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들아, 목소리를 바꿔봐!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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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미영씨의 전화를 귀가 아닌 '무르팍'으로 받는다. 대화의 단절은 한 달이지만 이 습관은 반 년도 전에 생겼다. 십 년을 넘게 살고 있는 부부, 아내의 숨소리만으로도 컨디션을 알아맞힌다. 기대만큼 못하는 아이와 비슷하게 못하는 자신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는 것도 안다. 세상천지에 만만하게 화를 낼 대상이 남편뿐이라면 장단은 척척 못 맞추더라도 한 번쯤 그 굿거리를 들어줄 용의도 있다. 믿어다오, 진심이다.
그러나 전화로 퍼붓는 여전사의 따발총 공격에 대해서만은 영원히 방어력 제로다. 시비조로 포문을 연 후 말을 댕강댕강 잘라 드시고 숨 넘어갈 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어질 때 남편은 슬그머니 책상 밑 '무릎'에 휴대폰을 올려놓는다. 회사라면 주변 동료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나머지 한 손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척하며.
최근 열한 살 딸아이가 그 초롱한 눈을 무심하게 반짝이며 미영씨에게 그랬다. "엄마! 아빠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알려줄까? 목소리를 바꿔!" 확인 사살까지 하더란다.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도망가고 싶어." 미영씨 충격 먹었다.
여자들이 그러하듯 남자에게도 목소리 근사한 이성에의 로망은 있다. 그러나 로망은 로망이다. 잠자리에서 라디오처럼 시를 읽어주는 아내를 기대하는 중년의 남편. 있다, 없다? 내 주변 반경 십만㎞ 내에는 없다. 반대로 접시도 깨트릴 아내의 고음을 들으면 없던 사랑도 퐁퐁 샘솟는다는 남편. 있다, 없다? 이 지구상에는 단 한 명도 없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다. 한 이불 속에서 체온을 섞고 잘 때 칼은 장난감 무기가 된다.
그러나 부부 사이에는 말도 섞어야 한다. 발 없는 소문은 천 리 간다지만, 말 없는 부부는 십 리도 못 간다. 짜증이 안 나는 게 비정상적인 전쟁의 삶 속에서 고왔던 음성을 잃은 미영씨의 처지는 백만 번 이해하지만 살다 보면 갈등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바로 그때 남편과 딸에게 본의 아닌 '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한다.
사내는 아내의 사자머리 '쌩얼'보다 온 집안을 일순간에 냉각시키는 히스테리컬 목소리에 더 반항적이 된다는 것을. 그렇게 되면 말섞임은 고사하고 미영씨의 비싼 휴대폰 요금은 남편 무릎과의 대화에 고스란히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