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따라하기? <font color=blue>김경환(67회)</font> - 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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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칼럼] 선진국 따라하기? | |||||||||
외국 사례를 참조하려면 해당 제도나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물론 도입 배경, 성과에 대한 평가, 성공 또는 실패의 이유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적절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실관계를 오해하기도 하고 피상적인 정보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시사점을 도출하거나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1989년에 토지공개념 제도의 일환으로 택지보유상한제를 도입하면서 정부는 인도의 'Urban Land Ceiling and Regulation Act'를 인용했다. 그러나 1993년에 출판된 세계은행의 주택정책 보고서는 이 규제를 인도 일부 도시의 땅값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했다. 수도권 집중 억제와 국가균형발전을 적극 추진한 참여정부는 외국 사례로 프랑스의 DATAR를 언급했다. 그러나 이 기관은 2003년에 재분배 위주의 국토정책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하는 전략보고서를 냈고 2006년에 해체되었다. 프랑스는 국내, 유럽, 전 세계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여건 변화에 대응하여 파리권 성장억제정책을 포기하고 지역격차 시정이라는 정책목표도 명시적으로 파기하였다. 대신 각 지역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지속가능 발전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역정책을 전환하였고, 이를 위해 DIACT라는 새로운 기관을 설립했다. 국민임대주택 건설과 관련해서 참여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재고를 선진국 수준인 전체 주택의 20%까지 높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 선진국의 소득과 주거수준이 지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면 임대주택을 얼마나 공급했을까를 생각했어야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7년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소득수준과 자가보유 선호를 감안할 때 국민임대주택을 매년 10만호씩 건설하는 것은 과하다고 진단했다. 참여정부가 보유세 강화를 위해 실효세율을 선진국 수준인 1% 정도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외국 사례 왜곡의 대표격이다. 우선 정확한 출처도 밝히지 못하면서 일본과 영국의 주택보유세 실효세율이 각각 1%, 1.2%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필자가 아는 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더 중요한 왜곡은 투기 억제와 집값 안정을 위해 일부 고가 주택에 대해 합산ㆍ누진과세 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종합부동산세를 지방 공공서비스 재원조달을 위해 부과되는 미국이나 영국의 재산세와 비교한 것이다. 미국의 재산세는 개별 물건에 대해 단일세율로 부과하는 철저한 지방세로서 지역주민들이 정치적 과정을 통해 세부담 수준을 결정하고 징수한 세금은 납세자인 지역 주민에게 교육, 경찰 등 지방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만 사용한다. 영국의 주택보유세는 거주자가 낸다. 주택 소유주가 직접 거주하지 않는 경우 거주자인 세입자에게 부과한다. 여기에 인간의 노력이 투입되지 않은 모든 용도의 토지에 대해 철저하게 과세하되 주택은 절대 과세하면 안 된다는 헨리 조지의 주장을 오해하여 건물을 포함한 일부 부동산에 용도에 따라 차등 과세되는 종부세를 옹호한 전문가들도 있다. 부정확한 지식과 정보에 기초한 주장이라도 정부가 주장하거나 언론에 소개되면 많은 국민은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주장들이 검증없이 확대재생산되면 정책은 점점 왜곡된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도 어려워진다. 조세원리에 맞지 않는 종부세를 궁극적으로 폐지하고 재산세에 통합하기로 한 것은 옳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선진국형 세금이라고 홍보하던 담당자들은 난감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나 학자, 공신력 있는 언론은 외국 사례를 소개할 때 신중해야 한다. 정보 출처를 공개해 제3자들이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전문가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기본이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