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만에 유해로 만난 '국군 남편' - 조선닷컴
본문
|
6·25 전쟁 당시 전사한 고(故) 김철웅(당시 24세) 하사의 아들 김의남(65)씨는 얼마 전 국방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부친의 유해가 발굴됐다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현충원에 묻혀 계신 줄로만 알았는데, 현충원 묘엔 아버지의 유해 대신 유품만 묻혀 있었다더군요." 김씨가 29일 당혹스러운 듯 말했다.
강원도 철원에서 광부로 일하던 김철웅 하사는 전쟁이 터지자 아내 박춘자(83)씨와 7살짜리 의남씨를 데리고 경남 김해로 피란갔다가 징집당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전사 통지서도 없었다. 그러다 1986년에야 박씨는 행정착오로 통지서만 전달되지 않았을 뿐, 남편이 이미 전사했으며 국립 현충원에 묘비까지 마련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충원을 찾은 모자(母子)는 김 하사의 묘비 앞에서 끌어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이후 22년 동안 모자는 현충일마다 현충원에서 참배를 해왔다.
"유해 발굴 소식에 어머니는 아무 말없이 눈물만 떨어뜨리셨어요.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이 훨씬 더 크네요."
"그동안 현충원에 묻혀 계신 줄로만 알았는데, 현충원 묘엔 아버지의 유해 대신 유품만 묻혀 있었다더군요." 김씨가 29일 당혹스러운 듯 말했다.
강원도 철원에서 광부로 일하던 김철웅 하사는 전쟁이 터지자 아내 박춘자(83)씨와 7살짜리 의남씨를 데리고 경남 김해로 피란갔다가 징집당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전사 통지서도 없었다. 그러다 1986년에야 박씨는 행정착오로 통지서만 전달되지 않았을 뿐, 남편이 이미 전사했으며 국립 현충원에 묘비까지 마련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충원을 찾은 모자(母子)는 김 하사의 묘비 앞에서 끌어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이후 22년 동안 모자는 현충일마다 현충원에서 참배를 해왔다.
"유해 발굴 소식에 어머니는 아무 말없이 눈물만 떨어뜨리셨어요.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이 훨씬 더 크네요."
김 하사의 유해가 발굴된 지역은 6·25전쟁 당시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던 강원도 양구 백석산 7부 능선 일대다. 국방부는 이곳에서 김 하사 외에도 국군으로 추정되는 18구의 유해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5구의 유해를 추가로 발굴했다. 국방부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 가운데 2구의 유해가 김 하사와 김뢰종(당시 25세) 상사의 유해인 것으로 확인했다.
이들은 국군 7사단 8연대 3대대에 함께 배속돼 1951년 9월 26일 북한군 32사단이 점령하고 있던 백석산을 탈환하기 위해 진격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국방부는 2000년 6·25전쟁 50주년 사업으로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모두 2744구의 유해를 발굴했으며, 이 가운데 국군 전사자 74구에 대한 신원을 확인하고 44구에 대해서는 유가족도 확인했다. 나머지 유해에 대해서는 유전자 검사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국군 7사단 8연대 3대대에 함께 배속돼 1951년 9월 26일 북한군 32사단이 점령하고 있던 백석산을 탈환하기 위해 진격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국방부는 2000년 6·25전쟁 50주년 사업으로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모두 2744구의 유해를 발굴했으며, 이 가운데 국군 전사자 74구에 대한 신원을 확인하고 44구에 대해서는 유가족도 확인했다. 나머지 유해에 대해서는 유전자 검사를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