로만 궁금증을 달랬다. 마침 함께 있던 사단장이 "다들 어디 가서 커피나 한 잔하고 헤어지자" 말해 그 기회를 잡았다. 커피숍 화장실에서 굳게 문을 잠그고 혼자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어보니 얇은 수표 두 장이 있었다. 200만원. 당시 돈으로 100만원이면 서울 이태원동이나 후암동 쪽에 꽤 좋은 집 한 채쯤은 거뜬히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이 가운데 100만원을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의 동의로 복싱 동료 문정호 선수의 치료비로 썼던 일은 권투를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 중 하나였다.

문정호는 한국챔피언 타이틀전에서 나에게 패한 뒤 내가 동양챔피언에 오르면서 자리가 생긴 한국챔피언 타이틀을 따기 위해 경기를 하다 심각한 부상을 당했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김종필 총리의 초청으로 총리실을 찾았는데 김 총리께서는 "끝까지 체력이 대단하던데 식사를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셨다. "연습하는 50일 동안 김치를 삼가고 생야채를 섭취하다가 시합직전에 김치통조림을 끓여 먹었더니 힘이 나는 것 같다"고 하자 크게 웃으셨다.

 

2007/10/14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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