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임금도 노인대접은 한다는데,
정동영씨, '상감마마도 늙은이 대접은 한다'는 말을 아십니까. 아니면 '나이 든 말(馬)은 길을 잃지 않는다'는 속담은 들어 보셨습니까. 지금 귀하에게 무슨 얘기 하려고 뜬금없이 속담얘기 꺼내는지 말 안해도 알겠다고 넘겨짚을지 모르나 '60, 70대는 선거날 집에서 쉬셔도 되고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라'는 말꼬투리 시비나 하자고 말 꺼내는 게 아닙니다.
귀하가 아무리 의사전달과정의 실언인양 둘러대며 사과하고 다녀도 속내는 '미래는 20, 30대의 무대' 같은 공치사로 표수 많은 젊은층을 잡기위해서는 몇표 되지도 않고 그나마 내쪽 표 되기 힘든 보수성향의 노년세대쯤은 밟아도 그만이라는 약삭빠른 표계산이 언중유골(言中有骨)로 드러난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구심도 그냥 덮고 넘어갑시다.
그 대신 노년세대 폄하발언을 역사적 관점과 시각으로 함께 생각해봅시다. 세상일이란 검은 구름이 끼이고 습한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하면 아, 곧 비가 오겠구나는 짐작을 하듯이 경험적인 사회현상이나 징조가 반복해 일어나면 지난 일과 유사한 현상이 또다시 일어나리라는 예감을 느끼게 되는 법입니다.
1966년 세계사(史)에서 '잘못된 지도자에 의해 저질러진 실책 중 최악의 실책'으로 평가되고 있는 문화 혁명에서 모택동은 어느 계층을 공격하고 어느 계층을 선동하여 그 공격에 이용했던가를 기억해 봅시다.
모택동은 자신의 경제정책(대약진운동)이 참담하게 실패하면서 중년과 그 이상의 계층이 자신의 정치 선전술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 느끼자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돌격대로 이용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는 우선 선동의 도구였던 인민일보를 통해 문화혁명의 당위성을 선전하고 코드가 맞는 측근 임표를 시켜 100만 홍위병 앞에서 소위 4대 구악(舊惡)을 없앨것을 외쳤습니다.
기성세대가 일궈낸 모든 과거의 치적은 낡은 생각, 낡은 문화, 낡은 관습, 낡은 습관의 4대 구악으로 규정돼 비하되고 파괴됐습니다. 골동품, 그림, 서예작품 심지어 금붕어까지 가진자들의 퇴폐적 즐길 거리라고 부수고 태우고 죽였습니다.
문화혁명을 쓴 '조프리 리건'의 표현을 빌리면 '자신들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마구 부수는 것이 곧 개혁이요,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모택동은 젊은이들에게 권위를 갖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대학의 교수들을 공격하도록 했지요.
"토마토 값이 비싸졌다"고 불평한 부모를 고발해 홍위병의 몰매를 맞게하고 엄격한 수업을 하는 교수는 너무 엄격하다는 이유로 대학생들 앞에서 무릎을 꿇렸습니다. 북경대 총장 등 수십명의 교수와 강사들은 매를 맞고 머리에 검은 잉크가 퍼부어졌습니다.
나이든 노 역사학자, 세계적 피아니스트의 부모, 소설가, 교수 등이 그런 수모와 모욕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습니다. 상해대학에서는 수십명의 교수 등이 같은날 자살 했다고 합니다. 문득 대우건설 남 사장의 자살이 떠오르는군요.
김수환 추기경을 공격하는 어떤 '조짐'에서도 왠지 다수의 젊은층을 정치적으로 내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년과 사회 원로층의 권위를 깨고 보수적 지식계층을 수모와 모욕과 폭력으로 자살케하거나 혁명의 무대로부터 퇴장하게 만든 모택동식 문화혁명이 연상됩니다.
정동영씨.
당신의 발언을 '비오기전의 먹구름과 바람' 처럼, 젊은세대를 옹호하여 노년세대를 공격했던 모택동의 문혁과 빼닮듯이 다시 나타난 '조짐'으로 곡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밝힐 것은 인간의 윤리를 깨는 정치혁명은 철저히 실패했다는 것과 국가(중국)의 발전을 수십년 퇴보시켰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를 위협할 만큼 급성장한 중국의 터를 닦은 지도자는 과격한 개혁분자가 아니라 문화혁명
당시 숙청되고 모욕받았던 유소기나 등소평 같은 노련한 경륜의 합리적 온건실용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더 분명히 할 것은 오늘날 우리 한국의 20, 30대들은 36년 전 찌들고 가난하고 무지했던 모택동 시절 중국의 젊은이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만큼 깨어 있는, 희망이 잠재된 세대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하고 섬기며 살고있는 가정의 자녀들이며 대학과 직장에서 스승과 상사의 권위를 존중할줄 아는 건강한 사회인이라는 사실을 잊지마십시오.
그들이 비록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는 열정이 있다해도 그들 가슴속에 가족사랑의 윤리까지 버려도 좋다는 식의 선동에는 결코 동참하지 않는 건강한 가족애와 도덕심이 뜨겁게 담겨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정동영씨, 내기라도 해볼까요. 21세기 한국의 젊은이는 모택동이 백명이 나타나도 결코 홍위병 같은 꼭두각시는 되지 않습니다. 또한 오늘의 나이든 세대는 매맞고 자살이나 하는 문화혁명시절의 무지하고 무력한 보수는 아니라는 사실도 잊지마십시오.
끝으로 한마디만 더 되씹어보며 치국(治國)의 정치공부에 앞서 입조심의 수신(修身)과 노인공경의 제가(齊家)부터 해보십시다.
'노인 한분이 돌아가시면 작은 도서관 한개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매일신문 기사 작성일: 2004년 04월 05일] |