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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KBS는 프로그램으로 답하라
시청자만을 왕으로 모시고 '공정과 품격' 으뜸 삼아야
김호영·前KBS 교육국장▲ 김호영·前KBS 교육국장 어렵게 어렵게 KBS 사장이 바뀌었다. 임기 내에 바꿔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정연주 전 사장이 남긴 흠이 너무 많고 컸기 때문에 바꿔야 하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안다. 따라서 새로 이병순 사장이 취임하자 그에 대한 각계의 요구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분오열(四分五裂)된 조직 내부의 대립과 반목을 화합시키는 일, 경영을 정상 궤도에 올려 놓는 일, 인사 난맥을 바로잡는 일, 훼손된 방송의 공정성을 회복시키는 일 등 KBS가 풀어야 할 숙제들은 너무나 많다. 이 무거운 짐들을 새 사장이 취임한다고 해서 얼마나 이른 시일 안에 다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 국민들이 기다려 줄지도 의문이다. 더욱이 이병순 사장의 임기는 1년4개월에 불과하다. 그래서 새 사장은 지나친 욕심을 부려도 안 될 것 같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이 '공영방송 KBS'의 얼굴이다. 24시간 국민과 얼굴을 맞대야 하는 KBS는 내부의 심각한 질병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얼굴만은 밝게 가져야 한다. 그 얼굴은 방송되는 프로그램, 콘텐츠 하나하나에 담겨 있다. 어떤 내용을 방송하는가 하는 것으로 방송국은 국민과 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고통이나 감정을 방송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미디어 포커스'다. 요즘 지상파 방송들이 아픔이나 적대감을 스스럼없이 방송으로 표출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버릇이다.
KBS는 이번 기회에 거듭나야 한다. 거듭나는 길은 무엇보다도 먼저 방송이 제자리를 찾는 일이다.
공영방송 KBS는 시청자만을 왕으로 모셔야 한다. 프로그램 평가의 기준은 절대로 시청자여야 한다. 시청자는 다양하다. 다양한 모든 시청자의 요구를 대변하고, 필요에 응해야 한다. 예를 들면 방송에서 지금 소외되고 있는 어린이와 노인들의 시간을 KBS는 시청률에 관계없이 확대하여야 한다. 라디오 시대에 '누가누가 잘 하나' '무엇일까요'를 부모들이 함께 즐겼고, '장수무대'를 자식들이 같이 시청했던 옛 경험을 되살려서 좋은 시간대(帶)에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프로를 편성하여야 한다.
연예·오락 방송은 많은 부분을 민간방송에 넘겨주고, KBS는 문화예술의 정수를 찾아 품격 높은 콘텐츠를 개발하여야 한다.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 문제이다. 프로그램 진행을 여러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좋지만, 외부 인사나 연예인에게는 먼저 언어훈련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영어를 배우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고 묻는 외국인에게 영국인들은 BBC를 시청하라고 대답한다는 일화를 거울 삼기 바란다. 언어뿐만 아니라 KBS의 모든 프로그램은 국민의 교과서여야 한다.
시청률에 연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공영방송은 없다.
보도는 균형 잡힌 공정방송을 제일로 삼아야 한다. 정연주 전 사장 때의 가장 위험한 유산을 이 기회에 완전히 불식시켜야 한다. 국가의 중대사나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가정의 TV가 NHK로 채널을 돌린다는 일본의 예를 KBS는 새겨들어야 한다.
기회는 도전이라는 말이 있다. 곪은 내부의 환부는 조용히 치유하고, 밖으로는 방송의 프로그램 하나하나로 국민의 품에 안기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제는 자중의 난을 그치고, 구조조정으로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사원들은 시대의 요청으로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고비를 넘길 줄 믿는다.
입력 : 2008.08.27 2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