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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시 100편 - 제47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상 화
정끝별·시인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1926년>
- ▲ 일러스트 잠산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己未) 독립선언문에는 시 못지않은 리듬과 비장한 여운이 있다. 고교 시절, 이 선언문과 함께 짝패처럼 좔좔좔 암송해야 했던 시가 이상화(1901~1943)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1919년 서울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3월 8일 장날을 기해 대구에서 학생만세운동을 모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그는 상화(相和)라는 이름을 상화(尙火)나 상화(想華)로 쓰곤 했는데, 정녕 그의 시와 삶이 '항상 불' 같았으며 '만주를 오가며 늘 독립운동을 생각'하곤 했다. 그러니 3월이 되면 이 시가 떠오를 수밖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신령'이고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그리고 시인은 '지금은'에 담긴 이 봄의 혼곤 속을 '다리를 절며 걷'고 있다.
이 시의 매력은 굳세고 비장한 의지와 어우러진 섬세한 감각에 있다. 가르마 같은 논길,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 삼단 같은 머리를 감은 보리밭, 살진 젖가슴 같은 흙 등 빼앗긴 들을 온통 사랑스런 여성의 몸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니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 들(판)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관능적인 연애시의 옷을 입은 지극한 애국애족의 저항시다.
입력 : 2008.03.03 01:24 / 수정 : 2008.03.04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