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겨울연가’ 본후 이혼하는 일본인들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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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겨울연가’ 본후 이혼하는 일본인들 |
발행일 : 2004-04-20 A26 [여론/독자] 기자/기고자 : 최흡 |
일본에서는 최근 ‘겨울소나타 이혼’이란 단어가 생겨났다. 가정에 충실하던 30~40대 주부들이 갑자기 ‘겨울소나타’라는 한국 드라마(원제:겨울연가)에 열광해 팬클럽을 만들고, 책·CD·DVD 등 관련 물품을 사들이다가 부부 싸움으로 이혼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한 평론가는 신문칼럼에서 “겨울소나타 선풍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은 40~50대 아버지는 아침식사 자리에서 (주인공역의 배우 배용준을 보고) ‘이런 기생오라비 같은 게 뭐가 좋다고’라고 말씀해 보시라”라고 한 뒤 “아마 부인께서는 골이 나 며칠 말도 하려 들지 않을 테니”라고 썼다. 올 들어 일본에서 일어난 가장 큰 문화·사회현상 중 하나가 ‘겨울연가 선풍’이다. 서점에 한국 연예인들을 다루는 전문잡지가 즐비하고, 한국어 교재가 품절되고, 외국어 학원의 한국어과정에 사람이 넘치고 있다. 배용준을 일본 팬들은 ‘용사마’라고 부른다. ‘사마’라는 말은 그 사람에게 끝없는 존경과 애정을 담아서 부르는 호칭이다. 왕족을 제외하면 최근 일본에서 내·외국인을 통틀어 언론에서까지 ‘사마’라고 통칭되는 스타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 열도를 열광시켰던 영국의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정도다. 일본에서도 연예인들을 쫓아다니는 열성 팬은 한국 이상으로 많다. 그러나 이번 겨울연가 선풍이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일본에서 주목받는 것은, 기존의 연예인이나 드라마 열풍과는 굵은 선을 긋는 특이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용사마’가 일본을 찾았을 때 하네다 공항에 모인 약 5000명의 팬들은 거의가 30~40대의 가정주부들로,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도 많았다.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소녀들을 칭하는 ‘옷카케’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은 옷카케들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룰’을 몰라, 서로 밀치고 기절하고 차 앞으로 뛰어나가는 혼란상이 연출되기도 했다. 10대나 20대 소녀라면 모를까, 이전까지 연예인에는 관심도 없던 40대 주부들이 가정을 박차고 나와서까지 열광하는 현상은 일본에서도 전례가 드문 일이다. 배용준의 팬 미팅에는 83세의 할머니도 출석, “뭘 해도 마음이 텅 빈 것 같았는데, 드라마를 본 후 생활에 활력을 얻었다”고 얘기했다. 일본 언론 표현처럼 ‘일본의 70년대 소녀만화같이 비현실적인 드라마’와 ‘도저히 자기 입으로는 얘기할 수 없는 닭살 돋는 대사’에 왜 주부들의 열광이 쏟아지는지는 일본 내에서도 연구거리가 되고 있다. “마치 몇 십년 전 일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향수를 느낀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젊은 날에 그렸던 왕자님을 찾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하루가 멀다고 종합일간지 한 면을 채운다. 그러나 드라마의 완성도나 현실성을 따지기에 앞서, 일본의 대중문화가 미처 채워주지 못했던 30~40대 일본여성들의 갈증을 한국 드라마가 조금이나마 채워 줬다면, 그걸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한 나라에서 이미 과거로 밀려나 있던 감정과 꿈을, 다른 나라의 문화가 다시 끌어내주고 어루만져 줄 수 있었다는 것은 문화의 다양성이 갖는 아름다운 힘이라고 생각한다. 한류열풍과 ‘용사마’의 인기는 언젠가 식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때의 겨울소나타 신드롬은, 한국말을 배워서라도 드라마를 보려고 했던 그 정열은, 일본인들에게는 좋은 추억과 이미지로 남을 것이다. 두 나라의 관계는 정치·외교·군사라는 딱딱한 파워게임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양국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약속했던 ‘한·일 신시대’는 어쩌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으로부터 올지도 모르겠다. pot@chosun.com 崔 洽 동경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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