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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업그레이드] [3] 명품 언어가 품격 사회 만든다
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이영숙 Aligned & Associates 대표·리더십 전문가(밴쿠버)
전미옥 '위대한 리더처럼 말하라' 저자
최승현 기자 vaidal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첫째, 고운 말의 싹을 틔우자
인디언들에게 '말'은 생명의 숨결이자 자신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들에게 언어는 단순히 '뱉어내는'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닌 것이다. 인디언 연구가 서정록씨는 "태초에 신이 인간에게 준 생명이 언어라고 믿는 인디언들은 감히 말로 남을 해코지하거나 모욕하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결국 자신이 오염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008년 오늘, 대한민국의 말 풍경은 어떠한가. 영적 통찰로서의 언어는 고사하고 비난과 야유, 즉흥적 배설을 위한 상스러운 말들로 무성하다. "막가자는 거지요"(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초) 등 정치인들로부터 시작된 '품격 없는 언어의 배설'은 인터넷과 TV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확산됐다. 방송은 '막말'을 그대로 내보내거나, 자막처리를 하면서 시청자를 더 안달나게 하는 방식으로 '막말 마케팅'에 한창이다. "× 새 끼" 같은 말이 방송으로 나가기도 하고, "성질 더러운 인간" "너 죽을래", "(상대방을 향해)쓰레기" "싸 가지 없는 ××" 같은 말들은 심지어 '자막'을 타고 시청자들 뇌리에 각인된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시청률에 혈안이 된 방송사들이 사적인 막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면서 규범적이고 정상적인 언어 체계에 대한 대중의 잣대 자체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난장판 국회'도 화면을 타고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면서 옳고 그른 말에 대한 대중의 불감증을 초래했다.
김진배 유머경영연구원장은 "품격 있는 사회란 폭력이나 상소리 대신 웃음과 유머, 부정과 비난보다는 긍정과 칭찬이 있는 사회"라며 "원색적 비난보단 유머감각 뛰어난 사람이 성공하고, 그런 국민이 많은 나라가 경쟁력을 갖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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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어요.”6일 서울 광진정보도서관 어린이독서연구회 숲속반(4학년) 아이들이 진지하고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다행히 언어의 격, 소통의 격을 높이려는 노력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당신은 지금 나의 하늘을 밟고 계십니다.' 서울 이촌동 강촌아파트 게시판에 적혀 있는 글귀다. '실내 소음을 자제하자'는 내용의 게시물 맨 윗줄에 김승희의 '윗층사람'이란 시(詩)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해 제목으로 뽑은 것이다. 아파트 주민 김미라(33)씨는 "쿵쾅거리지 말라고 직접 말하는 것보다 훨씬 호소력이 크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매월 넷째 주 토요일 강원도 홍천군 서면 동막리 '장락서원'에서는 3시간 동안 고전 강의가 열린다. 박재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명심보감 해설이다. 50대 주부 차정호씨는 "격조 있는 말들을 곱씹으면서 생활에 녹이다 보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지혜로워진다"고 했다. 나머지 3주는 직업이 다양한 '학동'들의 편의를 위해 서울에서 강의하는 박 교수는 "전국 250여 개 지자체에 서원을 열어 고전 부흥 열풍을 일으키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인간으로서 '예의'를 잃어버린 '악플'을 자제하자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 달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발생한 총기난사사건을 애도하는 사이트엔 최근 한국 네티즌들의 추모 글이 잇따르고 있다. 'Peace be with you in your grief(슬픔 속에 평안이 함께하기를)' 'Their memories will last forever(그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한국 선플달기운동본부(www.sunfull.or.kr ) 회원들이 올리고 있는 '선플(good reply)'들이다. 물론 이런 시도들은 '언어 공해'의 바다에서 외롭게 떠다니는 섬이다. 제도적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쉽게 소멸될 수 있다는 뜻이다.
10대들에게 고전을 바탕으로 한 옛사람들의 지혜와 통찰을 심어주기 위해 20년째 고전 강의를 해오고 있는 차(茶)의 명인 박동춘씨는 급수 따기용 한문 낱자 교육에 반대한다. 그는 "격조 있는 언어는 깊은 사고력에서 나온다. 영어 이전에 국어 교육이 바로 서야 하고, 고전 커리큘럼을 현대화시키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둘째, 토론 교육을 하자
깊이 읽고, 생각하고, 말하게 하는 훈련으로
상대방 포용하고 설득하는 법 익힐 수 있어
서울 광장동에 있는 광진정보어린이도서관은 이 지역 학부모들에게 '명물'이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풍광 때문이 아니다. 7~13세 초등생을 대상으로 이 도서관 사서들이 운영하는 '어린이 독서회' 때문이다. 12명씩 모두 7개 반인데 1년에 두 차례 회원을 모집하는 날엔 새벽 3시부터 도서관 앞에 어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선다. '깊이 읽고,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다. "자유롭게 책을 읽힌 뒤 생각을 이끌어내는 게 우선이죠. 말하기가 서툰 저학년은 그림으로 먼저 표현력을 기르고, 고학년은 똑같은 사물, 현상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생각하고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법을 익히고요."(오지은 관장)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대부분의 초·중·고등학교에는 '토론대회'가 있다. 고교 과정에는 아예 '커뮤니케이션'이란 과목이 있다. 지난달 2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서리의 한 사립중학교 8학년 교실. 과학시간에 '창조론'과 '진화론'을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그룹별로 자료 조사를 끝낸 학생들은 발제와 반론, 재반론의 '시소논전'을 벌였다. 교사는 아이들의 발표내용, 반론과 경청 태도를 한 발짝 물러서서 평가할 뿐이다. 그룹 활동의 효과성도 평가 대상이다. 한 명의 뛰어난 학생이 준비한 훌륭한 내용보다 그룹원이 공동으로 참여한 것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소극적 그룹원을 끌어들이는 것도 이들이 연습하는 리더십 요소다. "토론 목적은 정신적 성숙이니까요." 이 학교 교장의 말이다.
학교뿐 아니다. 서리와 인접한 랭리 시는 매년 학생의견 발표대회를 실시한다. 시의원인 멜 코지스키씨는 "학생들 입장을 시(市)에 반영하는 '학생위원회(Youth Commission)'를 운영하면서 사회와 소통하는 경험을 쌓게 한다"고 말했다. 시민대학 같은 곳에선 분노조절, 갈등해소의 기술을 망라한 퍼블릭 스피치(public speech) 강좌가 늘 열려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 토론시간엔 한결같이 책상 위에 사전이 올라와 있죠. 자기 생각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전이 필수이니까요." 뉴질랜드에서 두 딸을 유학시키고 있는 동화작가 채인선씨 얘기다.
민주주의는 말과 글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다. 얼마나 합리적인 토론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그 사회 민주주의 수준을 결정한다. 상대를 코너로 몰아가 백기를 들게 만드는 것보다는 자신의 견해를 상대가 받아들이도록 배려하고 설득하는 훈련을 하는 아이들. 이들이 자라 협력하고 공생하는 사회를 일궈갈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셋째, 리더의 말이 중요하다
의회 지각해 '게으르다' 비난받은 처칠
"예쁜 아내와 살다보니 일찍 못 일어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30분 늦게 의회에 참석했다. 정적(政敵)들이 '게으른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처칠은 머리를 긁적이며 "예쁜 부인을 데리고 살면 일찍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다음부터는 회의가 있는 전날 각방을 쓰겠습니다"라고 답해 의회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영국 국민은 처칠의 익살과 유머를 사랑했고, 처칠은 영국민의 익살과 유머 수준을 높였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오프라 윈프리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유창한 언변이 아닌 '가슴으로 안아주는' 대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토크쇼에서 성폭행 피해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의 어릴 적 성폭행 경험을 고백하며 피해자를 포옹해 미 전역의 시청자들을 울린 일화는 유명하다. 윈프리의 토크쇼 테이프는 수백만 장씩 팔려 나간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는 포용력과 사람의 마음을 얻는 소통의 기술이 중요한 시대다. 실제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대한 리더들의 말은 분열 대신 단합, 좌절대신 도전하는 용기를 줌으로써 희망이 되고 비전이 됐다.
리더의 말은 국민의 말을 이끄는 마차다. 그동안 우리 역사 속 많은 지도자들은 일방 커뮤니케이션으로 국민을 이끌어왔다. 산업화 시대엔 리더의 말 한 마디에 이견을 낼 사이 없이 일사불란했다. 거꾸로 지도자의 '막말' 한 마디가 나라의 언격(言格)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명지대 김정운 교수는 "참여정부의 실패는 의사소통 실패"라면서 "벼랑 끝 언어전술, 파괴적 언어희열, 상대를 논리적으로 굴복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국민 저항만 초래했다"고 평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배려하는 말하기, 경청 훈련은 어릴 때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유머 감각은 부모의 창의력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말썽꾸러기에 학교 공부는 꼴찌였던 에디슨을 역사에 기록될 발명왕으로 만든 사람은 "톰, 네가 너무 우수해서 학교 공부가 널 따라오지 못하는구나" 하며 격려했던 그의 어머니였다.
댓글목록
뭐 있을 수 있는 현상이라 보입니다.
그런데 처칠의 예는 쫌 말이 안되는 거 같군요. ???
배설하지 말고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있는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